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 "2년 6개월 동안 봐왔어요, 신뢰할 수가 없죠"

[붕괴참사열흘②] '아이파크 2단지'에 무너진 화정동 상인들의 삶

지난 11일, 오후 3시 46분께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201동 건물 23~38층, 총 16개층 구간 외벽이 무너졌다. 총 39층 규모 건물의 상층부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현재까지는 콘크리트가 미처 마르기 전에 거푸집을 빼고 다음 공정을 진행하다가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참사로 5명의 현장 노동자가 실종됐고, 한 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참사는 아직 진행 중인 셈이다. <프레시안>에서는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붕괴 참사 열흘 ① : "가해자는 간데없고 피해자끼리 모여 서로 미안해하는 상황이 됐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층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소음이 들려왔다.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 누군가의 고함과 비명 소리까지. 동시에 상가 전체의 조명이 꺼지며 김남필 씨(68)가 있던 지하상가가 어둠에 휩싸였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낀 남필 씨와 상가 안 사람들은 곧장 탈출에 나섰다. 지상과 연결된 출입구에선 어디선가 부서져 나온 돌덩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곳이 하나뿐인 탈출구였다.

'여길 나가야 살겠다', '우리 건물이 무너지나 보다'. 진동과 굉음 속에서 먼지와 파편을 뒤집어 써가며 남필 씨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다시 펑하고 상가 앞 전신주가 폭발했다. 상가 주위론 수많은 잔해와 찌부러진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 무너진 것은 남필 씨가 머무르던 7층 건물 금호하이빌이 아닌 바로 옆의 39층 건물, 화정 아이파크 201동 아파트였다.

"그냥 공포였죠, 공포."

금호하이빌 도매상인들이 모여 만든 '하이빌도매상가 피해대책위원회' 천막 안에서 만난 남필 씨는 사건 현장을 '공포'라는 두 단어로 묘사했다. "소음은 어마어마하고, 사방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현장은 아수라장"이었으며 "전쟁터"였다. 뭐가 뭔지 모를 공포스런 현장을 떠나 생존을 확신하고 나서야 남필 씨와 상인들은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공사 중이던 아파트의 일부 벽면이 붕괴됐고, 그 '전쟁터'에서 무려 6명의 노동자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건물 외벽이 무너지 광주 화정 아이파크 2단지. ⓒ프레시안(한예섭)

현산? "2년 6개월 동안 봐왔어요, 신뢰할 수가 없죠"

남필 씨는 붕괴 현장 반경 79m 내 통제구역에 포함돼 있는 금호하이빌 문구완구종합도매상가 지하 1층에서 10년 이상 꽃 도매상을 운영해왔다. 남필 씨를 포함해 도매상가 내 대부분의 상인들은 상가가 세워질 무렵부터 오랜 기간 가게를 지켜온 지역의 터줏대감들이다. 각각 오랫동안 유지해온 거래처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남부럽지 않은 실적을 쌓아왔고, 가족끼리 일손을 도우며 일종의 가업 형태로 생계를 지켜왔다.

평화로운 일상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붕괴사고 한참 전부터였다, 2019년 5월 HDC현대산업개발이 화정아이파크 2단지 아파트를 착공하면서 그와 주변 동료들의 일상엔 균열이 생겼다. 상가 주변에 콘크리트 분진이 날렸고, 쇠로 된 핀이나 30cm에 육박하는 돌덩이가 상가 근처로 떨어졌다. 수도에서 소금물이 나왔고 소음과 진동은 일상이었다. 최근 '붕괴사고의 전조증상'이었다며 재조명받고 있는 공사현장 관련 민원들은 착공 이후 오랜 시간 쌓여온 인근 상인들의 '일상의 균열' 그 자체였다. 사고 이후 광주 서구는 아이파크 공사 현장과 관련하여 386건의 민원을 접수했다고 발표했지만 "전화로 따지면 1500번 넘게 민원을 넣었다"는 게 상가대책위원회의 입장이다.

쌓이고 쌓인 균열이 참사를 낳는다. 그리고 현장 공사가 낳은 여러 균열들을 직접 경험해온 게 바로 남필 씨를 비롯한 도매상가 상인들이다. 그들이 이번 붕괴사고를 두고 "설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라면서도 "따져보면 예견된 인재(人災)"라 말하는 건 그래서다. 붕괴사고 전까지 약 2년 반의 시간 동안 상인들이 제기해온 민원으로 현산 측이 진 '책임'은 민원 14건에 관해 납부한 2260만 원 상당의 과태료뿐이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사퇴하는 등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현산에 상인들이 입 모아 "더 이상 현산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2년 6개월 동안 이의를 제기해 왔는데 변한 게 없었어요.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남필 씨 또한 고개를 저었다.

▲문구완구종합도매상가 금호하이빌의 모습. 현재는 통행이 정지된 상태다. ⓒ프레시안(한예섭)

"피해자끼리만 서로 미안해하는 상황"

"가해자는 말이 없고, 피해자끼리만 죄송하다고 말하는 상황입니다"

사고 이후 9일째인 현시점 상인들의 상황에 대해 묻자 남필 씨는 "실종자 가족 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22일 현재까지 붕괴 현장에 매몰됐다고 알려진 6명의 실종자들 중 오직 1명만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나머지 5명에 대해선 여전히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상인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언급하는 일조차도 "죄송스러운 일"이라 말한다. 수색에 방해가 되거나 가족들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당장 막막한 생계에도 "(실종자들이)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남필 씨는 "가족 분들이 천막을 찾아와서, 오히려 우리에게 죄송하다고" 했다며 실종자 가족들도 상인들과 같은 마음임을 강조했다.

그는 "가족 분들께 너무나 가슴 아픈 얘기"라며 거듭 말하고 나서야 상인들의 막막한 현실에 대해 언급했다. 붕괴의 충격을 고스란히 경험한 상인들에게 "공포"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현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잠을 못 잔다거나, 당시 경험이 계속 생각나고, 꿈을 꾼다거나 하는 일이 많다. 남필 씨 또한 돌가루를 맞아가며 생긴 부상으로 진통제를 먹고 매일을 버티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생계에 대한 막막함이다. 안전상의 이유로 통제구역으로 묶인 금호하이빌 도매상가 내 점포 점주들은 현재 어떤 경제활동도 할 수가 없다. "당장 이번 달에도 관리비나 임대료를 내야 하는데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꽃 도매업을 해온 남필 씨는 특히 "지금은 대목 시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졸업식과 입학식,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5월 어버이날까지 장사 자체를 못하면 이 때 벌어서 1년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상인들이 대목을 위해 잔뜩 준비한 상품들은 현재 상가 안에 '쓰레기'가 되어 방치되고 있다. 남필 씨의 가게에도 1억 원 상당의 상품들이 재고로 쌓여있다. 여기저기서 비용을 끌어와 만든 상품들은 그대로 빚이 된다. 오래 유지해온 거래처와의 관계도 불안에 빠진다. 그들은 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느냐고 묻는다. 

"피해자들은 서로 미안해하고 한숨만 쉬는데, 가해자는 어디 있습니까?"

▲현장 인근에 걸린 현수막. ⓒ프레시안(한예섭)

"몇 년을 더 버텨야 할까요? 끝이 없는 전쟁 같습니다"

"저희가 더 버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죠"

사고 10일째, 사고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과 이를 막지 못한 시와 구에 대해 들었던 불신이 돌고 돌아 스스로를 찌른다.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게 남필 씨의 설명이다. "올 해 안에 이 상황이 끝날까요? 몇 개월도 못 버틸 것 같은데 앞으로 몇 년을 더 버텨야 할까요?"

그는 앞으로의 여정이 더 두렵다고 말한다. 현장이 수습된다고 해도 저 건물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함께 했던 직원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손님들은 이곳을 다시 찾아올까, 앞날에 수많은 물음표들이 붙는 것만 같다. 한숨과 함께 말을 끝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끝이 없는 전쟁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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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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