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인플레와 싸워야 할 때"…커지는 경제 불확실성

이창용, 한은 72주년 기념사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 시사

한국은행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지구적 인플레이션에 대처해야 한다는 한은의 긴박함이 읽히는 가운데,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져 앞으로 한국 경제가 더 큰 불확실성에 노출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0일 한국은행 72주년 기념사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물가상승압력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로서의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이 다시금 중요"해졌다며 한은이 직면한 최대 도전이 물가와의 싸움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2~3% 수준의 오름세를 나타내었을 당시 우리가 다른 나라 중앙은행보다 더 먼저 통화정책 정상화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다른 나라가 급격하게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현상이 이어지는 만큼, 선제적 대응의 이점도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웃돌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정상화 속도와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먼저 출발한 이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실기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정책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고 앞으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울러 이 같은 발언은 앞으로도 한은이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구체적으로 "중국의 경기둔화,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가속화 등으로 글로벌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며 물가가 치솟으면서 경기 침체가 오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형국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국내에서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trade-off)가 더욱 커지면서 통화정책 운영에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고 이 총재는 전망했다. 한은이 '인플레 파이터'로서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는 형국에 국내 경기 침체가 나타난다면 기준금리 인하 압력이 커질 수 있음을 우려한 대목으로 읽힌다.

이 총재는 그럼에도 "금리인상으로 단기적으로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겠지만 자칫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더욱 확산된다면 그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며 지금은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해야 할 시기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한국은행 창립 제72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지구적 차원에서 대대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짐에 따라 한은의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은 매우 커졌다.

9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이 11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미국 등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보조를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외신에 따르면 ECB 이사회는 시중은행이 ECB에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예치체제금리(데포금리)를 현재 -0.50%에서 -0.25%로 인상할 예정이다.

종전에는 일반은행이 대출을 하지 않고, 즉 ECB로부터 통화를 공급받아 시중에 유통시키지 않고 예치하면 벌금성으로 오히려 역이자를 물리던 상황을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더해 외신은 ECB가 9월 이사회에서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해 데포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맞출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이번 이사회에서 ECB로부터 일반은행이 돈을 빌릴 때 적용받는 이자인 레피금리는 현행 0%를 유지할 것으로 외신은 내다봤다.

따라서 9월 데포금리가 제로가 된다면 데포금리와 레피금리 간 금리격차가 제로가 돼, 2014년 이후 줄곧 마이너스 수준을 유지한 유로존 기준금리가 8년여 만에 제로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다. 장기간 유동성 공급 체제를 이어간 유럽이 경기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긴축 기조로 돌아서는 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이어진 국제적 유동성 장세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더 장기간, 더 강력한 수준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넘쳐난 유동성이 부동산을 비롯한 세계 자산시장 급등의 중요한 원인이 돼 인플레 국면의 근본 원인으로 해석된다. 정책 조치 못잖게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금융정책이 중요한 정책적 수단으로 해석되는 배경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22년 만에 50bp(0.50%포인트)를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기준금리 '빅스텝'을 단행해 기준금리 수준을 0.75~1.00% 수준으로 올렸다. 이에 더해 6월과 7월 FOMC에서도 연달아 빅스텝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한은도 올해 남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계속해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올해 남은 7월 13일, 8월 25일, 10월 12일, 11월 24일 등 총 네 차례 금통위에서 매번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올려 연말 기준금리를 2.75%로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 정도로 올려도 지금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기조를 고려하면 한국은 기준금리 추가 인상 압력을 여전히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이 최종적으로 기준금리를 4%대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할 경우 외국인 자금의 국내 유출이 중요한 경제적 문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지난달 31일 금융투자협회 채권포럼에서 "올해 3분기 중 한미 금리 역전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출이 우려되고, 금융시장에 변동성이 확대(위험 증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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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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