개헌의 주인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다

[기고] 발췌개헌에서 제5공화국까지, 헌정사의 그림자가 묻는 것

1.

1948년 제헌헌법이 제정된 후 아홉 번의 개헌이 있었다. 그 가운데 당대의 집권자가 주도하여, 인위적 권력구조 개편을 목적으로 실행된 개헌은 총 여섯 번이었다. 모두가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첫째는, 1952년의 <발췌 개헌>이다. 이승만이 스스로 재선될 가능성이 낮아지자 대통령 선출방식을 국회 간선제에서 국민 직선제로 바꾸는 개헌을 추진한 것이다. 비상계엄, 야당 의원 연행·연금 등의 막장 사태가 벌어졌다.둘째는,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이다.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굳히기 위해,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철폐했다. 4.19혁명이 일어났다.셋째는, 1962년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주도 하에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권력구조를 바꿨다. 정치군인이 국가 체계를 농락한 헌정사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넷째가, 1969년이었다. 4년 임기의 대통령을 연임한 후 박정희가 스스로 3선을 위해 또다시 개헌을 강행했다.다섯째는, 1972년의 이른바 <유신개헌>이다. 3선을 통해서도 권력욕을 충족하지 못한 박정희의 영구 집권을 목표한 것이었다. 그러한 말로는 궁정동의 총성이었다.여섯째는, 1980년 광주의 참극을 짓밟고 일어났다. 신군부가 주도한 개헌이었다. 대통령 7년 단임과 간선제를 채택하여 시민 학살 주범 전두환의 집권을 헌정질서로 제도화했다.

이들 개헌에 있어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표면으로는 폭압을 통한 권력 장악 및 연장 시도가 문제였다. 하지만 조금 더 속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중요한 본질이 발견된다. 그러한 개헌의 목표와 과정 전체에서, 국민의 자유롭고 충분한 참여와 숙의가 배제되고 결여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이해와 결부된 권력구조를 국민적 숙의 과정보다 앞세우고, 사실상 그 설계를 독점하려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권력의 필요가 주권자의 논의보다 앞섰다. 당대 권력에 의한, 당대 권력을 위한, 당대 권력이 주도한 개헌이었던 셈이다.

2.

대한민국 헌정사의 오래된 질문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관여한 '인위적 권력구조 개편' 목표 개헌이 물밑에서 시동을 거는 중이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연속하여 이어진 관련 보도의 출처다. 이재명 대통령이 김태호, 주호영, 박덕흠 등 국민의힘 중진의원들과 지난달부터 잇달아 골프회동을 했다는 것. 그 가운데 김태호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대통령이 자신에게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해야 한다’는 취지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현재 개헌 관련 사태의 도화선이었다.

뒤이어 8월 14일, 청와대는 “국회의 권한이 강화된 4년 중임 대통령제가 국민적 수용성이 가장 높다”는 한발 더 나아간 입장을 내놓았다. 최고 권력의 의사 표명이 갈수록 명료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28일 나온 조정식 신임 국회의장의 개헌 관련 코멘트가 돌발적인 일회성 발언이 아님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3.

1987년 6월의 위대한 시민항쟁 결과로 그해 10월 29일 공포된 것이 지금의 제6공화국 헌법이다. 벌써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규모와 질적 수준 모두에서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그러한 변화 구조를 온전히 담아내기에 현행 헌법의 틀이 옹색하고 낡아져버린 것은 분명하다. 사회 전 영역의 근원적 개혁과 발전을 위한 총체적 차원에서, 제7공화국 헌법 개정이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앞으로 개정 헌법에서 권력구조 개편이 가장 큰 관심사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새 헌법이 다뤄야 할 내용은 결코 이것만이 아니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평화·통일의 원칙, 주거·돌봄·노동 등 사회권의 강화, 기후위기와 디지털 시대에 있어 새로운 기본권, 국민발안과 국민소환을 비롯한 직접·참여민주주의의 확대 역시 제7공화국 헌법이 응답해야 할 핵심적 과제다.

관련하여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미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그리고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으로 대표되는 대통령 권한 분산 의사를 천명한 바 있다. 무엇보다 현행 헌법상(128조 2항)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개헌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대통령 스스로가 연임 가능성에 명백한 선을 그었다.

문제는 그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동의 절차를 우선시하지 않은 채, 청와대와 국회 등 정치권 내부에서 (그것도 인위적 권력구조 개편에만 집중하여) 개헌 논의가 독단적으로 진행되는 작금의 흐름이다. 개헌 이슈가 수면 위로 드러난 계기가 국민의힘 의원 접촉을 시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하기 힘든 대목이다. 헌법 개정의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주권자로서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면적이고 공개적인 숙의여야 할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개헌 역사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당대의 권력자가 스스로 권력구조 개편의 설계자가 되는 데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 같은 설계가 광범위한 참여적 숙의보다 먼저 이루어지는 순간, 새로운 헌법은 국민의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편에 설 위험이 상존한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경계선이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 앞에 당당히, 지금 진행 중인 개헌 시도의 배경과 목표를 더욱 명확히 밝혀야 한다. 보다 구체적인 권력구조 제시는 물론, 개헌의 적용 범위를 어느 영역까지 설정할 것인지, 국민 숙의를 어떤 절차와 일정으로 보장할 것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마련된 로드맵이 있다면 그 전모를 즉시 국민적 검증대에 올려야 한다.

그것이 국가 최고 지도자의 역사적 임무다. 그것이 주권자 국민의 권리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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