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쟁의 핵심은 美 금융자본의 착취 종식"

[해외 시각] 마이클 허드슨의 '문명의 운명' ②

다음 글은 미국 경제학자 마이크 허드슨(미주리대 명예 교수)의 새 책 <문명의 운명 :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관한 팟캐스트 멀티폴라리스타와의 인터뷰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원문은 허드슨 교수의 홈페이지(michael-hudson.com) 5월 12일 자에 '세습적 전사계급의 책임을 묻는다(Calling to Account the Hereditary Warrior Class)'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편집자.

☞ 관련 기사 : 마이클 허드슨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벤자민 노튼 : 전적으로 동의한다. 새 책 <문명의 운명>에서 당신은 이른바 '자유시장'의 의미에 대해 매우 중요한 지적을 했다. "원래 (19세기) 고전파 경제학에서 자유시장이란 '경제적 지대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유시장을 '지대 추구세력을 자유롭게 풀어준다' 즉 지대 추구세력이 마음껏 지대를 착취하고 세계를 지배하도록 한다는 의미로 바꾸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고전파 정치경제학과는 반대로 지대 추구 세력에 대한 감세 혜택, 민영화, 금융화, 탈규제 등을 적극 장려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는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당신은 "미국의 대외정책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지대 추구 프로그램을 전 세계로 확대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 책에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내용이 있던데, '자유무역 제국주의'란 무엇이며 미국의 대외정책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마이클 허드슨 : 이제까지 노벨 경제학상은 기본적으로 쓰레기 경제학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아마도 폴 새뮤얼슨이야말로 20세기 최악의 쓰레기 경제학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우리가 자유무역을 전면 실시한다면, 즉 관세를 매기지 않고 정부가 산업 보호에 나서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평등해진다, 또는 최소한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보다 공평해진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입증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물론 실제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자유무역 제국주의'란 말은 19세기 말, 무역이론을 연구하던 영국의 한 역사학자가 만들어낸 말이다. 핵심은 영국이 세계적으로 자유무역 체제를 완성한다면 다른 나라의 산업화를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제조업에서 앞선 영국이 흑인 노예 노동에 의존하는 미국 남부의 면화를 수입하는 대신 영국의 공산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러한 자유무역이 영국과 미국 모두에 득이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득을 보는 것은 미국 남부의 대농장주와 영국의 제조업자일 뿐, 미국의 산업화는 지체될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은 남북 전쟁(1861~65년) 때까지 이러한 노선을 따랐다. 하지만 북부 공업지대에 기반을 둔 공화당은 1853년부터 미국의 산업화를 적극 추진했다. 남북 전쟁은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한 것인 동시에 미국의 독자적 산업화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공화당은 초기 단계의 국내 제조업 보호를 위해 보호무역을 추진했다. 해외(영국) 공산품에 대해 고율의 보호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국내 제조업을 육성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농업 중심의 남부가 원하는 것처럼, 농산물과 원자재만을 생산하는 2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자유무역이냐, 보호무역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5년부터 남북 전쟁 때까지 지속됐고, 최종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승리했다. 미국과 독일은 국내 유치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을 통해 제조업을 육성했고 이를 통해 강력한 산업경제를 구축했다. 몇 년 전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에 의한 비상(America's Protectionist Takeoff)>란 책을 펴냈다.

영국은 '다른 나라들도 우리처럼 자유무역을 택하면 부유해질 것'이란 감언이설로 외국의 국내 산업 보호 및 발전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진실은, 어떤 나라가 선진국과 맞먹을 정도의 산업 능력과 노동 및 농업 생산성을 이루지 못한 채 자유무역을 채택할 경우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유무역이란 다른 나라들이 정부 자금을 투여해 자국의 농업과 산업을 육성하고, 생산성과 교육 수준을 높이며,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여 임금을 상승시키려는 노력을 저지하기 위한 술책이다.

(19세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자들은 저임금 노동이 아니라 높은 숙련도의 고임금 경제를 지향했다. 노동자들이 잘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수록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해내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선도적 보호무역주의 경제학자였던 에라스무스 페샤인 스미스는 일본에 가서 일본이 영국 자유무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스스로 산업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미국의 다른 경제학자들은 물론이고 외국의 경제학자들도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보호무역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보호무역을 통해 독일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페샤인 스미스의 책 <정치경제학 교범(The Manual of Political Economy)>은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번역됐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 사람들은 자유무역이 경제를 양극화 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1차 대전 이후, 특히 2차 대전 이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정통경제학이란 학문이 사실상 프로파갠다로 전락한 것이다.

폴 새뮤얼슨과 같은 이른바 정통 경제학자들이 다른 나라들에 대해 정부는 나쁜 것이다, 경제에 관한 모든 것을 부자, 또는 금융가에 맡기면 된다고 선동한 것이다. 이른바 트리클다운 경제학이다. 부자들에게 돈을 맡기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기만 하면 모두가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은, 미국이 1차 대전 이후 세계 최강의 경제를 갖게 된 것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세계의 산업을 지배하게 된다. 이때부터 미국은 '자, 보호무역으로 미국의 산업 능력이 다른 모든 나라들을 앞질렀으니 이제 외국에 대해 자유무역을 요구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의 농업은 1930년대 이후 정부의 보호를 가장 많이 받은 경제 부문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은행과 IMF를 통해 자국 농산물과 공산품의 대외 진출을 추진하는 한편 다른 나라들의 경제를 궁핍화 시켰다. 특히 세계은행의 주된 활동 목표는 외국 정부가 자국의 식량 생산에 투자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세계은행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에 대한 자금 지원을 하면서 이들 나라의 농업을 (미국이 생산하지 않는) 열대 수출 작물만을 재배하는 플랜테이션(單作) 농업으로 변모시켰다. 밀과 같은 식량 작물의 생산은 금지시켰는데, 이는 식량만큼은 미국에 의존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자유무역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는 세계은행과 IMF를 동원해 외국 경제의 대미 의존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중남미의 독재정권을 지원하면서 이들 과두지배 세력이 대미 의존적 자유무역을 지지하도록 하는 한편 어떤 종류의 경제적 자급자족도 달성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 이유는 최근 러시아나 다른 나라들에 대한 경제 제재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들 외국이 미국의 정책을 추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만일 어떤 나라가 미국을 따르지 않는다면 식량 공급 중단이라는 제재를 발동하는 것이다. 결국 외국 정부가 자국민을 먹여 살리려면 미국을 따르라는 것이다.

미국은 공산혁명 직후의 중국에 대해 이러한 제재 정책을 시도했다. 다행스럽게도 캐나다가 중국에 대한 곡물 수출을 허용함으로써 중국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건국 초기 수십년간 공산 중국이 캐나다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따라서 자유무역이란 정부의 역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며 사회주의와는 더욱더 거리가 멀다. 이는 본질적으로 월가(금융세력)가 경제의 중앙계획을 담당함을 의미한다. 즉 외국 정부에 대해 미국 투자가와 대기업들이 해당 국가의 자원과 산림과 농업을 자유롭게 구매, 처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나아가 해당 국가의 경제적 잉여를 미국에 갖다 바치라는 얘기인 것이다.

▲ GM(General Motors)의 1955년형 쉐보레 벨 에어(Chevrolet Bel Air) 광고. ⓒgoogle.com

벤자민 노튼 : 이번 새 책에는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제네럴 모터스의 전 CEO이고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국방 장관을 역임한 찰스 윌슨이란 인물이 "제네럴 모터스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이 말은 나중에 "월가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라는 말로 발전했다.

허드슨 교수께서는 "이런 생각이 미국의 복음주의적 대외정책과 결합돼 '미국에 좋은 것은 세계에도 좋다'로 발전했고, 이는 다시 삼단논법에 따라 '월가에 좋은 것은 세계에도 좋다'는 논리로 비약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법을 현재의 신냉전에 적용해 요약한다면 미국에 좋은 것은 세계에 좋은 것이고, 월가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므로 '월가에 좋은 것은 세계에 좋은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어떻게 해서 금융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에 대해 우위를 확보했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미국의 사례가 중요하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금융화된 미국 경제를 세계 전체에 강요하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은 지대 추구에 바탕을 둔 (미국의) 금융자본주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한 시도이다."

이러한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 신냉전이 무엇이며,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경제적 차원에서 이를 분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신냉전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간의 지정학적 대결이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해석한다.

예컨대 브레진스키는 1997년 저작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서 탈냉전 이후 미국의 최대 과제는 유라시아에서 미국에 필적할 전략적 경쟁자의 부상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그의 분석은 지정학에 초점을 맞췄을 뿐 경제적 분석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허드슨 교수의 분석이 더 중요하고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지정학적 대결의 바탕에는 경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는 대결은 서로 다른 경제체제 간의 경제적 대결이다. 그렇다면 신냉전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마이클 허드슨 : 우선 세계가 두 개의 (경제) 진영으로 갈라지고 있다.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전쟁은 중국, 인도에 대한 전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들도 공격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세계를 미국 투자가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한다. 미국 신자유주의 정책의 목표는 1991년 12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 대해 감행했던 충격요법을 다른 나라들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각국 경제의 모든 공적 영역, 즉 국가 소유였던 석유기업과 니켈 광산, 전력산업 등을 부유한 과두지배세력(올리가르히)에게 몰아준 다음, 이를 다시 서방의 투자가들에게 매각하도록 해 공공경제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2003년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유코스 오일 주식을 미국의 스탠다드 오일에 팔려 했던 것처럼(그의 시도는 푸틴에 의해 저지됐다). 다시 말해 각국의 소수 금권세력에게 모든 국가 재산과 자연자원과 국영기업들을 몰아준 다음, 이를 미국 투자가들에게 헐값에 매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옐친 집권기였던) 1994년에서 1998년까지 러시아 주식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약탈극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약탈은 1998년 러시아 외환위기로 종말을 맞았으나) 미국은 여전히 전 세계에 대해 그러한 경제적 약탈을 꿈꾸고 있다.

(2000년 푸틴 집권 이후) 약탈은 중단됐다. 러시아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강요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 우리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2차 대전 때 나치와의 전쟁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더 이상 이 짓을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러시아의 인구와 산업과 자원을 러시아 국민을 위해 쓰고 싶다. 더 이상 미국 투자가들에게 희생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변심에 미국은 분노했다. 그 분노가 지난 2월 이후 러시아에 대한 나토의 전쟁으로 표출된 것이다. 미국 정부, 국무부 관리들은 이렇게 말해 왔다. '우리는 러시아를 네 개의 나라로 조각낼 것이다. 시베리아, 서부 러시아, 남부 러시아 또는 중앙아시아, 그리고 북부 러시아로. 러시아 분할이 완성되고 중국과 러시아를 갈라놓은 다음 중국을 손볼 것이다. 우리의 용병인 ISIS와 알카에다를 무슬림지역인 위구르지역에 보내 색깔혁명을 촉발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도 북부와 남부, 중부로 세 조각 낼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해체시킨다면 미국의 지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우리는 이들 지역으로(중국,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등) 진출해 자원과 산업과 노동력과 정부를 접수해서 그들이 일궈놓은 부를 가져올 것이다. 탈산업화된 미국에서는 더 이상 부를 창출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겐 이 방법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지금 세계는 두 개의 (경제) 진영으로 갈라지고 있다. 그것은 미국과 유럽의 위성국가들, 그리고 다른 한 편의 비백인 국가들의 분절만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서방의 금융자본주의 대 나머지 세계 간의 대결이다. 미국, 유럽 등 서방을 제외한 세계의 대다수 인민들은 사회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산업자본주의가 진정 진보적이었던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보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번 책(<문명의 운명>)의 핵심 주제이다. 이것은 또한 혁명적이다. 봉건주의의 잔재로부터, 세습 지주의 유산으로부터 경제를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의 금융계급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지주계급이 아니다. 그러나 지주계급은 아직도 대출이자의 형태로 지대(rent)의 대부분을 금융계급에 지불한다. 오늘날의 주택 소유자나 상가 건물 소유주는 부동산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서방 은행 대출의 80%가 부동산 관련).

오늘날 미국의 주택 소유자들은 자신의 소득 중 40%를 주택 구입을 위한 원금 및 이자 지불에 사용한다. 민영화된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전체 GDP의 18%가 소요된다. 또한 미국 국민은 학자금 융자를 비롯해 온갖 빚에 몰려 있다. 즉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민 생활의 대부분이 공적 영역에 의해 유지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의 유지가 전적으로 개인 책임이며 이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이러한 생활 유지 비용의 상승으로 미국 노동력, 나아가 미국 제조업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는 경쟁력을 상실했다. 금융적 약탈에 의한 경제의 자살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던 것과 같은 현상이다. 말기의 로마제국에서는 약탈적 과두지배세력이 비판세력을 제거하면서 권력을 유지했는데, 이는 미국이 중남미 등 남반구(Global South) 국가들에 대해 군사개입을 자행한 것과 매우 유사한 행태이다.

이제 세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분절은 1970년대까지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이 비동맹운동을 시작하면서 미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 했으나 1970년대까지는 제3세계의 경제적 자립을 지탱할 수 있는 임계점(critical mass)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제, 역사상 처음으로 그 임계점에 도달했다. 중국, 이란, 러시아, 인도와 기타 국가들이 힘을 합치면서 경제적 자립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들 나라들은 미국과의 경제 관계가 없어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됐다. 즉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비서방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미 국방부의 하수인일 뿐인 IMF 체제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통화체제를 건설할 수 있게 됐다. 비서방 국가들은 또한, 미 국방부와 딥스테이트의 하수인인 세계은행 체제를 벗어나 제3세계 국가들에게 경제 인프라 건설을 위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현재의 미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군산복합체와 월가 금융경제(금융, 보험, 부동산)의 결합체로 로마제국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즉 스스로는 어떠한 부도 창조해내지 못하면서 무력에 의해 다른 나라들이 일궈놓은 부를 약탈할 뿐이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비서방 국가들은 자신만의 산업 기반과 함께 원자재, 그리고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업과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길을 가고 있다.

지난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마 앞으로 20년, 어쩌면 30, 40년간 지속될지도 모른다. 세계는 갈라지고 있다. 이는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과 유럽의 위성국가들은 그들이 막을 수 없는 세계의 불가피한 분열을 저지하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19세기 유럽의 지주계급이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을 막을 수 없었듯이 미국/유럽의 무력 개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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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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