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임신노동자는 유산할 확률이 2배 높습니다"

시민사회·여성계 "SPC 파리바게뜨는 여성인권 사각지대"

"파리바게뜨에선 근로기준법 상의 모성보호 관련 규정이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아서, 파리바게뜨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들보다 유산율이 거의 2배가 높다고 합니다. 경악스럽고, 놀랍습니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12일 '파리바게뜨 여성노동인권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 인사말 중)

높은 여성 비율로 대표적인 여성노동 현장으로 꼽히는 파리바게트 사업장 내에서 광범위한 여성노동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 12일 '파리바게뜨 사회적합의 이행 검증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파리바게뜨에서 근무 중인 여성노동자들은 △성희롱·성폭력에 노출되고 △보건(생리)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으며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임신노동자에 대한 모성보호 조치마저 보장받지 못했다.

파리바게뜨 사회적합의(2018) 이행을 위한 시민사회 연대체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파리바게뜨 여성노동인권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파리바게뜨 여성노동인권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 참여자들 ⓒ프레시안(한예섭)

검증위 조사 결과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임신노동자에 대한 모성보호 조치 관련 실태였다.

검증위 여성인권건강분과 발표에 따르면, 우선 '임신 중 태아 검진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묻는 설문에 관하여 응답자의 77.5%(183명)가 태아 검진을 자유롭게 받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근로기준법 제74조의 2에 따르면 사용자는 임신한 여성근로자가 모자보건법 제10조에 따른 임산부 정기건강진단을 받는 데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

임신 기간 중의 야간·휴일·시간외 근로 등도 문제가 됐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임산부의 야간근로와 휴일근로를 제한(제70조)한다. 사용자는 임신노동자에게 시간외근로를 시킬 수 없으며, 노동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근로를 쉬운 근로로 전환해야 한다.(제74조의 5) 이번 검증위 조사에선 이러한 규정이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포착됐다.

검증위의 시간외근로 관련 설문에 대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26.7%(45명 중 12명)가 임신 중 시간외근로를 경험했다고 답변했으며, 휴일근로 관련 설문에서도 17.4%(46명 중 8명)의 응답자가 임신 중 휴일근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야간근로 관련 설문에서도 임신노동자의 야간근로 정황(51명 중 1명)이 발견됐다.

검증위 여성인권건강분과의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러한 조사결과를 제시하며 "회사가 해당 노동자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노동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 없이 야간근로, 휴일근로를 하도록 하였다면,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 교수는 이러한 낮은 모성보호 수준으로 인해 파리바게뜨 여성노동자의 유산율이 전체 여성노동자의 평균 유산율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특히 파리바게뜨 사회적합의가 처음 체결된 지난 2018년의 조사 과정에서도 포착된 문제인데, 당시 파리바게뜨 임신노동자의 1년 유산율(58.3%, 12명 중 7명)은 일반적인 여성 직장인 유산율(23%)의 두 배 이상이었다.

권 교수는 "2022년에는 그 수치가 41.7%(12명 중 5명)로 약간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근로감독을 시행하여 근로기준법의 모성보호 규정 위반사항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희롱·성폭력 관련 실태 또한 문제로 제기됐다. 295명의 검증위 조사 참여자 중 15명이 한 달에 1회 이하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답했으며, 3명의 응답자는 1주 한 번 이상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노조공문과 피해자 면접조사에선 성희롱·외모비하 발언, 원치 않는 신체접촉, 사적 만남 강요 등의 다양한 유형의 성폭력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권 교수는 "회사 차원에서 성희롱 성폭력 예방 및 재발 방지 정책과 제도가 운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적절한 피해자 보조 조치와 공정한 진상조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성폭력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다.

▲지난 4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 사옥 앞에서 열린 'SPC 노조파괴 분쇄를 위한 2차 화섬노동자 결의대회' ⓒ프레시안(한예섭)

이외 검증위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상의 '쉴 권리' 또한 침해받고 있었다. 검증위의 보건휴가(생리휴가) 사용 실태 조사에선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보건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건휴가는 근로기준법 제73조에서 정하고 있는 법정휴가다.

조사 결과 총 261명의 응답자 중 129명이 보건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답했으며, 이중 '단체협약의 휴무 개수 제한 때문에' 보건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경우가 74.8%(101명)로 가장 많았다. '대체 근무자가 없어서' 사용하지 못한 경우가 13.3%(18명)로 뒤를 이었으며, 단순히 보건휴가가 필요하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은 경우는 10.4%(14명)에 불과했다.

2021년 3월 체결된 파리바게뜨 단체협약에선 '월 7일까지는 주휴일과 휴무일을 먼저 소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1년 보건휴가 사용 현황을 살펴보면, 해당 단협이 적용된 3월 이후 파리바게뜨 여성노동자들의 보건휴가 사용 횟수는 크게 줄어들었다.(2월 2608명에서 3월 1403명)

이에 권 교수는 "보건휴가 사용률이 절반 가가이 줄어든 것은 단체협약에서 휴무일을 최대 7일로 정한 것이 가장 결정적 요인"이라며 "이로인해 결과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의 보건휴가에 대한 권리가 크게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체협약이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을 위반할 수는 없다"고도 강조했다.

불법파견, 임금체불 등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조건 문제는 2017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학섬유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의 문제제기로 처음 불거졌다. 이후 2018년 1월 사회적합의가 체결됐으나, 노조 및 시민사회는 파리바게뜨가 "2018년 사회적합의 이후 4년 동안 합의사항 이행은 미뤄둔 채 노조 파괴에만 힘을 써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 지적된 파리바게뜨의 여성노동인권 침해 사안 또한 지난 2017년 제기됐던 문제와 같은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토론회에 참여한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여성·임신노동자에 대한 휴가제도, 장시간 노동, 작업환경만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 이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기피 요인으로 작동"되어 또 다른 차별을 낳을 수 있다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모든 노동자가 노동과 생활이 병행 가능한 보편적인 표준노동시간 준수와 안전한 작업환경 마련"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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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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