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 프로세스에 일본 끌어들여야 친일 극복한다

[인터뷰]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③ 한일관계 개선의 입구는 위안부 문제

2018년 손에 잡힐 듯했던 한반도 평화가 다시금 멀어져 가고 있다. 남북, 북미, 한일 관계 등이 모두 교착과 갈등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고 한국에서는 강창일 신임 대사가 일본에 부임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한일 관계가 주로 과거사 청산의 시각으로 조명되고 있지만, 이보다는 한반도 평화 구축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 일본 전문가이자 청와대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 위원,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는 일본과 어떠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 과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지난 1월 27일 남 교수를 만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일본의 상관관계, 그리고 양국 간 가장 민감한 현안인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 등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세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

▲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현재 한일 갈등의 연원을 따져보면 2015년 12월의 위안부 합의가 있다. 이 위안부 합의는 그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주요 서방국 정상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중국의 2차 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것이 원인이 됐다는 평가가 있다.

박 대통령이 당시 천안문 성루에서 시진핑, 푸틴 등과 함께한 것을 두고 한국이 중국으로 기운 듯한 모습을 지켜본 오바마 행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억지로 양국을 화해시킨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역사 문제를 봉인하고 한미일 군사 동맹을 구축하려 했던 미국의 움직임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평가다.

남기정 : 당시 박근혜 정부는 대일 외교에서 역사문제와 다른 외교 현안 사이에 균형을 잡는 데 실패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를 대일 외교의 입구에 놓고 정상회담도 갖지 않는 등 나머지 협력 현안을 다 뒤로 미뤄 놓고,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 대일 외교 없다는 태도로 임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한일관계를 복원해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이 중재자로 개입해서 강력한 압박을 가해 오자 그동안 견지하던 원칙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어 타협해 버렸다.

프레시안 : 당시 2015년 위안부 합의 중에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것까지 명시한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남기정 : 받아서는 안 될 것을 받게 된 이유는 당시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사실상 '올인'했던 데 있었다. 위안부 문제의 기원과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경위 등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문제를 한일 외교 당국의 숙제로 단순화해서 간단하게 생각하고 접근했던 것이 문제다.

미국과의 관계에선 우리의 의지를 관철시킬 의지도 능력도 없는 정부가 역사 문제를 풀지 않고는 일본과는 아무것도 않겠다는 구도를 만들어 놓았으니, 일본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의 압력 앞에 허무하게 무너졌던 것이다. 결국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부담이 되었다.

프레시안 : 위안부 합의 검증 과정을 보면서, 지금처럼 사실상 합의를 무력화할 것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그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노력을 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전임 정부의 합의 사항인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그 불가피성을 성의있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남기정 :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 특히 2015년 합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어 있다. 물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합의의 파기나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었다. 이는 당시 모든 후보가 같은 입장이어서 문재인 후보만 특별히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부 출범 후 국정과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는 대일 외교의 과제가 아닌 여가부의 과제로 설정됐다. 2015년 합의가 이 문제를 외교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합의 검증 TF를 구성해서 이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합의의 결함이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 결여된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후 피해자 중심의 접근으로 피해 생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로서 여러 조치들이 실시되었지만, 2015년 합의가 양국 정부 사이의 공식 합의라는 입장에 서서 파기나 재협상은 실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던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대처 과정에서 설명이 부족했고, 그 때문에 일본 다수 국민의 마음을 사는 데 실패한 것 같다. 2015년 합의를 지지했던 일본인들 가운데 다수는,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위에 일본이 예산조치로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행동을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역사수정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던 아베 총리를 상대로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아베의 역사수정주의를 경계하던 일본의 이른바 리버럴들은 2015년 합의를 아베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일종의 제동장치로 이해한 측면도 있다.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국민의 심성, 또는 여론의 지형을 살펴보면, 두 가지 축을 교차시켜 만들어지는 네 개의 입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 축은 위안부 문제의 사실 인정 여부와 관련한 것이고, 또 다른 축은 2015년 합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 여부이다. 그렇게 보면 △사실 인정-합의 인정 △사실 인정-합의 부정 △사실 부정-합의 인정 △사실 부정-합의 부정 등의 네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 보통의 일본인 다수는 사실 인정-합의 인정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된다. 즉 위안부 문제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일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2015년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합의의 틀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른바 '리버럴'들의 입장이다.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 등의 독자들이 그런 입장이고, 보수지인 <요미우리신문>이나 <닛케이> 등의 독자까지도 이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 대척점에 위안부의 실체를 부정하면서, 2015년 합의도 부정하는 극우들이 존재한다. 아베를 둘러싼 <산케이신문> 그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2015년 합의를 패배로 받아들인다.

한편 우리 안에서 강력히 제기되는 2015년 합의 파기에 가장 호응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2015년 합의를 부정하는 그룹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들의 목소리는 일본 안에서 그렇게 크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베와 그 주변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의 입장이 있다. 이들은 위안부의 존재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싶지만, 미일동맹의 유지 강화를 위해 2015년 합의로 문제를 봉합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지소미아 등을 지렛대로 움직여서 미국을 통해 일본을 접근하는 전략을 쓰게 되면, 일본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이 움직이는 공간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의 자장에 우리가 빨려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역사문제를 진전시키면서 평화프로세스에 일본이 긍정적으로 관여하게 하려면, 위에 말한 첫째 입장의 일본인들을 우리의 우군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의 정치적 현실주의자들과 극우 사이를 분단해서 극우를 고립시키고, 리버럴들이 미일동맹주의자들을 견제하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 2015년 합의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했을 때 아베가 1밀리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 70-80%가 지지한다는 응답이 나왔다. 그런데 이들은 위안부 존재를 부인하거나 역사적으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지지한다고 응답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해당 합의로 어떻게든 접점을 찾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우리가 살려서 미래지향적인 해법으로 가져가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그게 이뤄지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구축을 지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람들을 냉담한 세력으로 몰아간 부분이 좀 있다.

프레시안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지난 1월 8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 판결이 한일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

남기정 : 지금 한일 관계 개선의 입구는 어쨌든 위안부 문제다. 8일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이걸 풀지 않으면 국내적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판결에서 이미 일본의 법적 책임을 확인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이 판결의 의미를 확인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일본은 이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즉 이 판결은 일본을 강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 정부에 대해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강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위안부 문제가 입구라고 한다면 제안할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인가?

남기정 : 무엇보다도 일본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을 깨야 한다. 일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 즉 '한국은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일본은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사실 일본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켜왔던 선이 있다.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대한 파기나 재협상을 대일 외교 과제로서 전혀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상처치유를 약속한 것이 2015년 합의의 핵심이라면, 할머니들의 상처를 건드려 덧나게 한 일본의 행동이야말로 위안부 합의 위반이었다. 먼저 이에 대해 강력히 따지는 게 순서다.

2017년 말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 보고서에서도 합의에서 일본이 인정하고 약속한 부분, 즉 사실 인정과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반성 및 사죄의 표현, 그리고 일본 정부 출연 자금에 의한 재단 설립 등에서는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정리하면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지 않는다, 재협상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피해자 중심 접근이 이뤄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일본의 자발적 조치를 희망한 것이다.

그리고 아베 총리가 1밀리미터도 움직일 수 없다고 밝힌 부분도 해석이 다소 잘못된 부분인데, 기존 입장에서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합의를 움직이게 하지 않겠다"라는 것이 정확한 뜻이다. 즉 합의 이상의 무엇인가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한국 정부는 아베 총리의 이런 입장이 합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2015년 합의 이후 아베 총리를 비롯해 외무성 등이 합의의 해석을 바꾸는 발언을 했고, 이 때문에 피해자의 명예 및 상처 회복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아니냐, 합의를 먼저 위반한 것은 일본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한국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고 10억 엔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마치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합의를 무력화시킨 것처럼 보이게 한 경향이 있다. 피해자들이 원했던 것이기도 해서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천명한 이상 당연한 조치이기도 했다.

그런데 2019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온 것처럼 이 합의는 정치적 합의일 뿐, 법적 효력을 갖춘 합의가 아니다. 당시 헌재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2015년 합의를 파기해달라는 요청을 기각하면서 해당 합의는 헌재가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법적 합의가 아니라는 점을 이끌어낸 것인데, 우리 정부 해석은 공식적 합의라는 것이고, 사법부의 판단은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즉 이 합의가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도 일본도 이 합의에 대해 법적 효력을 갖추게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해당 합의에 대해 우리는 합의를 지켜왔고 그에 입각해 요구했던 것은 일본의 성실한 행동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합의 안에서 일본이 할 것을 제대로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를 전제로 해서 평화의 소녀상 문제를 비롯해 우리가 하는 행동들이 이어지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정치적 합의를 법적 합의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우리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남기정 : 그런 과정도 있어야 하고 일본도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상처와 명예회복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2015년 합의도 결국 이러한 노력을 하기 위한 로드맵에 불과한 것 아닌가.

미일 관계에서도 법적 효력은 없지만 정치적 합의를 한 경우가 있다. 최근 스가 일본 총리가 바이든 미국 신임 대통령과 통화를 통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센카쿠(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중국과 유사 상황이 발생할 경우 미일 안보조약 5조를 적용하여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언급이었는데, 이 역시 미일 양국이 정식으로 서명한 문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양국 사이에서 외교장관이나 정상들 사이에서 몇 차례 구두로 확인했을 뿐이다. 그래서 미일 양국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또는 정상회담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두로 그 언질의 효력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위안부 합의 역시 마찬가지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효력을 확인해봐야 한다. 우리는 정부가 바뀐 이후에 이 합의를 공식적 합의라며 그 효력을 인정했다. 일본도 아베에서 스가로 총리가 바뀐 상황에서 2015년 합의를 계승할 것인지, 합의에 입각해 일본이 지속적으로 노력을 할 것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합의에서 일본은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면서 주어에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이라면서 그 뒤에 바로 "일본의 내각 총리대신으로서"라고 자격을 표명했다. 스가가 이를 어떻게 이을 것인지가 문제인데, 주어를 스가로 바꾸든지 아니면 이 부분을 스가 본인이 육성으로 확인해주든지, 그것도 아니면 스가 내각이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점을 서한으로 작성해서 피해자들에게 전달하는 등의 방식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내각 총리대신'이라는 부분도 이게 공인인지 사인인지에 대해서도 확실히 해야 한다. 일본 내에서도 합의가 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측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칠 때 총리가 '공인' 자격으로 방문하는 것을 환영하는 일본 우익을 위해서는 내각총리대신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이에 대해 비판하는 국내외 여론을 의식해 개인적인 참배 혹은 공물 참배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내각 총리대신의 야스쿠니 참배는 '사인'의 자격으로 실시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 조차 공인으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운 내각총리대신이라는 직함을 한일간의 외교적 합의에 사용하면서, 이에 대해 어떠한 공식 문서도, 서명도 없이 이를 공적 문서로 봐달라는 일본 정부의 '어리광'에 대해 따끔히 지적하고, 명확한 지침을 제시해야 한다.

바이든 시대의 한일관계는

프레시안 :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다. 토니 블링큰, 제이크 설리번 등 외교 진용은 2015년 한미일 군사동맹을 위해 위안부 합의를 밀어붙인 주역들이라는 점에서 한일 관계에 적극 개입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는데, 한일 관계나 한국이 탈퇴를 선언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문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는지?

남기정 :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우리 정부 측에서 일본에 대해 과거사 관련 최대한의 요구를 하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오히려 큰 양보를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지소미아를 체결하게 됐다. 이에 대해 거꾸로 해석해보면, 역사문제에서 국민들이 납득하는 교섭을 통해, 이른바 국민외교를 통해 일본에 합리적인 해결을 요구하면서, 경제 안보의 현안을 다른 트랙에서 처리했더라면 지소미아 체결의 과정도 그렇게 졸속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8~19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남북관계를 움직여 놓고 거기에 미국을 끌어들여서 남북미 삼각형을 이끌어가려는 것이었는데 이건 트럼프 때나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분명히 한미일 안보삼각형의 복원을 시도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일본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끌어 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에 일본을 조합하는 남북일 사이의 평화삼각형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미일동맹으로 더욱 경사하면서 미일동맹이 더욱 강화될 것이고, 38선이 쓰시마해협으로 내려왔다면서, 바이든의 동맹 복원에 올라타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견제하면서 미일동맹의 자장에 우리를 끌고 가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위해 역사문제에서 양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화해의 트랙과 평화구축의 트랙을 연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역사갈등을 안보협력으로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구축을 통해 역사화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남북한과 일본으로 구성되는 동북아 평화의 핵심 삼각형을 구축하고 이를 중심으로 위로는 유라시아, 아래로 동남아시아를 연결하여 '종축 아시아 평화지대'를 창출하는 것이 돼야 한다.

프레시안 : 올림픽 개최 여부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전될 수 있을까?

남기정 :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막되기 이전부터 2020년 도쿄-2022년 베이징 올림픽이 있으니 이들을 동북아의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가자고 줄곧 이야기했었는데 호응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와 그 이야기들을 좀 하는 것 같다.

지금와서 그러는 것은 어찌 보면 뻔히 보이는 수이기도 해서, 일본에서는 벌써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2018년 평창에서 당시 아베 총리가 나름 큰 결단을 해서 평창을 방문했는데 찬밥 신세가 되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도쿄올림픽 이야기한다고 좀 어처구니없다는 식의 반응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 문재인(오른쪽)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2월 9일 강원도 평창에서 정상 회담을 가졌다. ⓒ연합뉴스

보통의 일본인들은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의 화해하는 장면을 보고 놀라기도 하면서, 일본이 들러리를 섰다는 생각에 씁쓸해 하기도 한다. 도쿄 올림픽에 적극 협조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의 동력으로 삼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보통의 일본인의 심리를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물론 2018년 당시 아베를 환대하지 못했던 우리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포석이 있었다면 아베에게도 평창에서 나름의 역할을 인정해주고 그걸 도쿄로 이어가려고 노력했어야 했는데, 이게 안 된 것이 좀 아쉽다.

프레시안 :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 취임이 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을까?

남기정 : 전기는 될 수 있는데 한국 외교부와 청와대, 주일대사, 시민사회의 협업이 중요한 것 같은데 발걸음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좀 걱정이다.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대일정책 조정관 같은 포스트를 만들어, 공수를 연결하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리베로의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대일외교는 국내정치와 함께 가야 한다. 국민외교가 가장 필요한 것이 대일외교다.

프레시안 :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 유지 문제는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나?

남기정 :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로 들어가서 정면에서 해결해야 한다. 일본이 2015년 합의 당시 지급했던 10억 엔의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게 위로금이 아니라 적어도 고노담화의 역사인식에 입각해서 전달하는 '사죄금'이라고 규정하고 반성의 뜻을 담아야 한다.

아까 말한 것과 세트로, 즉 일본의 책임있는 사람이 피해자 할머니들의 마음에 다가가도록 직접적인 사죄를 표현하고, 이를 통해 10억엔의 의미가 분명해지면, 아직 지출하지 않고 남아있는 금액을 가지고 합의의 취지에 맞는 사업을 할 수도 있다. 피해자들에게 직접 돈을 전달하는 사업은 끝났으니, 이후에 명예회복과 상처치유를 위한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 교육, 기억 계승 사업 등을 할 수도 있다.

또 10억 엔을 이러한 의미로 풀면 이것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고리도 될 수 있다. 이는 곧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 식민 지배 문제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가 취해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이 1965년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1965년에 해결하지 못한 사항들을 보완하는 노력이 한일 양국에 필요하며, 이를 반영해서 한일 양국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대신하는 새로운 선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선언은 2010년 간 나오토 담화에 담긴 역사 인식을 반영해 일본의 식민지배가 강제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이에 입각해 새로운 선언에서는 한일기본조약에서 늘 문제가 되었던 문구, 즉 1910년 조약이 '이미' 무효가 되었다는 문구에서 '이미'를 삭제하여 1910년 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포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다.

일본이 이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일본 국가와 국민이 취했던 여러 금전적 조치들을 사실상의 배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이에 이어서 새로운 선언에는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에서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 나간다는 점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후반부 내용을 넣어 총체적으로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징검다리로 해서 북일 관계 정상화로 가는 것이 북한 비핵화로 가는 프로세스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우리가 일본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당사자로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과거사 문제에서 일정하게 양보해야 하는 것인가? 일본과 함께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남기정 : 우리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의 문제를 먼저 봐야할 것 같다. 한반도에서 민족주의는 근대 민족국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목표 설정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으로 제기됐다.

국민국가의 완결된 형태는 사실 국내적으로 최고 권위를 국민적 합의로 모아가는 과정과 대외적으로는 어떤 외국과도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로서 주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즉 국내적인 정치적‧경제적 근대화와 대외적 자주화를 동시에 실현시키는 것이 근대 국민국가의 완결된 형태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불행히도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추구되지 못하고 서로 상쇄하는 과정으로 전개됐다. 즉 자주화가 부정된 상태에서 (경제적) 근대화가 추진됐고 근대화를 포기한 상태에서 자주화를 시도했다. 근대화와 자주화가 서로를 배척하고 상쇄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물론 일본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내에는 일본에 대해 친일(親日), 부일(附日), 반일(反日), 항일(抗日) 등의 다양한 접근 방식이 나오게 됐다. 일본으로 인해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반일과 항일의 구도가 있고, 일본을 통해 근대화라도 실현시키겠다는 부일과 친일의 입장이 있어서 한국 민족주의가 일본을 통해 네 개로 분할됐다.

19세기 말, 근대 제국주의의 국제정치에서 조일수호조규를 통해 자주의 나라로 등장했던 한국은 근대화 수치가 '0'에 가까운 상태였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합병되어 자주화 수치가 '0'이 되면서 식민지 하 근대화가 시작됐다.

이 두 개의 출발점에 모두 일본이 매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근대 이래 한반도 역사의 질곡을 극복하려면 일본을 직접 마주하여 극복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항일을 무한으로 끌고 가는 것이 일본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사적 경위에서 보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얹혀서 이야기하자면, 예를 들어 한미일 안보 삼각형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자는 것은 친일, 부일의 연장선에 있는 사고방식이다. 소위 과거 이는 '반북친일', '반공친일' 등의 노선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는 결국 북한의 위협만 더 키우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노선이다. 2017년 전쟁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생각해봤을 때 한반도의 위협이 있는 한 이같은 전략은 성공하지 못한다.

이와는 거꾸로 반일의 에너지를 모아 남북이 주체적으로 움직이면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과정도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반복하지만, 일본의 주류와 워싱턴의 주류가 볼턴을 매개로 연결되던 움직임을 고려하면, 그렇게 사안은 단순하지 않다.

일본이 만들어 놓은 근대 한반도 역사의 질곡을 극복하는 과정은 이 두 가지를 통일하는 과정, 즉 남북관계와 한일관계를 동시에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민족주의의 질곡을 극복하는 길을 그려봐야 한다. 이 길을 처음으로 만든 것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고 본다.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협력하게 하는 것이 친일을 극복하는 일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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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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