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이어진 노회찬의 장미꽃, 그리고 전태일의 풀빵

[노회찬과 한국 정치 여덟 장면 : 기록으로 톺아보기] 여섯 번째 장면 : '3.8 세계여성의 날' 노회찬의 붉은 장미꽃과 편지

"2005년 3월 8일 깊은 반성과 함께 노회찬 올림"

2005년 3월 8일 민주노동당 초선 국회의원 노회찬은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박근혜(한나라당 대표)와 장하진(여성가족부 장관), 김선옥(법제처장), 강금실(전 법무부 장관) 등 여야 여성 국회의원과 여성단체, 국회 여성 청소노동자들과 국회 출입 여기자들에게 장미꽃과 편지를 전달한다.

이를 계기로 이후 3.8 세계여성의 날에 장미꽃을 선물하는 것이 하나의 행사처럼 됐고, 많은 정치인들과 공직자, 일반인들이 장미꽃을 주고받으며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14년이 지난 2019년 3월 6일 세계 여성의 날을 이틀 앞두고 김영숙(국회 환경노동조합 위원장)은 "매년 잊지 않고 일하는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주던 모습이 선하다"며 노회찬에 대한 소회를 밝힌다.(☞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2019년 3월 16일 자 '고무장갑 낀 손에 장미꽃 선물했던 노회찬이 그립다')

"노회찬 의원님은 매년 여성의 날이면 잊지 않고 엽서와 장미꽃을 선물해주셨다. 국회에서 고무장갑 낀 채 일하는 우리들의 손에 장미꽃을 안겨준 분은 의원님이 처음이었다. 이젠 그분이 없는 첫 3월 8일이다. 이날이 다가오니 유난히 그립고, 허전하다."

ⓒ노회찬재단

※ '3.8 세계여성의 날'은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의 노동여성회의에서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과 함께 '러시아 혁명의 붉은 장미' 콜론타이(Aleksandra Mikhailovna Kollontai)가 제안한 데서 유래됐다. 2년 전인 1908년 3월 8일 미국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타 숨진 동료들을 기리기 위해 뉴욕 루트커스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며 "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했다. 이후 '빵과 장미의 파업'으로 알려진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로렌스 지방 섬유노동자들의 파업은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James Oppenheim)의 시 <빵과 장미(Bread and Roses)>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한다.

2005년 노회찬은 장미꽃을 보내며 "3월 8일을 명절처럼 보내는 세계 각국의 관례대로 축하와 다짐과 반성의 마음을 담아 장미꽃 한 송이를 보낸다"며 "발렌타인 데이는 알아도 세계여성의 날은 배운 바 없다는 제 조카와 같은 대학생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양성평등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여성단체들이 바라는 바대로 3월 8일이 국가기념일로 조속히 지정되길 바란다"고 밝히며 "적어도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가 양성평등과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다시 생각하고 다짐하는 뜻깊은 날이 되기를 염원한다"고 밝혔다.

'3.8 세계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현재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여성 차별 해소, 여성의 권리 확대, 성평등 문화 실현에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하기 위해 매년 각계각층의 여성들께 장미꽃을 전달했던 것이다. 노회찬의 장미꽃 전달은 2018년 3월까지 1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었다.

2005년 장미꽃과 함께 노회찬이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입니다.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제95회 세계여성의 날을 축하드립니다.

올해는 특히 양성차별의 대표적인 낡은 제도인 호주제가 철폐된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세계여성의 날이어서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루트거스 광장에 모여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를 기려 1910년 클라라 제트킨에 의해 제안되고 1911년부터 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전 세계에 확산된 것입니다. 나중에 유엔에서 이날을 세계여성의 날로 지정하면서 3월 8일은 여권신장과 양성평등을 위한 국제적인 명절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뜻깊은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면서 저는 한국의 여성권한지수(GEM)가 여전히 세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통계발표 앞에서 부끄러움과 죄스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서 3월 8일이 여성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여성정치세력화로부터 비롯된 이날의 유래를 현실의 과제로 받아 안고 다짐하는 날이라면 우리나라에선 여기에 더해 양성불평등의 부끄러운 현실에 대한 반성의 뜻까지 보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월 8일을 명절처럼 보내는 세계 각국의 관례대로 축하와 다짐과 반성의 마음을 담아 장미꽃 한 송이를 보냅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3월 8일 무렵에는 꽃값이 세배나 오르길 바랍니다. 발렌타인 데이는 알아도 세계여성의 날은 배운 바 없다는 제 조카와 같은 대학생이 더 이상 나오기 않기를 희망합니다. 양성평등을 위해 열심히 일해온 여성단체들이 바라는 바대로 3월 8일이 국가 기념일로 조속히 지정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버이날에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듯 적어도 이날만큼은 우리 모두가 양성평등과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다시 생각하고 다짐하는 뜻깊은 날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세계여성의 날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2005년 3월 8일 깊은 반성과 함께 노회찬 올림

1년 뒤인 2006년 노회찬의 꽃 선물은 남성 국회의원들에게도 전해졌다. 노회찬은 함께 보낸 글을 통해 "부인이나 어머님 등 가까이 계신 고마운 분들께 장미꽃 한 송이를 보내시길 정중히 권하고 싶다"며 "어버이날에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듯 이날만큼은 우리 모두가 양성평등과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다시 생각하는 뜻깊은 날이 되길 염원한다"고 말했다.

▲ 2015년 3월 8일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現 더불어민주당) 의원 트위터 갈무리.

2015년 장미꽃과 편지 선물을 받은 진선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트위터에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린다.

"이맘때쯤이면 기다려지는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분이 그 맘을 알아주시려나 노심초사하던 중....드디어 도착! 만세! 만세! 잊지 않으셨군요^^ 정성 어린 편지와 장미 한 송이! 노회찬 의원님! 짱!"

※ 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 뒤 그의 뜻을 잇기 위해 설립한 노회찬재단에 후원회원이 된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재단 소식지 <민들레> 9호에 '장미꽃 향기가 그리웠던 까닭은...'이란 제목의, 마음을 담은 글을 싣는다.

"노회찬. 그 이름을 떠올리면 코끝에서 장미 향기가 느껴진다.

봄기운이 가득 퍼지는 3월이 되면 노회찬 의원님은 매년 빠짐없이 장미꽃 한 송이를 내게 보내주셨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특별 선물이었다. 3월이 시작되면 나는 늘 장미꽃을 기다렸고, 장미꽃은 어김없이 배달되었다. (중략)

노회찬 의원님이 보내주신 장미꽃 한 송이는 승리의 상징이었다. (중략) 노회찬 의원님은 뛰어난 젠더 감수성을 가지신 분이었고,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미래에 대한 굳건한 비전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노회찬 의원님이 국회에 계시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평등한 사회가 펼쳐질 우리나라의 내일을 낙관할 수 있었다. (중략)

노회찬재단 후원회에 가입하게 된 것은 장미꽃 향기가 그리워서였다. 부드럽고도 따뜻한 그 향기는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내 코끝에 다시 맴돌았고, 노회찬 의원님의 부드럽고도 따뜻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어른거리게 했다. 십여 년 전 호주제 위헌 소송을 준비하며 만나 뵈었던 노회찬 의원님, 내가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오자 불러내어 밥을 사주시며 격려해주시던 노회찬 의원님, 만나 뵐 때마다 잘했다고 그리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다정다감하셨던 그분.

노회찬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터에 선다. 정치의 민낯은 노회찬 의원님께 비정하였지만, 노회찬 의원님이 꿈꾼 것은 따뜻한 정치였다는 것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의 힘을 노회찬 의원님은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노회찬 의원님이 꿈꾸셨던 따뜻한 정치,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 그날의 꿈을, 내 가슴속에 새겨진 노회찬 의원님과 함께 꿈꾸어본다."(☞ 바로 가기 : 노회찬재단 소식지 <민들레> 9호(2020.1.30) '장미꽃 향기가 그리웠던 까닭은...')

3월 8일 노회찬은 왜 장미꽃을 선물했을까?

'노회찬은 왜 장미꽃을 선물했을까?'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2005년부터 14년간 노회찬이 장미꽃 선물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이 기록 정리에서 내가 주목한 물음은 이처럼 단순했다.

2004년 3월 4일(목) 노회찬은 <선대본 일기>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렇게 글을 쓴다.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주말 당 행사는 준비 부족으로 취소될 것 같다. 많은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창당 이래 제대로 된 3.8절을 민주노동당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의 여성권한지수(GEM)가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통계만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각 나라의 노동운동이 메이데이를 어떻게 기념하는가를 보면 그 나라의 노동운동의 상태와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처럼, 3.8절을 어떻게 기념하는가를 보면 그 나라의 여성운동과 민중운동의 여성관을 알 수 있다. (중략)

'민족·민주·민중과 함께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1985년 3월 8일 제1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한 것은 여성단체들이었다. 1987년부터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이 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이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4년 차에도 아직 이날을 제대로 기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3월 8일은 여성정치세력화의 날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발렌타인 데이보다 이날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민주노동당이 앞장서야 한다.

일요일 저녁 아내에게 줄 붉은 장미를 사기로 한다."

2005년 한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아내인 김지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내는 여성의전화를 통해 노동문제에서 여성과 연관된 사회문제로 옮겨갔다. 본인은 이를 스스로 '발전'이라 말한다. 난 특히 아내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아내의 활동을 보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실태를 알게 된다."(☞ 관련 기사 : <여성신문> 2005년 9월 9일 자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3) "남녀차별은 내 상식에 어긋나"')

2005년 '3.8 노회찬 장미꽃'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일까? 혹시 노동운동가 출신의 여성운동가 김지선의 영향은 없었을까?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만난 것은 뜻밖의, 노회찬의 오랜 동지인 조승수 의원의 막대왕사탕이었다.

"제가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단 부대표였습니다. 챙겨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당 보좌관협의회를 맡고 있었는데,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때 겸사겸사 막대왕사탕을 한 통 사서 당의 10개 의원실 별로 다 돌렸습니다. 돈이 여유가 좀 있었다면 초콜릿을 돌렸을 텐데요. 하하하."(11월 16일 전화 통화)

발렌타인 데이 막대왕사탕을 받은 노회찬, 그것을 3.8 장미꽃으로 연결시키는 '순간 재치'를 발휘한다. 조승수의 2.14 막대왕사탕이 노회찬의 3.8 장미꽃 선물에 작은 힌트가 된 것이다. 물론 힌트는 힌트일 뿐, 그 바닥에는 오랫동안 '아내의 활동을 보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은' 것과 함께 2004년 3월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시절의 아쉬움도 분명 작동했으리라 짐작한다.

"일요일 저녁 아내에게 줄 붉은 장미를 사기로 한다."

2004년 3월 7일(일) 노회찬은 붉은 장미를 정말 사서 아내에게 선물했을까? 아쉽게도 <선대본 일기>나 여타의 기록을 통해서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3월 6일부터 3월 14일까지 당시 진행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후보 선거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일기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의 상징', 붉은 장미꽃의 등장

'사랑, 열정, 기쁨, 아름다움'을 꽃말로 하는 붉은 장미는 진보 또는 진보정당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당 정치의 역사가 오랜 서유럽의 진보 정당들은 붉은 장미를 당의 상징으로 삼고 있고, 총선 등에서 당선자에게 장미꽃을 선사하곤 한다.

▲ 노회찬의 데스크톱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붉은 장미꽃 사진. ⓒ노회찬재단

붉은 장미가 노동자들의 꽃이자 진보의 상징이 된 역사적 기원과 관련해 두 개의 설이 있다. 서유럽설과 미국설이다. 서유럽설은 19세기 서유럽 노동자들의 시위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정부와 자본의 횡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일 때면 가슴에 붉은 장미꽃을 달았다. 그들은 촘촘히 붙어있는 장미 꽃잎에서 단결을, 날카로운 가시에서 투쟁을, 붉은 빛깔에서는 노동자의 피라는 비유를 읽어냈다.

다른 하나의 설은 19세기 미국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1886년 5월 미국 시카고에서는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었다. 평화로웠던 집회는 5월 4일 폭력사태로 비화됐다. 해산을 명령한 경찰에게 누군가 폭탄을 던졌고, 이 사건으로 기소된 노동운동 지도자 8명 중 5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메이데이(5월 1일)의 기원이 된 '헤이마켓 사건'이다. 이에 노동자들은 8명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시하기 위해 옷깃에 붉은 장미를 달았고, 이것은 세계 근대사에서 장미가 진보를 상징하는 기점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붉은 장미의 상징은 관습적으로 차용되는 수준이었다. 붉은 장미의 정치적 지위가 공식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부터였다. 유럽 각국의 사회주의·사민주의 정당들이 당의 엠블럼으로 붉은 장미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붉은 장미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상징이 된 것이다. 선발 주자는 1969년 출범한 프랑스 사회당이었다.

※ 프랑스 사회당은 전신이었던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 프랑스 지회'(SFIO)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새로운 사민주의 정당의 인상을 심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회당은 엠블렘(emblem)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1971년 사회당의 정식 엠블렘으로 지정된 것이 바로 '주먹과 장미'다. 주먹은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을, 장미는 희망과 부드러움을 상징한다. 전체주의로 변질된 공산주의와 차별화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실천하겠다는 사회당의 노선을 의미하기에 제격이었다.

'주먹과 장미'는 프랑스 유권자들에게 인기를 얻더니, 머지않아 해외로 '수출'됐다. 70년대 중반부터 덴마크와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의 사회주의·사민주의 정당들이 이 엠블렘을 적극 받아들였다. 각국 사민주의 정당의 국제 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엠블렘 역시 '주먹과 장미'다. 수많은 사회주의 정당들이 이 엠블렘을 채택하면서 일부 정당들은 '표절 시비'를 피하고자 디자인을 수정하기도 했다. 일례로 덴마크와 스웨덴의 사민당은 주먹을 지우고 장미의 모양새를 다듬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 2008년 2월 29일 자 '핏빛 열정 날카로운 투쟁…'진보'의 장미')

한국에서 장미꽃 이벤트의 원조는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이다. 1997년 11월 21일 국민승리21은 권영길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 사용할 심벌 로고를 장미꽃으로 정했다. 이와 함께 상징 마크를 '웃음꽃 한반도'로 정하고 이를 장미 로고와 함께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승리21의 언론부장을 지냈던 박용진(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유럽 사민주의 정당에서 상징을 빌려왔다"며 "한국 정당사에서 장미를 상징물로 채택한 것은 국민승리21이 최초"라고 말했다.

권영길 후보는 유세를 마친 뒤 시민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재영(중앙선본 정책실장)에 따르면 "97년 대선 당시 유권자에게 그냥 다가가기 밋밋해서 유럽 좌파 정당의 사례를 떠올려 나눠주게 된 것"(<진보정치>, 169호, 2004.3.8~3.14)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보도자료와 붉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언론사를 방문하는 '아침장미팀'이 당내에 꾸려지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 선거는 김대중과 이회창, 이인제의 소위 말하는 '빅3'의 대결 속에서 군소 후보였던 국민승리21의 권영길 후보에 대한 신문의 소개는 한 줄도 소개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침장미팀이 맡은 일은 매일 아침 각 신문, 방송사의 정치부장 데스크에 권영길 후보의 보도자료와 함께 장미꽃 한 송이씩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어느 정도 효과를 얻었고 전혀 움직일 것 같지 않았던 정치부가 조금씩 권영길 후보에 대한 동향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1999년 1월 국민승리21이 진보정당 창당 제안 원탁회의(1.25)를 알리면서 장미꽃 언론 홍보를 재개해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상대방의 얼굴도 제대로 모른 채 팩스로 보내거나 직접 찾아가더라도 일방적으로 부탁하고 보도자료만 건네주는 무성의한 홍보가 일반적인 관행인 점에 비춰볼 때 국민승리21의 이같은 홍보전략은 신선한 느낌을 줬던 것이다.

김현일(<중앙일보> 정치부장)은 "지금까지 개발된 홍보 전략 중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꽃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난다. 기사에도 신경을 써줘야 하는데 지면 한정 때문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며 국민승리21의 장미꽃 홍보를 칭찬했다. 한 정치부 기자도 "정치부장이 언제 한번 장미꽃을 받아보겠느냐"며 "삭막한 편집국에 장미꽃이 놓여 있으니 다른 기자들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미디어오늘> 1999년 2월 10일 자 '국민승리21 시들지 않는 장미 홍보')

'당선 축하', 열 송이 빨간 장미꽃이 활짝 피다

제도권 정치에서 장미꽃이, 그것도 열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난 것은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총선에서였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10석을 획득했다.

비례대표 후보 당선자가 최소 7명 정도가 될 것이라는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 밤 11시 30분.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이 비례대표 후보 16명의 얼굴을 새긴 상황판에 붉은 장미 한 송이씩을 붙이기 시작했다. 당선 예상자들에게는 축하를, 낙선 예상자들에게는 격려의 뜻을 담아 비례대표 후보 모두의 얼굴에 장미를 달아준 것이다. 진보정당이 44년 만에 원내에 진입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오마이뉴스> 2004년 4월 15일 자 '[민주노동당] 말 그대로 '대약진'... 비례대표 포함 10석' 갈무리.

총선 이틀 전인 2004년 4월 13일 울산북구 현대자동차 앞에는 4월 15일 선거일을 알리며 투표를 독려하는 4만1500송이 장미꽃이 물결쳤다. 민주노동당 조승수 후보 승리의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투표일 직전 대규모 '물량전'을 진행한 것이다.

"현자노조는 13일 '행복한 정치! 깨끗한 정치! 현대자동차 노조의 힘으로 만들겠습니다.'란 문구가 직한 장미꽃 4만1천5백 송이를 퇴근하는 조합원들에게 나눠줬다. 이상욱 위원장을 비롯한 상집간부, 대의원 등이 총출동한 이 행사로 인해 주부층 지지는 더더욱 확고해질 수 있었다. "원래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하잖아요. 부인한테 그냥 '민주노동당 찍어라'는 말밖엔 하지 못한데요. '와 찍어야 하는데?' 그러면 '기냥 찍어라, 가시나야' 이러기나 하고…. 그래서 반발심 때문에 '역효과'도 나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장미꽃을 '선물'하며 자연스럽게 한마디 하니까 분위기가 달랐죠. 최소 5천표는 넘어왔을 겁니다." 현자노조 상집간부, 대의원 등 1백50여명의 활동가들은 장미꽃 4만 송이를 다듬고 포장하기 위해 전날 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했다."(<진보정치>, 174호, 2004.4.20.~4.25.)

2007년 17대 대선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노회찬. 2007년 8월 11일 마포구 합정동 '풀로 엮은 집'에서 '노회찬과 함께 집권을 꿈꾸는 당당한 언니들'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회찬 중앙여성선거대책본부' 출범식이 있었다. 노회찬 후보의 선거본부는 민주노동당 다른 후보들의 선본과 달리 여성의 참여와 활약이 돋보였다. 민주노동당 첫 여성 대표인 김혜경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공동 본부장 또한 50%가 여성으로 여성할당제 50%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노회찬 후보의 정치적 공약과 소신을 선거 과정에서도 그대로 구현하며 실천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노회찬의 여성 감성지수를 묻는 '스펀지'와 참석자들이 직접 참여해 만드는 '여성이 꿈꾸는 세상' 등 즐거운 분위기로 출범식 행사가 이어졌다. 대부분의 행사에서 대통령 후보가 주인공인데 반해 이날 노회찬 여성선대본 출범식은 참석자들이 주인공으로 노 후보가 참석한 여성들에게 장미 꽃 한 송이를 전달했고, 또 이날 참석자들이 여성선대본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

▲ 2007년 17대 대선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노회찬의 여성선본. ⓒ노회찬재단
▲ 2007년 17대 대선 민주노동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노회찬의 여성선본. ⓒ노회찬재단

"오늘은 기쁜 날!" 장미꽃과 호주제 폐지

장미꽃의 의미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호주제 문제는 여성의 존엄성을 가로막아온 핵심 장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회찬의 3.8 장미꽃 최초 전달이 있기 6일 전인 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를 골간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재석 235석 중 찬성 161표, 반대 58표, 기권 16표). 노회찬은 개인 논평을 통해 "오늘은 기쁜 날!"이라며 "새로운 신분등록부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 실현, 개인정보의 철저한 보호 등 호주제 폐지의 기본취지를 그대로 담을 그릇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2005년 3월 2일 오후 5시 32분! 한 세기 동안 여성에게 억압과 굴종의 굴레가 되어왔던 호주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오늘은 기쁜 날!> 역사는 제17대 8차 본회의를 그렇게 기록할 것이다."

▲ 2005년 3월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재적 296명 가운데 235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찬성161,반대 58,기권 16표로 가결됐다. ⓒ연합뉴스

17대 국회에서 노회찬이 첫 대표발의 법안은 2004년 9월 14일 제출한 민법 개정안이다. '아들이 우선 승계하는 호주제가 남녀차별을 조장하고 호주와 가족 구성원 간의 가부장적인 관계를 고착시키므로 이를 폐지하고, 자녀가 아버지의 성과 본만을 따르도록 했던 것을 어머니의 성도 따를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김용갑 등 당시 한나라당 남성 의원들이 호주제 폐지 반대에 앞장서는 상황에서 노회찬의 행보는 당시에도 파격적이었다. 이 때문인지, 2005년 3월 호주제가 폐지된 직후 <한겨레21>이 여성 국회의원들에게 물어본 결과 노회찬은 '여성 친화적인 남성의원' 1위로 뽑혔다.

2004년 12월 27일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야 국회의원 152명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호주제의 연내 폐지 관철을 위한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날 남성 의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호주제는 가부장제의 재생산을 통한 여성 통제로 실제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호주제가 15대, 16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17대까지 온 것은 우리 역사의 수치"라고 주장했다.

2004년 12월 27일 호주제 폐지 등을 담은 민법개정안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되자 열린우리당 이계안·이목희·이인영 의원과 민주노동당 노회찬·조승수 의원 등 남성의원 10여 명이 국회에서 '호주제 연내 폐지를 위한 남성국회의원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회찬재단

2007년 3월 2일 노회찬은 이경숙(열린우리당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핵심 내용은 "2년 전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유예기간인 올해 말까지 새로운 신분증명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도 호적법 대체입법이 제대로 심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며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호적법 대체입법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작은 현수막을 잡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박규님(노회찬의원실 보좌관), 김원정(정책위원) 두 사람의 손에 든 장미꽃. ⓒ노회찬재단

4월 11일에는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 '새로운 신분증명제도의 4월 임시국회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제17대 국회는 새로운 호적법대체입법을 신속히 처리하여 호주제 폐지를 완성하라."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2007년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을 가결해 '호주'를 정점으로 한 '호적'제도가 역사의 무대로 사라지게 됐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가 호주제 규정(민법 781조 1항 및 778조)의 헌법불합치 판결(2005.2.3.)을 내린 지 2년여 만의 일이다. 이로써 2007년 12월 31일까지 유보되었던 미완의 호주제 폐지가 2008년 1월 1일부터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뜻을 잇다

노회찬이 떠난 뒤 그의 장미꽃 전달은 2019년 3월 8일 노회찬재단의 1150송이 장미꽃 전달과 성평등 메시지로 이어졌다. 노회찬재단은 메시지를 통해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노회찬의 뜻을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노회찬재단은 공식 SNS를 통해 "노회찬 의원이 바라던 것처럼 세계여성의 날이 '여성에게 장미꽃'을 전하며 '성평등 실천을 다짐하는 축제일'이 되도록 노회찬 재단도 더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러 실천을 통해 '3.8 세계여성의 날'을 '로즈데이(ROH'S-day)'로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도 했다.

ⓒ노회찬재단

관련한 이야기는 '노회찬재단'의 소식지(준비4호)의 '3.8 세계여성의 날을 '로즈데이(ROH'S-day)'로!'에 잘 나와 있다. 일부 내용과 사진을 발췌해 적어본다.(☞ 바로 가기)

- "3월 5일과 6일엔 노회찬재단 사무실이 장미꽃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지난 14년 활동을 떠올리며 진한 향기를 내뿜는 장미꽃에 편지 엽서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직접 찾아뵙고 장미꽃을 드릴 여성들을 떠올렸습니다."

ⓒ노회찬재단

- "악덕 사업주의 노동탄압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노동자, 아직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를 충분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요양보호사와 가정관리사, 미투 운동을 촉발하고 있는 성폭력 피해 당사자들 그리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소노동자, 여성 기자, 여성단체 운동가들이 그들입니다."

▲ 악덕사업주 투쟁. ⓒ노회찬재단

- "3월 7일 오후에 서울시 은평구에서 만나 뵌 요양보호사 분들은 3.8 세계여성의 날 유래를 듣고 장미꽃을 받으며 '이런 행사가 있는 줄 모르고 살았다', '노회찬 의원께서 말한 6411번 버스의 투명인간이 바로 우리들이다'고 말씀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이분들께 직접 장미꽃을 드리며 가슴이 찡해지고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습니다."

▲ 요양보호사. ⓒ노회찬재단

- "또한, 노회찬재단은 3월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35회 한국여성대회에도 참가했습니다. 여성들께 장미꽃을 나눠주며 세계여성의 날을 축하하고 성평등 대한민국 실현을 약속했습니다. 한 중년의 남성분께서 다가오셔서 '나도 한 송이 주면 안 됩니까? 아내에게 주려고요' 하셔서 흔쾌히 드리며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 노회찬재단은 대구, 경남, 광주, 강원 지역의 후원회원 모임의 참여로 각 지역의 여성들에게도 장미꽃을 전달하고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염원했던 성평등 대한민국 실현을 노회찬재단이 이어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노회찬재단

2020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아쉬운 일이 발생한다. 노회찬재단과 전태일재단이 함께 야심차게 공동기획한, 한국여성노동자회의 '3시 STOP 여성파업' 행사(장소: 광화문 광장) 참가자들에게 장미꽃과 빵을 나누며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빵과 장미' 캠페인이 코로나19로 인해 전격 취소된 것이다.

대신에 2020년 7월 15일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열 번째' 행사가 노회찬재단 주관으로 "전태일의 '풀빵'과 노회찬의 '장미'의 만남"을 주제로 진행된다.

<이등병의 편지>의 작사·작곡가이자 가수인 김현성은, "(오늘 들고 나온 전태일평전) 책표지를 보니 아마 30년 전쯤 같다. 처음 읽고 밤새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바보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지만 바보들이 선택한 길은 세상에 깊은 의미를 준다"며 '고 노회찬 의원의 2주기 헌정곡'인 <반가워요>를 불러 자리를 빛냈다.

▲ 유튜브 <전태일TV> 화면 갈무리.

전태일다리 위에 선 조돈문(노회찬재단 이사장)은 '연대'를 외친다.

"50년 전 풀빵으로 연대를 외쳤던 풀빵연대를 실천하고 있나요? 높은 곳에서 내려와 낮은 곳을 봅시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연대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배 이상 상승할 때 그 이상으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됐지만 우리는 장미꽃으로 연대하고 6411번 버스 승객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그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습니다. 6411번 버스와 함께 연대합니다."

배달·택배노동자 등 야외 노동하는 노동자들에게 '쿨(cool)'한 얼음물이나 음료수를 나누는 캠페인인 '쿨(cool)한 연대'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와 함께 제안한 황복연(노회찬재단 6411사회연대포럼 운영위원장)은 전태일다리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버스값을 아껴서 걸어갔던 전태일이 오늘 6411번 버스에 탑승합니다. 그 전태일에게 노회찬 의원이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넵니다. 전태일은 '이게 웬 장미꽃이냐'고 묻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허허 웃으며 '그냥 오늘 하루 힘내시라'고 답합니다."

▲ 환한 웃음으로 장미꽃과 얼음물을 건네는 노회찬재단 김형탁 사무총장. ⓒ노회찬재단

이날 캠페인은 참가자들이 전태일다리를 지나가는 배달노동자들에게 얼음물과 장미꽃을 나눠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형탁(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세계여성의 날은 과거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실천적 의제를 제시하고 주체를 호명하는 날이다. '빵과 장미'는 노동운동의 살아 있는 주제다"라고 일갈한다.(☞관련 기사 : <매일노동뉴스> 3월 2일 자 '[여성노동자에게 장미꽃을 ①] ‘노회찬 성평등 장미꽃’ 나눔운동을 제안하는 이유')

아무쪼록 내년 3월 8일 즈음해서는 코로나19가 잦아들어, '풀빵과 장미꽃' 연대가 무난히 성사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노회찬도 같은 마음으로 소망할 것이다.

'노회찬과 장미', 네 가지 여담

첫 번째 여담: 로자 룩셈부르크와 노회찬의 장미

1992년 4월 1일 만기출소 후에도 여권을 내주지 않아 해외로 나가지 못했던 노회찬, 마침내 여권이 나와 1996년 6월 독일을 방문해 동베를린 외곽 프리드리히펠데 묘지를 찾아간다. 그곳에는 '잠들지 않는 붉은 장미' 로자 룩셈부르크가 혁명가, 사회주의자, 반나치스 투쟁, 스페인 내전으로 숨진 사람들과 함께 잠들어 있었다. 노회찬은 그녀의 이름인 장미를 바치고 독일 소주를 올린다.(<선대본 일기>, 2004.1.15.)

"85년 전 오늘 밤 로자 룩셈부르크가 살해되었다. 향년 48세. 지금 내 나이다"며 적은 노회찬의 일기는 1987년 서독 사민당이 참회의 뜻으로 제작한, 동베를린 란트베르 운하의 뒷벽 추모 동판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 억압과 애국주의와 전쟁에 대한 투쟁에서 확신에 찬 사회주의자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이트는 국수주의적 정치 살인의 희생자로 죽었다. 생명 경시와 인간에 대한 잔혹성은 인간이 비인간적일 수 있음을 인식케 한다. 그러한 폭력은 어떠한 갈등 해결의 수단으로 남아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 로자 룩셈부르크 묘지에서. ⓒ노회찬재단

두 번째 여담: 수인번호 336호 노회찬과 '그해 여름의 흰장미'

인민노련 사건으로 2년 4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했던 노회찬은 부산 부모님께 매주 1회꼴로 편지를 부친다. 현재 재단에는 서울구치소 시절의 서신 12신, 안양교도소 시절의 서신 7신, 청주교도소 시절의 서신 65신 해서 총 84신(동생 앞으로 보낸 서신 포함)의 서신이 소장돼 있다. 청주교도소 시절 서신 내용 중에는 여러 꽃들과 그 꽃들이 남긴 열매들이 가끔 자주 등장한다.

해바라기,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살구꽃, 복숭아꽃, 달리아, 사루비아, 국화, 흰 들깨꽃, 노란 결명자꽃, 코스모스, 맨드라미, 과꽃, 딸기(꽃), 칸나, 은행나무 등.

그런데 '안타깝게도' 붉은 장미꽃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1991년 4월 16일 자 서신에 '흰장미'가 '그해 여름'과 함께 이렇게 등장한다.

"…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사이에 어느덧 4월 중순, 정말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 것 같군요. 아마도 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도 순식간의 일일 듯싶습니다. 시간이 풍부한 곳이지만 저는 항상 시간에 쪼달리는 것 같습니다. 이 바쁜 생활이 알찬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잠자리에 누워서도 가끔 이를 악물어 봅니다.

이번 주에는 지난 주말 MBC에서 했던 주말명화 <그해 여름의 흰장미>를 보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어느 시골 휴양지에서 있었던 일을 다룬 유고 영화인데 미국 영화와 달리 소재도 건전하고 또 영화촬영·편집 등의 기술도 그 수준이 몇 단계 위더군요. 본 뒤에도 잔잔한 감동이 길게 남는 영화였습니다. TV 프로그램을 보니 요즘 MBC에선가 매주 수요일에 '세계문화기행'이란 프로를 방영하던데 내용이 좋고 도움이 되는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밤 11시에 시작하는 것만 아니라면 아버님 어머님께도 추천하고 싶은 기획인 것 같습니다."

▲ 라코 그릭 감독의 1989년 作 영화 <그해 여름의 흰 장미(That Summer Of White Roses)> 포스터.

세 번째 여담: <빵과 장미>, 그리고 노회찬

'문화인 노회찬'은 영화와 책을 통해 '빵과 장미'를 불러낸다. 먼저,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꾸리에 펴냄)의 '여는글'에서 노회찬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 관련해 이렇게 적고 있다.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린 겨울이었다. 백색의 풍경 속으로 묻혀버린 2009년의 시간 속엔 참 아픈 기억이 많이 남겨져 있다. 영하(零下)의 대기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사람들의 말수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제 꿈을 드러내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가 많이 떠오르던 시간들이었다. 이 노장 감독은 불합리한 세계와 싸우는 일에 좀처럼 지칠 줄을 모른다. 영화는 빵을 얻기 위해 국경을 넘어 미국의 호화호텔에서 잡일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빵을 얻기 위해 하루 온종일 일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은 얼마나 지긋지긋한가. 그래도 이 여성은 장미(아름답고 우아한 삶)에 대한 꿈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두 차례의 민주정부 10년, 그것을 되돌아볼 때마다 더없이 참담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이 시기가 바로 우리가 빵을 얻기 위해 서둘러 장미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10년이 지나자마자 우리들의 꿈은 종결되었다."

캐서린 패터슨의 책 <빵과 장미>(문학동네 펴냄)의 추천사로 노회찬은 이렇게 말한다.

"<빵과 장미>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뜨거운 감동만이 아니다. 100년 전 미국의 낯선 풍경 속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재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된다. 그래서 <빵과 장미>를 읽은 독자라면 그 사이 마음의 키가 10센티미터 이상 자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왼쪽과 가운데 사진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 원작 포스터와 국내 포스터. 오른쪽은 캐서린 패터슨의 책 <빵과 장미>(문학동네 펴냄).

네 번째 여담: "가장 영광스러운 직책"과 '장미헌정패'

2018년 5월 16일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노회찬은 '정의당 여성당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성 후보자들의 당선을 위해 노력한다. 선대위 발족식에서 노회찬은 "제가 태어나서 맡은 직책 중 가장 영광스러운 직책을 오늘 이 자리에서 맡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영광이고 또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문제는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 이 땅에 사는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의 공동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가사부담, 폭력으로부터의 위협, 경력단절, 차별 등 무수한 문제가 바로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성평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라며 인사말을 한다.(정의당 원내 브리핑, 2018.5.16.)

2019년 3월 6일 정의당 여성당원 일동 명의의 '장미헌정패'가 노회찬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2019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지난 14년 동안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전달하여, 여성의 인권과 성평등 세상을 위해 앞장서 왔던 페미니트스 정치인 고 노회찬 대표를 기억합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담아 장미를 헌정하며 그 뜻대로 '여성이 당당한 나라'를 위해 나아가겠습니다."

▲ 장미헌정패. ⓒ노회찬재단

* 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 '노회찬과 한국 정치 여덟 장면 : 기록으로 톺아보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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