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청춘, 바이크'를 그리던 감독이 <태일이>를 연출한 까닭은?

[인터뷰]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홍준표 감독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22살 청년 재단사 전태일은 이렇게 외치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날 밤 그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자신이 못다 한 일을 이뤄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숨을 거뒀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지금,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가 우리 곁을 찾는다.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태일이>다.

<태일이>의 연출은 1985년생 홍준표 감독이 맡았다. 이전까지 홍 감독은 주로 '소년', '청춘', '바이크'를 소재로 한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예컨대, 제9회 인디애니페스타 새벽비행상 수상작 <바람을 가르는>에서는 슬로우 모션으로 그린 바이크 사고 장면을 통해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의 막막한 심정을 표현했다.

그런 홍 감독이 1948년생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삶을 담은 <태일이>를 연출하겠다고 마음먹은 까닭은 무엇일까. 전태일의 삶과 시대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홍 감독이 생각하는 지금 우리 시대에 전태일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서울 합정 프레시안에서 홍준표 감독을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레시안 : 현대사적 인물을 다루는 데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태일이>를 연출하게 됐나?

홍준표 : '명필름'에서 전작을 보고 그림이나 색채,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태일이>와 어울릴 것 같다고 연락했다. 장편 연출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였지만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세대가 겪은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표현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 자도 부담이 됐다.

'내가 이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3, 4개월 정도 꽤 길게 고민했다. 공부하다 보니 점점 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태일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주로 어떤 자료를 보고, 어떤 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나?

홍준표 : 전태일이 직접 쓴 메모나 노트, 일기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젊고 한편으로는 어리기도 한 20대 초반 청년이 보였다. '내가 하는 일이 맞나.'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한다. 장난기 있는 메모도 있고, 좋아하는 노래 가사나 음식도 적혀 있다.

메모에서부터 시작해 전태일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나중에는 전태일을 '태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청년, 동생이나 형 같은 이미지가 완성됐다. 전태일의 삶을 '소년 태일이', '태일이의 청춘'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전태일의 메모에서 또 인상 깊은 점이 있었나?

홍준표 :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우리"라는 말이다. 태일이는 '남자'에 '재단사'였다. 당시 공장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거나 노동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하지 않고, 평범하게 일하고 돈 벌고 가족을 보살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훨씬 더 열악한 조건에 있는 여공들을 생각했다. '내가 잘 돼서 공장도 차리고 돈도 잘 벌어야 겠다'는 게 아니라 '우리 다 같이 잘 돼서 따뜻하게 살자'는 마음이 보였다. 그런 메모를 보면서는 역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영화 <태일이>의 홍준표 감독. ⓒ프레시안(최형락)

70년대 봉제공장 재단사, 평범한 20대 청년 '태일이'를 그리다

프레시안 : 평범한 20대 청년 태일이를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했나?

홍준표 : 태일이가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동료도 있고, 여공도 있고, 가족도 있다. 대하는 사람마다 태일이의 말투도 조금씩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 굉장히 친한 친구나 동료에게는 장난을 친다. 어린 여공에게는 다정하게 대한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 주변 20대의 모습, 청년이나 소년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태일이가 주변 인물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상당하다.

프레시안 : 직접 겪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고도 했다. 1970년대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했나?

홍준표 : 그 당시 청계천 주변이 어땠는지, 공장이 어땠는지 가늠이 잘 안 됐다. 그때의 공간이나 시대적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당시의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시대에 따른 풍경의 변화도 담으려 했다. 영화를 보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배경이 조금씩 변한다.

특히 어려웠던 건 베테랑 재단사들이 미싱(재단기)을 만지고 행동하는 과정을 파악하는 거였다. 그런 건 자료 조사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중고 미싱을 파는 가게에 가 사장님에게 명칭이나 구조를 물었다. 처음에는 좀 어색해하시다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설명해줬다. 직접 미싱을 다루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중고 미싱을 하나 사서 애니메이터들과 직접 만져가며 작업했다.

프레시안 : <태일이> 제작기 영상을 보면, 세트를 만들고 배우들에게 직접 극에 나오는 장면을 연기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많이 쓰는 방법인가?

홍준표 :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니까. 하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도전해봤다.

<태일이>는 (장르적으로) 드라마다. 액션 활극이 있다거나 시각적으로 임팩트 있게 풀어나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캐릭터의 연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표정이나 동작 하나하나가 실제 연기자의 자연스러운 연기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연기자의 연기를 참고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도움이 됐다.

공간과 동선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전태일이 일하던) 공장에 굉장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좁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직접 가본 게 아니니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해야 좋은 카메라 앵글(피사체를 향하는 카메라의 위치나 각도)이 나올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세트를 짓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촬영하면서 만화적으로는 되는데 실제로는 안 되는 움직임이나 앵글을 알게 됐다. 공장의 느낌을 완전히 살릴 수 없다 싶으면 다시 콘티를 수정했다.

프레시안 : 실제 <태일이>의 성우진을 보면, 익숙한 배우의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캐스팅했나?

홍준표 : 목소리도 어울려야 하고 배우가 연기하는 톤이나 화법이 캐릭터와 많이 일치했으면 했다. 후보군을 선정하고 캐스팅에 들어갔는데 태일이를 연기한 장동윤 배우, 이소선 여사를 연기한 염혜란 배우를 포함해 진선규, 박철민, 권해효 배우가 다 1순위였다.

다들 참여한다고 해 너무 좋았다. 딱 원했던 배우들이 참여해 작품 속 캐릭터들과 찰떡으로 잘 맞게 표현된 것 같았다.

프레시안 : 배우들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홍준표 : 당연히 연기다. 녹음하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게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한다.

예를 들어 태일이와 엄마가 호흡을 맞춰 연기하는 장면이 있다. 많이 울컥하고 슬프기도 한 장면이다. 장동윤 배우와 염혜란 배우가 호흡을 맞춰 그 장면을 연기하는데 너무 좋았다. 진짜 엄마와 아들 같이 연기하는데 소름이 돋았다. 녹음실 안에서 목소리만 듣는데도 머릿속에서 장면이 완성됐다.

프레시안 : 연출하면서 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

홍준표 : 애니메이션은 영상 표현이 자유롭다. 공장 안에 떠다니는 먼지를 세세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전태일이 일하던) 공장이 숨쉬기도 힘들 만큼 답답했다고 한다. 이를 표현할 때는 먼지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또 어떤 때는 부유하는 먼지가 괴로워 보이게 했다. 같은 공장이지만 태일이가 동료나 여공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낼 때면 먼지가 아름다워 보이게 했다.

▲ ⓒ프레시안(최형락) 날짜: 2021년 10월 29일 장소: 프레시안 내용: 영화 <태일이>의 홍준표 감독

"영화를 보고 지금 힘들게 일하는 평범한 청년을 떠올릴 수 있다면"

프레시안 : 지난해 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태일이>를 상영했다. 관객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홍준표 : GV(감독과의 대화) 할 때 관객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모든 질문이 다 기억에 남는데, 특히 지금 2, 30대 노동하는 청년들이 떠오른다고 한 관객이 인상 깊었다.

프레시안 : 지금 시대에 전태일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홍준표 : 관객이 2, 30대 이야기를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전태일이 70년대에 분신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전태일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그러면서 노동현장이 개선된 면도 있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힘들게 일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태일 열사가 이루고자 했던 걸 단순히 한 번의 외침으로 둘 게 아니라 세대와 시대에 맞게끔 변화시켜가면서 계속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여전히 힘들게 일하는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가 떠오르기도 한다. <태일이>와 관련해 그들을 보면서 한 생각이 있나?

홍준표 : 영화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태일이가 일하던 평화시장 공장은 물론 일하기도 어렵고 대우도 좋지 않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프면 정말 좁고 지저분해도 몸을 눕힐 공간은 있었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이거 잘못됐다'고 사장에게 한 마디 할 수도 있었다.

요즘 시대가 많이 바뀌며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노동의 장이 펼쳐졌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일하는 공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도 딱히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 같다. 시대가 바뀌며 그때와 다른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가 있다면, 전태일의 정신이라는 것도 새로운 환경에서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끝으로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홍준표 : 전태일은 열사이기도 하지만 당시를 살던 20대 초반 청년이기도 하다. 영화를 본 뒤 관객들이 '전태일이 참 힘들게 일했고, 어린 나이에 큰일을 했지' 이런 생각뿐 아니라 '지금 2, 30대는 어떻지?' 떠올리고 이야기하면 좋겠다.

힘들게 일하면서 바꿔 달라고 이야기해봐야 안 될 것 같은 막막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시대가 달라졌으니 좋아졌잖아' 하고 말 게 아니라 여전히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포스터. ⓒ명필름

<마당을 나온 암탉>의 명필름, 전태일재단부터 '1970인 제작위원'까지

- <태일이> 제작을 위해 뜻을 모은 영화사와 시민들

<태일이>의 제작은 영화사 '명필름'과 홍준표 감독이 대표로 있는 '스튜디오 루머'가 맡고 있다. 전태일재단과 질라라비도 공동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이 중 명필름은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2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거둔 곳이다. 2017년 홍 감독에게 <태일이>의 연출을 제안한 곳이기도 하다.

<태일이>의 제작에는 시민의 힘도 큰 도움이 됐다. 2019년에는 <태일이> 제작 크라우드 펀딩에 1만 명 넘는 시민이 참여해 1억 원의 제작비를 모았다.

시민 후원자와 투자자 모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 <태일이> 1970인 제작위원' 신청 페이지(링크 : bit.ly/태일이2021)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태일이> 제작을 후원할 수 있다. '1970'은 전태일 열사가 생을 마감한 연도에서 따온 수다.

'1970인 제작위원'의 모집기간은 오는 20일까지다. <태일이>의 제작을 후원한 시민의 이름은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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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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