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는 기대를 접고 우리를 믿고 간다

[희망뚜벅이 김진숙] 청와대 앞 노상단식 40일 차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투기자본 매각 반대와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에서 출발했다. 월요일을 빼고 매일 걸어서 청와대까지 행진 중이다. 2월 7일을 도착일로 하는 행진은 애초 김 지도위원을 포함해 3명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50~60명으로 늘어났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지난달 22일부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5명이 단식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행진을 하고 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실을 예정이다.

김진숙 복직촉구 청와대 앞 노상단식 40일 차다. 내 심경이 어떠냐고 누가 물었다.

우리는 다른 곳이 아닌 청와대 광장으로 왔다. 집회 시위 금지구역이라며 농성자에게 천막조차 허용하지 않는 곳.

굶어가면서도 기록적인 한파 속 산바람, 펑펑 쏟아지는 폭설, 사선으로 퍼붓는 겨울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청와대가 35년 전 국가폭력과 공기업의 합작인 김진숙의 부당해고 정도야 곧 바로잡아 주겠지. 해를 넘기기 전에 나서서 힘 보태주겠지. 대공분실 고문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당연히 고개 숙여 사과하고 명예회복시켜주겠지. 했던 마음이었다.

전두환 군부독재 시대 대의원 대회에 다녀와서 대의원 대회 보고 글 150여 장을 동료들에게 돌린 게, 열악한 노동현장을 언급하고 어용노조의 폐해를 지적한 단 몇 줄이 빨갱이로 몰려 대공분실로 잡혀가 피떡이 되도록 맞으며 해고될 일이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터라 그랬다.

그런 작고 소박한 기대는 아주 순진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이미 뒷간에 갈 적 마음과 달라져 우리를 잊은 이에게, 우리를 저버린 지 오래인 이에게,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는 이에게 여태 같은 편인줄 착각하고 예전 기억만으로 매달리기도 구차하다는 생각이다.

그럼 옛 동지에게 여전히 동지인지를 물으려고, 지금도 부당해고라고 생각하는지를 확인하려고, 변함없는 눈빛인지를 보려고 걸어오는 김진숙 동지의 발걸음은 의미 없는가. 끝까지 싸워 복직하라던 당사자에게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지 그 끝을 물으려는 것은 부질없는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답변이야 무응답으로도 충분히 들었다. 동지가 아니라는 답이었고, 국가폭력 문제를 노사 문제라며 등 돌린 것이었고, 세상을 보는 눈은 이미 질끈 감아 버렸다는 응답이었다. 해고와 복직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저승에 가서도 자리를 찾기 어렵겠다는 암투병 중인 해고 노동자 김진숙 동지에게. 저승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그 끝이라는 매몰차고 비정한 답을 벌써 준 것이고 일찌감치 받은 것이었다.

▲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한 시민이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는 108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숙과 40일 단식자들을 길바닥에 버려둘 겁니까' 연대자들 일천여 명이 함께 하루를 굶으며 신문광고로 공개적으로 물어도 마찬가지다. 답 없음이 그 답이다.

뚜렷이 알겠다. 수도 없이 써 보내는 짝사랑의 편지질은 멈춰야 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마시는 김칫국 사발은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아니라면 스토커 신세일뿐이다.

오늘 우리는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다시 촛불을 든다. 노동 말살의 위급 세상을 알리는 봉화 같은 촛불을 든다. 부정의한 세상을 비추는 횃불 같은 촛불을 든다.

나와 같이 혹한 속 극한의 단식을 이어온 성미선, 송경동, 정홍형 동지. 우리의 40일 단식과 희망뚜벅이의 한 달여 행진은 문재인 정권의 무책임과 무능력함만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으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서로 짝짜꿍인 한진중공업 사측과 어용노조, 노동자를 짓밟는 산업은행장 이동걸, 한때는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의 청와대. 저들과는 상관없이 과정이 아름다운 싸움이기 때문이다.

알맹이를 빼고 누덕누덕 기운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바꾸고,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를 투기자본에 넘기는 걸 저지하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 해고 없는 세상을 꿈꾸는 걸음을 함께 떼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로도 발길로도 잊은 지 너무도 오래인 민주주의를. 타는 목마름의 우리가 같이 써가는 걸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해 성취해 갈 우리를 믿는다.

[생중계] 김진숙 복직! 해고금지! 광화문 촛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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