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독일의 침몰

[해외 시각] 독일권-러시아-중국 잇는 유라시아 통합의 좌절

서구의 대러시아 제재는 성공하고 있을까? 러시아가 입는 타격들에 관한 서방 언론들의 보도는 많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이 입는 타격에 대한 제대로 된 보도는 많지 않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어떻게 서구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지 설명한 글을 소개한다. 

러시아는 쿠바나 이란과 달랐다. '늙은 불곰'이지만, 한때 거대한 연방을 통치했던 러시아에 미국과 나토 국가들의 제재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현재 서방은 '자학'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러시아 제재로 가장 피해를 보는 서구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과거부터 중국, 러시아와의 경제적 접촉면을 늘려 왔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승자가 아닌' 싸움에 말려들었다. 

다음 글은 지난 7월 19일 이탈리아 언론인 마르코 드라모(Marco D'eramo)가 '침몰하는 독일(Sinking Germany)'이라는 제목으로 <뉴레프트리뷰>의 주간 블로그 <사이드카(sidecar)>에 실은 글이다.편집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전쟁은 이제 누가 승자가 되든 그 승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불분명하게 되었다. 전쟁에 의한 파괴가 심해질수록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됐다. 사망자가 늘어나고 제재가 강화될수록 교전국들의 전쟁 목표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됐다. (불법 침공으로) 모든 것을 잃은 마당에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일부를 합병한들 러시아가 얻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크라이나는 무엇 때문에 한사코 러시아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돈바스지역을 지키려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가? 유럽 동부에 새로운 철의 장막을 세워 러시아의 에너지 등 천연자원과 중국의 첨단기술이 단단히 결합하도록 만든 나토의 속셈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지금까지 승리의 전망이 불가능한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만일 (2003년) 이라크 침공이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이라크가 이슬람판 이스라엘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결코 가능한 과제가 아니었다. 전쟁의 현실적 결과는 이라크를 이란의 세력권으로 밀어 넣었고, 아프간을 파키스탄과 중국에게 넘겨주었을 뿐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은 논외로 치자) 우크라이나전쟁의 승자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패자를 집어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확실한 패자 중 하나는 호주의 경제학자 조셉 할레비가 지적한 대로 ‘독일권(German bloc)’이 될 것이다. 스위스에서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독일을 중심으로 경제적으로 상호 연결된 국가들 말이다.

물론 현재의 국면에서 우리 모두는 크든 작든 패자가 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됐을 때, 우리들은 석유와 가스의 공급 부족에 대해 걱정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곡물 생산의 14%, 수출의 29%를 차지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됐다. 뒤이어 두 나라가 옥수수 수출의 17%, 보리 수출의 14%를 담당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아가 해바라기 생산품의 무려 76%를 차지한다는 것도 드러났다. 또한 러시아는 세계 비료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경제 재재의 악영향은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브라질에서조차 식량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쟁은 석유와 가스 부문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니켈 공급에서도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2021년 19만 5천 톤의 니켈을 생산했는데 이는 세계 생산량의 7.2%에 해당된다. 전쟁, 그리고 (전선 및 전기자동차 부품에 필요한) 니켈 수요의 급증으로 니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에 따라 전자계산기나 컴퓨터칩을 생산하는 세계 반도체업계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한편 실리콘 원판에 미세 전자회로를 새기는 데 사용되는 네온 가스는 러시아 강철업계에서 우크라이나에 보낸 네온 가스를 정제해서 만들어진다. 네온 가스의 주요 생산 거점은 우크라이나의 오데사와 마리우폴이다(이 지역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이유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네온 가스의 70%를 비롯해 크립톤의 40%, 크세논의 30%를 공급한다. 주요 수입 국가는 남한, 중국, 미국, 독일 등이다. 다른 ‘핵심’ 금속들의 공급도 위협받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콜럼비아세계에너지정책연구소는 지난 4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주목받는 금속 중에는 타이타늄, 스캔듐, 팔라듐 등이 있다. 타이타늄은 항공산업와 방위산업에 쓰이는 전략물자로 러시아는 타이타늄 금속의 원재료인 타이타늄 스폰지의 세계 3위 생산국이다. 스캔듐 역시 항공산업와 방위산업의 핵심 자원으로 러시아가 3대 생산국 중 하나이다. 자동차와 반도체산업에 사용되는 팔라듐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전략물자인데, 러시아가 세계 생산량의 37%를 담당하는 최대 생산국이다. 러시아의 팔라듐은 핵심 전략물자가 지정학적 변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이다. 대체 공급선 역시 불안정한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팔라듐의 2위 생산국은 남아공인데, 이 나라의 광산 부문은 10년째 파업으로 인해 생산이 원활하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날이 갈수록 러시아와 세계 경제의 디커플링으로 인한 새로운 곤경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제재가 당초 예상보다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서방은 최소 6차례의 경제제재를, 그것도 갈수록 가혹한 제재를 단행했다. 러시아를 국제은행결제시스템(SWIFT)에서 퇴출했고,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준비금 6천3백억 달러를 동결했으며, 미국 은행에 예치된 러시아의 예금 6억 달러를 동결했고, 이 예금이 러시아의 외채를 갚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막았다. 또한 러시아의 주요 은행들이 영국 런던의 금융중심지 시티에서 퇴출됐고, 영국 은행에 예치된 러시아 예금의 인출이 제한됐다.

현재 러시아 항공기는 서방의 영공을 통과할 수 없고 서방의 공항을 사용할 수 없으며 러시아 상선은 서방의 항구에(일본과 호주 포함) 기항할 수 없다. 첨단 기술을 비롯해 많은 품목들이 러시아에 수출되지 못한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98개 기관과 개인 1,258명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여기에는 푸틴 대통령 및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비롯해 로만 아브라모비치 등 푸틴과 가까운 올리가르히, 두마(러시아 의회) 의원 351명,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요원, 고위 군 간부, 기업가와 금융가, 언론인과 연예인 등이 포함된다. 서방의 모든 은행과 서방 기업 대부분이 러시아를 떠났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200개 이상 품목의 서방 수출을 금지했고, 석유 및 가스 수출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에 불응한 폴란드와 불가리아, 핀란드 등에 대해서는 에너지 수출을 중단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일부 제재는 러시아에 득이 되고 있다. 러시아 석유 및 가스 수입 금지 조치는 오히려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켜 러시아의 외화 수입을 늘려주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 러시아 국내에서 상품 부족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올해 4월까지 러시아의 무역 흑자는 1994년 이후 최고치인 96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전쟁 직후 가치가 떨어졌던 루블화는 점차 회복세를 보이면서 지난해보다 가치가 높아졌다. 2021년 1달러 당 70루블 선이었던 것이 3월 7일에는 140루블에 가까워지면서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7월 18일 현재 57루블로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예견된 것이었다. 카스트로의 쿠바(60년 이상), 차베스의 베네수엘라(30년), 호메이니의 이란(42년간) 등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나라들에 대한 제재가 정권 교체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러시아 같은 강대국에 대한 경제 제재만으로 정권 교체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게다가 2014년 크림 합병으로 이미 서방의 제재에 직면했던 러시아는 이후 오랫동안 국내 산업 능력을 키우면서 이번 사태에 대비해 왔다.

제재가 무력화되고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갈등은 더욱 확대되면서 서방과 러시아의 균열은 더욱 깊어지고 치유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적어도 수십년간 서방과 러시아 관계는 단절될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철의 장막은 드리워졌고, 앞으로 오랫동안 유럽과 러시아는 서로 왕래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독일권이 지난 30년 동안 추진해온 전략적 계획이 좌절됐음을 의미한다. 앞에 말한 호주 경제학자 할레비에 따르면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된 이후 독일은 러시아와의 상호 의존적인 경제 건설을 추진해왔고 이제 거의 단일경제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독일경제권은 독일을 중심으로 서쪽의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와 동쪽의 체크,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슬로베니아 등이 서로 다른 역할과 부문을 담당하면서 형성돼 왔다. 예컨대 네덜란드는 세계로 나아가는 플랫폼이자 교통 중심지, 체크와 슬로바키아는 자동차산업의 중심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는 첨단기술 부문을 담당하는 식이다. 만일 독일이 이 경제블록의 패권적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독일의 지정학적 역할과 세계적 중요성을 다시 평가해야만 한다. 독일의 인구가 8천3백만 명인 반면 독일권은 1억 9천6백만 명이며, 독일의 GDP 3.8조 달러에 비해 독일권의 GDP는 7.7조 달러나 된다. 즉 독일권은 미국, 중국보다는 작지만 일본보다는 큰 세계 3위의 경제권이 되는 셈이다.

이들 국가들의 경제네트워크의 중요성은 대외 무역을 보면 확실하게 드러난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및 스위스에(두 나라 인구를 합하면 1천7백만 명) 대한 수출은 1,320억 유로인데, 이는 미국(1,220억 유로)이나 프랑스(1,020억 유로)에 대한 수출보다도 많다. 또한 독일과 네덜란드(인구 1천7백만명)의 교역 총액은 2,060억 유로로 독일과 프랑스와의(인구 6천7백만 명)의 교역 총액(1,640억 유로)보다 많다. 한편 이탈리아는 폴란드보다 인구도 많고(6천만 대 3천8백만) 1인당 국민소득은 두 배가 되지만 독일과의 교역은 폴란드보다 적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이 처음 유럽연합에 가입했던) 2005년 당시 폴란드의 대독일 교역이 이탈리아의 절반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는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독일 산업계가 대외 무역의 중심을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에서 자체 경제권 건설 및 중국과의 교역으로 옮겨간 것이다. 중국은 현재 독일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다. 양국간 교역 총액은 2,460억 유로에 이른다. 독일경제권의 다른 나라들도 중국과의 교역액이 크게 늘었다. 할레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유럽 국가들이 처음 유럽연합에 가입한 2005년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2021년 독일의 대외 상품 수출은 67% 증가했다. 반면 중국과의 교역은 4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대중국 교역은 3배 가까이 증가해 독일에 훨씬 못 미쳤다.

독일권 국가들의 경우 독일경제와의 통합으로 인해 대중국 수출의 폭발적 증가를 이룰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2005년 이후 최소 5배, 스위스는 무려 12배가 증가해 유럽 두 번째의 대중국 수출국이 되었다. 벨기에와 오스트리아의 증가율은 크지 않았던 반면, 폴란드는 5.5배, 헝가리 6배, 체크 10배, 슬로바키아는 자그마치 21배 가까이 늘었다.

이러한 대중국 교역 증가의 자연스러운 결과는 유라시아경제권의 형성이었다. 중국으로서는 러시아의 자원 확보 필요성과 함께 중국에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를 거쳐 서유럽에 이르는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활성화를 위해 독일을 필두로 한 유럽과의 경제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지난 2010년대 최초의 유라시아 횡단 화물열차가 중국을 떠나 독일 도르트문트를 거쳐 네덜란드를 지났으며 이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독일로서는, 적어도 산업적 차원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그리고 독일과 유럽 간에 시너지를 창출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에너지 수출국들과 독일과 중국 등 공산품 수출국 간에 운송과 생산과 에너지 공급을 통합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독일의 계획은 2013년 시진핑이 시작한 신실크로드(또는 일대일로 계획)의 게르만 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할레비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경제권의 궁극적 목표는 동과 서 양쪽 끝의 독일과 중국이 러시아를 핵심 연결 통로로 삼아 하나의 경제권으로 뭉치는 유라시아 통합이었다. 워싱턴과 나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의 건설을 마지막까지 고집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전쟁의 첫 번째 가시적 지정학적 결과는 노르트스트림2의 가동 불발이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유라시아 공동의 경제공간 창출이라는 꿈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독일과 중국의 경제 교류를 약화됐고 러시아와는 아예 소통 자체가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전쟁은 또한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를 배후지로 삼아 독일의 생활공간(lebensraum), 정확하게는 성장공간을 창출하려던 독일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이제 러시아는 독일에게 거대한 공간이기는커녕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지정학적 장벽이 되었다. 앞으로 독일경제권의 전략가들은 기존의 전략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경제권과 미 제국과의 관계, 독일경제권과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재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 독일경제권은 소속 국가들 간의 이해관계의 충돌로 긴장을 겪고 있다. 작지만 중대한 사태 변화, 어쩌면 게임의 룰을 바꿀 수도 있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독일이 지난 5월, 1991년 이후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적자 규모는 10억 달러로 작긴 하지만, 어쨌든 적자는 적자다.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드러나는 사태 전개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독일 전략의 실패다. (1,2차 대전에 이어) 이번 3차 대전에서도 독일은 또 다시 패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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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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