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쿠팡발 코로나 피해자대책위원회(쿠팡대책위)' 활동가들이 <쿠팡 코로나 노동자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쿠팡보고서)>를 발간했다. 18명의 활동가로 구성된 조사단이 24명의 쿠팡 노동자를 인터뷰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불안정한 노동'과 '노동자의 무권리'를 기초로 하는 쿠팡의 노무관리가 집단감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쿠팡보고서>의 골자다. 이를 바탕으로 쿠팡대책위 활동가들이 쓴 기고글 4편이 <프레시안>에 실리기도 했다.
<쿠팡보고서> 발표 뒤 쿠팡은 자사 뉴스룸 등을 통해 이를 반박했다. 쿠팡의 주장은 다시 여러 경로로 퍼졌다. 처음은 아니었다. 쿠팡은 그간 코로나19 방역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반박했다. 지난 11월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쿠팡 대구 물류센터 단기직 사망이 산재라고 주장했을 때도 쿠팡은 뉴스룸을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간 쿠팡의 주장에 대한 검증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프레시안>이 쿠팡의 노동 및 방역과 관련해 쿠팡이 주장한 주요 내용의 신빙성을 살폈다. 총 네 편으로 준비한 기사 중 첫째 편에서는 쿠팡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편집자.
올해 3분기 LG전자를 제치고 고용규모 3위 올라선 기업. 지난 2월에서 9월 사이 국민연금가입자수 기준 1만 3744명을 새로 고용한 기업. 쿠팡의 이야기다. 쿠팡은 코로나19 이후 성장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코로나19가 확산할수록 물류량은 늘어갔고 물류센터에는 항상 일손이 모자랐다. 쿠팡은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쉽게 구했다.
쿠팡에 흘러들어간 사람 중에는 학교에서 일했던 김선우(가명) 씨, 고영재(가명) 씨, 전업주부였던 박주영(가명) 씨도 있었다. 김 씨와 고 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가 폐쇄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박 씨는 코로나19로 남편의 사업이 기울면서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프레시안>이 이들을 만나 쿠팡의 노동과 방역에 대해 들었다. 이들은 쿠팡을 정신없이 바쁜 곳으로 표현하며 쿠팡이 사람을 기계나 부품으로 보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쿠팡의 코로나19 방역에 대해서도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포장 노동자, "하루 1000개 포장, 관리자에게 모욕감 느낀 적도"
계약직 노동자 김 씨는 지난 5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부천 신선물류센터에서 1년 가까이 일했다. 김 씨의 업무는 '포장'이다.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종이박스나 프레시백(재사용이 가능한 가방)에 담는 일을 한다.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휴게시간 1시간을 빼면 온종일 서서 일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주문이 늘어나면서 김 씨의 일거리도 늘었다. 김 씨는 "코로나19로 일이 많아져 요즘은 하루에 거의 1000개 정도를 포장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꾸러미 당 2~5킬로그램 가량 되는 물품을 그만큼 포장하고 나면 손목과 손가락이 뻐근하다.
쿠팡 물류센터의 포장 업무는 UPH(Unit per Hour) 측정 업무다. 이때 UPH는 포장 노동자가 1시간 동안 포장을 완료한 횟수를 뜻한다. 관리자들이 들고 다니는 단말기에는 김 씨를 비롯한 포장 노동자들의 UPH가 실시간으로 뜬다.
자신의 노동이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만큼 김 씨가 느끼는 업무 압박도 심했다. UPH가 떨어지거나 평균에 미치지 않으면 관리자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김 씨는 바구니를 집어던지는 관리자를 본 적도 있었다. 그래도 UPH가 오르지 않으면 다른 일을 시키거나, 포장 라인 맨 앞으로 자리를 옮긴다. 관리자 바로 앞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다.
쿠팡이 언론의 조명을 받은 뒤 나아진 점도 있다. "OOO사원님. 속도 높이세요"라는 방송은 사라졌다. 험한 말을 하는 관리자도 줄었다. 단 마감시간이 가까워올 때 관리자들이 큰 소리를 치고 돌아다니는 것만은 바뀌지 않았다.
김 씨는 "채찍만 안 들었지 로마시대 노예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며 "사람들 다 있는데서 그런 대우를 받으면 자존심이 많이 상하고 창피하다"고 했다. "그런 대우"를 받지 않으려면 쉬는 시간 없이, 화장실 갈 시간도 아껴가며 일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김 씨의 바람 중 하나는 1시간 일하면 10분 정도의 휴게시간을 갖는 것이다. 김 씨는 "우리를 하나의 소모품, 혹은 부품으로 생각하는 쿠팡이 우리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계약직 불발 노동자, "병가 많이 써 재계약 안 됐단 말 들었다"
쿠팡에서 일하며 자신이 부품 혹은 소모품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은 김 씨만이 아니다. 재계약이 불발한 계약직 노동자 박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재고물품 관련 일을 했던 박 씨는 쿠팡에서 하루 2만5000~3만 보를 걸으며 일했다. 성인 걸음으로 거리를 추정하면 20km 정도다. 결국 사달이 났다. 발과 허리에 통증이 심해져 걷지도 못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회사에 10여일 병가를 냈다. 박 씨는 다음 재계약에서 탈락했다.
박 씨와 같은 쿠팡 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는 3개월 계약직으로 일하다 9개월 계약을 하고 다시 1년 계약을 맺고 일한 뒤 무기계약직이 될 기회를 갖는다. 쿠팡 뉴스룸에 따르면, 3개월 계약직에서 9개월 계약직, 9개월 계약직에서 1년 계약직이 될 확률은 각각 90%다. 여기에서 박 씨가 떨어진 것이다.
박 씨는 "재계약을 안 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뒤 나중에 아는 사람을 통해 병가를 많이 써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며 "일을 계속하기 위해 근태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아파도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박 씨가 무기계약직 노동자였다면 산재보상 보험을 신청하고 치료를 받은 뒤 복직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박 씨와 같은 계약직 노동자에게 무기계약직 노동자가 되는 길은 멀다.
박 씨 사례에 비춰보면, 일단 3개월, 9개월, 1년 계약직을 거치는 동안 몸 쓰는 일을 하면서 다치지 않아야 한다. 이 관문을 통과한다고 무기계약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쿠팡은 1년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계약직 노동자의 비율을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박 씨는 "무기계약직 전환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고, 진짜 독종이라는 소리 들은 사람들이 무기계약직이 되는 것 같다"며 "지난 10월에는 전환이 많이 됐다고 들었는데 11월에는 또 칼바람이 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감염 노동자, "코로나 확산보다 물류센터 폐쇄 더 걱정한 듯"
부천 신선물류센터에서 지난 5월 집단감염 당시 코로나19에 걸린 고 씨는 당시에 있었던 일과 초기 대응 때문에 쿠팡에 크게 실망감을 느꼈다.
고 씨는 "5월 중순경부터 부천 신선물류센터에 이태원에 다녀온 학원강사 발로 코로나19 감염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소문으로 돌았다"며 "5월 24일 출근했을 때 몇 명 씩 불러서 퇴근시켰는데 그날은 왜 그런지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 씨는 "센터가 폐쇄된 25일 저도 근육통이 심했다"며 "폐쇄를 시작할 때쯤 사람들과 함께 쉬고 있다가 웅성웅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관리자들이 '쓰레기라도 주우라'고 소리를 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 씨는 "쿠팡이 방역당국 말에 따랐다고 하고는 있지만 직원들에게 코로나19 감염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은 건 정말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이미 여러 사람이 부대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부만 조금씩 보낸 건 감염 확산보다 물류센터 폐쇄를 더 걱정한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고 씨는 "이후에도 쿠팡은 그때 일이나 코로나19 감염 피해에 대해 연락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며 "어쩌면 우리 같은 코로나19 감염자들이 빨리 모두 그만둬서 잠잠해지길 바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 씨는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사람들 중 절반은 쿠팡을 떠났다고 말했다. 사과도, 보상도 없었다. 떠난 사람들은 ‘코로나도, 쿠팡도 무섭다’고 했다. 쿠팡은 그들의 빈자리를 금세 채웠다. 쿠팡 노동자들은 여전히 소모품으로 지금도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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