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실패가 트럼프를 낳았다

[인터뷰 - 바이든 시대] ② 미국, 백인우선주의가 문제다

1월 20일(현지 시각) 바이든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적 이단아를 권좌에서 몰아낸 미국은 과연 이전과 같은 패권을 회복할 수 있을까? 미중관계는 어떻게 진전될 것이며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앞날은 어떻게 전대될까?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미국 전문가인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정부 출범을 계기로 향후 미국 패권의 향방과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미래를 조망해 봤다. 구체적으로 바이든 집권의 의미, 트럼프 집권과 퇴장의 의미, 미중 관계와 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전망 등 세 분야에 걸쳐 알아봤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전화 인터뷰 등을 통해 내용을 보완했다. (☞ 1편 보러 가기 : 남북전쟁 이후 최대 분열, 바이든 '트럼프 유산' 극복할까?)

▲ 이헤정 중앙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트럼프 집권의 배경

프레시안 : 2016년 트럼프의 권력 장악은 냉전 이후 미국의 패권 기획이 실패했기 때문은 아닌가. 이미 미국은 부시 행정부 때 안보와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이 수렁에 빠졌고, 2008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나.

2009년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이러한 위기의 극복을 추구했지만 2010년 중간선거에서 역사적 대패를 당하면서 이후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와 소모적 대결, 즉 민주주의의 위기마저 직면하게 됐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적 자산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이러한 안보, 경제, 정치 위기의 누적된 결과가 바로 트럼프의 당선이라고 생각된다.

이혜정 교수의 저서 <냉전 이후 미국 패권>(2017년)에서 오바마 행정부 시기를 '미국 자본주의‧민주주의‧패권의 삼중 위기'로 규정했고, 이 삼중 위기 극복의 실패가 미국 우선주의, 백인 우선주의, 트럼프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집권으로 이어진 것으로 설명했는데, 부시 행정부에서 트럼프 집권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이후 미국 패권의 행로를 간략하게 짚어봤으면 한다.

이혜정 : 미국 패권의 시각에서 보면 21세기의 첫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다. 냉전 승리로 확보한 경제, 군사, 정치력의 압도적 우위를 바로 이 기간에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고어가 맞붙었던 2000년 11월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은 예산 흑자의 사용처였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2001년 1월 미 의회예산국(CBO)은 회계연도 2000년의 예산 흑자가 2360억 달러이며 2010년에는 흑자가 8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은 상상조차 어려운 전망이지만 당시엔 미국의 패권이 영속될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러한 전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2010년 미국의 예산 적자는 1조 3000억 달러 이상이었고 실업률은 10%에 육박했다. 부시 행정부가 벌인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금융위기의 결과였다. 이러한 경제적 손실보다 중요한 것은 부시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벌인 이라크전쟁으로 동맹국의 신뢰를 잃었고, 금융위기 결과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이 그 권위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미국 패권의 위기였다.

초선의 상원의원 오바마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면서 정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08년 금융위기의 와중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기도 한 그는 변화를 위한 '담대한 희망'을 외치며 개혁을 주도해 나갔다. 이라크에서 부시의 실패가 오바마의 정치적 부상을 가져왔다면, 부시의 경제적 실패는 오바마의 백악관 입성을 확정지은 요인이 된 셈이다. 그러나 경제 문제는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오바마는 처음부터 단순히 경제위기 극복이 아니라 중산층을 복원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생각했던 건강보험을 개혁하면서 백인들의 거대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 풍토 안에서 티파티가 공화당에 들어가서 당 지도부를 무력화하면서 당의 통제력이 전혀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트럼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오바마의 계획은 안보 측면에서는 부시가 벌여놓은 지구 차원의 대테러전쟁을 아프간 중심의 알카에다에 대한 전쟁으로 축소하면서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철군을 추진하고, 테러와의 전쟁 이후 세력을 크게 늘린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이었다. 경제 측면에서는 금융위기로 붕괴에 직면한 미국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경제 재건의 핵심은 중산층의 복원이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12월 아프간에 대한 미군의 제한적 증파와 이후 단계적 철수 계획을 발표하고, 2010년 3월에는 건강보험 개혁입법(오바마케어)을 어렵사리 성사시키면서 본격적 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2010년 11월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하원 63석을 빼앗기는 역사적 패배를 당하면서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는 1938년 루스벨트 행정부의 72석 이래 최대의 패배였다.

▲ 지난 2011년 9월 8일(현지 시각) 의회합동연설 형식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AP=연합뉴스

국내외의 커다란 기대를 받으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불과 2년 만에 참패를 당한 이유는 우선 금융위기 극복을 주류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처방 안에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월가의 금융기관에는 사실상 무제한의 구제금융을 해준 반면 금융위기로 집을 잃은 930만 가구에 대한 지원은 물론 서민경제 회생에는 거의 돈을 풀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2009-2014년 상위 1%의 소득은 27.1% 증가한 반면 하위 99%는 4.4%에 그쳤다. 대다수 서민들이 외면당한 셈이다. 또한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가에 대한 규제는 누더기가 되고 다 풀어줬고 살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오바마가 월가에 포획당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미국 정치권에는 오바마 흑인 대통령에 대한 미국 백인들의 반감, 인종주의가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바로 '티파티'(Tea Party)다. 오바마의 국내정치 제1의제였던 오바마케어의 입법이 그토록 늦어진 것은 티파티의 반대 때문이었다. 자유지상주의와 인종주의가 결합된 티파티 운동가들이 볼 때 오바마케어는 자신이 내는 세금을 이민자, 흑인, 세금도 내지 않는 청년 등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낭비하는 악덕이었을 뿐이다.

이들은 민주당 진보의 상징이었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사망에 따른 2010년 1월 매사추세츠주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지원해 당선시킴으로써 당시 민주당의 상원 절대 다수 60석을 무너뜨리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후 티파티는 공화당 의회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2010년 하원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역사적 승리를 안겨준 것도 바로 티파티였다. 이어 의회로 진입한 티파티는 감세와 균형예산, 작은 정부론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2011년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을 하락시켰고 2013년 10월에는 연방정부를 폐쇄시켰다.

2010년 중간선거 패배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공화당의 반대로 중산층 복원을 위한 일체의 입법을 할 수 없었고 대통령 행정명령에 의한 조치만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2011년 11월 오바마는 '아시아로의 회귀'를 천명했지만 말 뿐이었다. 2013년부터 연방정부 예산을 자동적, 일률적으로 삭감하는 시퀘스터가 시행됐고 10월에는 예산안을 둘러싼 의회 대결로 연방정부가 폐쇄되면서 오바마의 동아시아 순방이 무산된 것이다. 당시 오바마의 부재로 APEC은 시진핑의 독무대가 되었고, 그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제안했다.

한편 2014년 들어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중동에서는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크게 세력을 떨치면서 8월 오바마는 이라크 공습을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재건과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전제였던 유럽과 중동의 안정이 파괴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때까지 오바마의 정책 중 유일하게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대테러정책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나아가 2014년 중간선거에서 상원마저 공화당에 빼앗김으로써(54 대 44) 미국은 완전한 분점정부가 됐고 오바마는 레임덕에 빠지고 말았다.

정리하자면 오바마는 중산층의 복원을 통해 미국 경제를 재건하는 동시에 아시아 회귀 및 동맹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미국 패권의 복원을 시도했지만 티파티로 대표되는 백인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에 따른 정치적 교착으로 결국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오바마의 실패가 트럼프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애덤 투즈라는 영국의 경제사학자가 2018년에 쓴 <붕괴(Crashed)>라는 책이 있다. 금융위기 이후 약 10년 간 주요 국가들의 경제 상황을 살핀 것인데, 미국과 중국의 대응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미국의 경우 당초 중산층 복원을 위한 경기 부양 예산이 1조 8000억 달러는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으나 오바마 행정부가 실제 집행한 액수는 그 절반에 불과했다고 한다. 9000억 달러 이상은 의회 통과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아예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 정부는 2009년 4월 건강보험 대상자를 당시 국민의 30%에서 90%로 대폭 확대하는 한편 고속철도 건설에 본격 나서 2008년 1천 킬로미터에서 2014년에는 1만1천 킬로미터로 늘렸다. 또한 2억 2000만 가구에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 두 가지를 구매하는 데 정부 보조금을 지급했다.

즉 미국은 작은 정부, 균형예산을 주장하는 백인 보수층의 반대에 막혀 경기회복 및 중산층 복원을 위한 조치가 좌초된 반면 중국은 인프라 투자 및 서민 지원 등 경기회복을 위한 각종 조치가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시행된 셈이다.

건강보험의 경우 트루먼 행정부 이래 클린턴, 오바마 행정부 등에서 전 국민 적용을 위해 무수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지 않았나. 미국은 자신들의 정치제도가 민주주의라고 자랑하지만 국민들의 삶의 향상을 위한 정치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런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혜정 : 트럼프의 정치적 부상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인종주의, 또는 백인우선주의다. 2008년 오바마의 당선은 탈인종주의적 통합의 새 시대에 대한 기대를 높였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오바마케어'라는 명칭에서 흑인 대통령에 대한 인종주의적 반감이 노골적으로 표현됐다(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한 건강개혁 보험에는 힐러리케어나 클린턴케어라는 명칭이 사용되지 않았다). 이후 인종을 기준으로 지지 정당을 결정하고 정책 이슈들을 재단하는 '인종화(racialization)'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됐다.

트럼프의 정치 입문이나 경선 승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이러한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가 정치적 논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오바마의 출생지가 미국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 출마 자격 자체가 없다는 버서 운동(Birther Movement)에 동참해 오바마의 출생증명서를 요구하면서부터다.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서 언론의 공짜 유명세를 얻게 된 이슈 역시 멕시코 국경의 장벽 설치 등 반(反)이민 이슈였다. 백인들의 인종주의와 토착주의가 정치적 국외자인 트럼프가 단기필마로 정치판에 진입하는 통로이자 정치적으로 부상하는 도약대 역할을 한 셈이다.

이처럼 백인우선주의가 정치적 힘을 갖게 된 이유는 인구 구성에서 백인 비율이 떨어지고 있고 특히 노동 인구 대비 이민자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78%였던 백인 인구 비율은 최근 66%까지 감소했고 21세기 중반이면 50%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960-70년대 5% 정도 불과했던 노동인구 대비 이민노동자 비율은 1990년 10%를 돌파했고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15% 선도 넘었다. 1970년대 이후 중산층의 소득이 정체 또는 감소한 데 대해 이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위기의식이 겹치면서 백인우선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백인우선주의에 편승한 트럼프가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직접적 요인은 기존 공화당 지도부가 붕괴한 것이다. 2015년 베이너 하원의장이 티파티에 의해 밀려났다. 이후 새로 옹립한 것이 폴 라이언이었는데 티파티는 2018년 그를 또 몰아냈다.

트럼프가 처음에 나타났을 때 당 지도부가 능력이 있었으면, 이번 대선에 민주당 지도부가 했던 것처럼, 경선 과정에서 몇 명을 사퇴시키고 주류 중 누군가로 표를 모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버려 둔 것이다. 공화당으로 와있는 사람들의 불만, 좌절 등을 받아줄 수 있는 지도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민주당 지도부가 2016년 경선에서 트럼프를 막지 못한 공화당 지도부처럼 무능하지 않은 것이다.

▲ 2016년 대선 이후인 11월 10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만난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당선자 ⓒAP=연합뉴스

미국 정치권, 개혁 의지 있나

프레시안 : 과도한 군사주의와 금융화가 미국 쇠퇴의 원인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왜 오바마는 중동에서 발을 빼지 못했을까?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왜 서민 경제를 살리지 못했을까? 지금 미국 정치권에 이런 문제 인식이 있나?

미국의 안보, 경제 위기가 발생한 것이 부시 행정부 때이고 이를 해결하겠다고 들어온 게 오바마인데 그 실패가 트럼프를 낳았다. 미국의 힘 있는 정치인들이 과도한 군사주의를 경계하고 금융개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혜정 : 군사주의의 경우, 오바마가 추진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수는 1950년대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추진한 한국전쟁의 조기 종전과 미군 철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닉슨 행정부가 추진한 베트남 종전 노력과 비교될 수 있다.

아이젠하워나 닉슨이 당시 전쟁의 종식을 추진한 이유 역시 재정위기였다. 아이젠하워의 해법은 핵무기와 비밀공작에 의존하는 '경제적인' 안보정책이었고, 닉슨의 해법은 미국과의 '공포의 균형'을 이룬 소련의 핵전력을 인정해주는 데탕트를 추진하되 중국과 화해해 소련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스탈린 사후 소련은 한국전쟁 휴전, 그리고 더 넓게는 극동과 유럽에서 미국과의 대치선 확정에 동의하고, 그 대치선을 넘지 않도록 진영 내부의 동맹국을 통제하는 '이중 봉쇄'를 실시했다. 즉 아이젠하워와 닉슨의 개입 축소 정책은 각기 소련과 중국의 협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협력을 기대하기 힘든데, 현재의 러시아와 중국은 크림반도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자신의 안보 이익과 주권적 권리의 행사를 주저하지 않고, 냉전 시기에 비할 만한 진졍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시리아에 대한 유엔 차원의 개입에 반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중동 개입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개혁의 경우 미국이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만들지 못하는 것 생각해 보시면, 월가의 규제는 굉장히 기술적인 분야다. 시민의 상식으로 통제해야 하는데 시민의 상식에서 자본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그러면 전문지식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고, 그러면서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프레시안 : 미국의 제도 정치권 입장에서는 미국의 군사력의 획기적 감축이나 근본적 금융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나?

이혜정 : 굳어져 있는 것 같다. 분노와 좌절이 계속 쌓이니까 음모론도 나오고. 문제는 그렇게 되면서 돈이 미국 정치를 살 수 있는 통로가 더 열린다는 점이다. 돈에 의한 정치의 지배는 훨씬 더 새로운 차원으로 열린다. 미국 정치는 국민 개개의 표도 있지만 투자자들이 정치를 유지하게 되는데, 투자는 대기업이나 월가가 하는 것이라 이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프레시안 : 오바마가 하려다가 하지 못했던 것, 군사력 줄이고 재균형 하고 중산층 복원하는 등의 과업이 바이든 집권 시기에 가능할까?

이혜정 : 바이든은 중산층 복원이 최우선이라는 부분까지는 갔다. 중산층의 이익, 미국 노동자들의 이익, 노동과 환경규범 무시하는 자유무역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지금은 선거에서 공약의 과정이니까 어쨌든 미국 사람들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까지 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 미국, 중국, 한국 노동자가 공존할 수 있는 다자주의의 틀은 있는 것일까?

당장 어려워지는 것은 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한 정치적인 부담이다. 미국 안에서 중산층을 복원하고 미국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유무역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이제부터 숙제가 던져진 셈이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바이든 선거 공약을 보면 불평등이라는 말을 전혀 안하더라.

이혜정 : 어젠다는 돼 있다. 그 부분을 미국 주류, 특히 민주당이 적어도 수사나 정책적으로 대응 못했기 때문에 트럼프에 당했다는 반성은 있다.

직장이 망하고 공장이 망하고, 여러 가지가 같이 망하고 있으니까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백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항상 이게 다 잘된 적은 없다. 뉴딜의 개혁은 백인을 위한 개혁이었다. 북부 노동자와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자의 연합이었다.

▲ 조 바이든 미국 신임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각) 워싱턴D.C.의 링컨기념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사망자 추도식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지금 기준으로 구조적으로 체계적인 인종주의를 고치겠다고 한다면 뉴딜은 있을 수 없었다. 항상 타협했는데 그 타협이 깨지면서 남부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으로 가게 됐고, 그러면서 거대한 세력 바꿔치기가 일어났다. 백인들이 대거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옮겼던 그 변화가 있던 때가 1960~70년대 말에 민권 운동할 때인데, 그 때 인구 구성을 보면 이민 노동자 비율이 5%밖에 안 된다.

역사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식은 이민의 문호를 닫는 방식이었다. 미국으로 보면 구조적 인종주의도 고치고 군사주의도 고치면 좋은데 뭔가 새로운 프로그램 만들어져야 하고, 그러려면 현실 권력 정치에서 지배층이나 제도권이 재편되고 이 안에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안에서 합의가 있기 위해 미국 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화당의 재건이다. 공화당이 어느 순간부터 서구 정당 전체에서 보면 극우 정당과 유사한 형태로 좌표를 이동해버렸다. 게다가 지금 공화당은 깨질 것이 확실하다.

어쨌든 하나의 지분은 트럼프의 공화당이고 나머지는 어떻게 할지인데 공화당이 이렇게 깨지면 일단 권력을 잡은 기득권 계층에서 선거 연합을 하려면 새로운 정책을 내놔야 하고, 그 내용을 입법화하려면 대중을 설득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당이 작동해야 하는데 공화당이 작동을 안 하는 상황이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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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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