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총재 부재에도 불구하고 14일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1.50%로 0.25%포인트(25bp) 인상했다. '국내외 위험에 선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당초 시장 예상보다 한발 앞서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도 금통위는 꾸준히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내 경제의 '시한폭탄'인 가계부채 문제가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에 점차 더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다.
총재 없는 금통위, 기준금리 인상
이번 금통위는 이주열 전 한은 총재 퇴임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총재가 없는 가운데 열렸다. 이에 따라 당초에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다음 달이 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앞서 지난달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이 공개된 후 시장의 관점이 확 바뀌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달 FOMC에서 한꺼번에 기준금리를 50bp 올리는 '빅스텝' 행보를 보이리라는 전망이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보일 것이 명약관화해지면서 한은도 서둘러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게 됐다. 총재 부재라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배경이다.
한은은 공개한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전문에서 "국제금융시장에서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기준금리 인상) 속도에 대한 기대 변화 등으로 주요국 국채금리가 큰 폭 상승하고 미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냈다고 이번 기준금리 인상 배경을 밝혔다.
한은은 아울러 올해 소비자물가가 "당분간 4%대의 높은 오름세"를 보임에 따라 "금년중 상승률이 2월 전망치(3.1%)를 크게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그 반면 국내 경제 성장률은 견조한 회복세를 이어가더라도 "금년중 GDP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3%)를 다소 밑돌 것"으로 한은은 예상했다.
초유의 글로벌한 물가 상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세계적인 유동성 흡수 체제 등의 영향에 따라 종전보다 기대 성장률이 떨어지고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더 올라갔다.
주요국 일제히 '빅스텝' 행보
실제 미국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다른 나라 역시 일제히 시중 유동성 흡수에 나서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캐나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종전보다 0.50%포인트 올려 1.00%로 결정했다. 티프 매클럼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이 같은 기조를 앞으로 이어나가 "중립 수준인 2~3%대까지 올릴 것을 예상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지금 기준금리의 최대 3배 수준으로까지 기준금리를 끌어올려야만 금리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중립적'인 수준이 된다는 뜻이다.
뉴질랜드 중앙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0%포인트 끌어올려 1.50%로 만들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작년 10월부터 이번까지 4번의 회의에서 모두 기준금리를 올렸다. 이 기간 기준금리는 0.25%에서 1.25%포인트 올라갔다.
이 같은 국제 기조는 2008년 체제의 끝을 의미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려 시중 유동성을 뒷받침하고 이를 통해 시중자금을 산업계로 유도하는 양적 완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장기간의 양적 완화도 고용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은 데다, 특히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 각국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폄에 따라 시중 유동성은 부풀어오르기만 했고, 이 유동자금이 주요국에서 공통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린 원인이 됐다.
즉, 치솟는 물가에 대응하고 풍부해진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는 당위가 주요국에서 일관되게 기준금리 인상 결정으로 나타난 셈이다.
한은 금통위는 "물가가 상당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앞으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도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리겠다는 선언이다.
이미 시중금리 7%대 코앞…돌파구는 묘연
이에 따라 가계부채 부실화 우려가 더 커지게 됐다. 지난달 31일 한은 발표를 보면, 지난 2월 들어 국내 예금은행의 저축성수신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전월 대비 5bp(0.05%포인트) 오른 연 1.70%였고, 대출금리는 11bp 오른 연 3.56%였다. 시중 금리 인상 기조가 뚜렷이 관측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76.5%로 고정금리 대출을 압도했다. 이는 2014년 3월 78.6%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가계대출 구조가 기준금리 인상에 취약하다.
은행권에서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결국 최고 7%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금리는 은행채 5년물을 발행한 자금을 은행이 소비자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그 준거인 은행채 5년물 금리가 지난달 28일 3.229%를 기록해 2014년 7월 9일(3.038%) 이후 7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3%를 넘었다.
국고채 금리도 일제히 3%를 넘어섰다.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보면, 이날 기준 국고채 10년 물은 3.249%, 20년물은 3.214%를 각각 기록했다. 이들 모두 2014년 이후 처음으로 3%를 넘어섰다.
이미 시중 금리는 그 영향을 받아 치솟고 있다. <뉴스1> 보도를 보면, 이날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금리는 3.90~6.45%에 달했다. 이미 7%에 가까울 정도로 올랐다. 사실상 7% 돌파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부채 부실화에 대응할 출구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특단의 대책"은 마땅치 않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춰 정부가 채무재조정, 개인파산제도 손질 등 미시 정책을 함께 준비해야 할 수밖에 없다. 뚜렷한 돌파구는 없고, 대책 마련도 여의치 않다. 윤석열 정부가 받아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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