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입법 잔치' 끝난 후 중대재해 유족들은 곡기를 끊었다

중대재해법 외면당한 김용균 어머니 "세상은 변한 게 없다"

정의당과 재해사망노동자 유족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정기국회에서 공정경제 3법 등 경제 개혁 입법이 '후퇴' 논란 속에 통과됐음에도 정작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데 대한 항의의 표시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 등 재해사망 노동자 유가족들은 11일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강 원내대표는 "법안 발의 후 무심한 190여 일의 시간이 흐르고 그 기간동안만 우리 국민 600여 명이 돌아오지 못하는 동안, 이 법은 법사위 소위에서 단 15분 논의됐다"며 "어제 김용균 씨 2주기를 추모하며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이제 우리는 말뿐인 추모와 재발방지 약속이 아니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원내대표는 "이낙연 대표님, 김종인 위원장님. 주호영·김태년 원내대표님. 더 미루지 말자"며 여야 지도부를 모두 호명했으나, 상대적으로 국회의 입법 주도권을 여당에 대한 책임 추궁이 더 매서웠다.

강 원내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뒤로 밀려나는 동안 지난 정기국회 막바지의 모습은 어떠했느냐"며 "174석의 의석을 가진 집권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았느냐. 중대재해기업처벌법보다 12일이나 늦게 발의된 공정거래법은 절차와 논의를 무시하고 '사활을 걸'면서, 왜 국민들 생명 지키고 안전 지키는 일에는 사활을 안 거는지 엄중히 따져 묻고 싶다"고 했다.

단식에 나선 김미숙 씨는 "어제가 용균이 얼굴을 못 본 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며 "아직도 용균이가 없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데, 벌써 2년이 흘렀다"고 절절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씨는 "용균이로 인해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계속되는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며 "세상은 변한 게 없다. 매일같이 용균이처럼 끼어서 죽고, 태규처럼 떨어져 죽고(2019.4. 수원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노동자 김태규 씨를 지칭), 불에 타서 수십 명씩 죽고, 질식해서 죽고, 감전돼서 죽고, 과로로 죽고,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화학약품에 중독돼서 죽는다. 보고 있기가 너무 괴롭다"고 호소했다.

김 씨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좀 만들어 달라고 국회에서 7일부터 노숙 농성을 했다"며 "그런데 아직 논의도 안 하고 있다니 너무도 애가 타고 답답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마지막 선택을 했다. 저는 평생 밥을 굶어본 적이 없어 무섭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자신을 갉아먹는 투쟁 방법을, 다른 사람들이 단식하는 것도 따라다니며 뜯어말리고 싶었는데 이제 저 스스로 택한다. 나의 절박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법이 제대로 만들어질 때까지 피눈물 흘리는 심정으로 단식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용관 씨 역시 "가족을 잃은 순간부터 저희는 모든 삶이 멈추어 버렸다"며 "12월7일부터 정의당과 함께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하며 국회의원들에게 간절히 호소했으나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기다리는 저희 유가족들은 피눈물이 흐른다. 이제 저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생명보다 소중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저희 가족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며 "저희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다. 오늘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될 때까지 단식을 할 것이다. 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살아서 제 발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고 (故)김용균 씨 모친 김미숙 씨 등이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미숙 씨, 강 원내대표,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 씨, 심상정 의원. ⓒ연합뉴스

이들의 단식농성 시작에 맞춰 기자회견을 연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김용균의 엄마, 이한빛의 아버지가 싸우는 이유는 '자녀들처럼 희생되는 사람이 없게 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왜 아직도 희생자 부모님들이 찬 바닥에서 곡기를 끊으면서 싸워야 하는지 답하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입법권을 양분한 두 당은 왜 아직도 '위험의 외주화'를 방치하는지, 죽음의 행렬을 끝내려 하지 않는지 이 곳에 와서 답해야 한다"면서 특히 "국회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민주당,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심상정 전 대표도 회견장을 찾아 "민주당에게 묻겠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 더 설명이 필요한가? 의석이 더 필요한가? 국민의 지지가 더 필요한가? 야당의 반대 때문에 안 되나? 도대체 왜 안 하느냐? 재계 일부를 빼고 대한민국이 이렇게 국론으로 단결된 적이 언제 있었으냐"며 "김태년 원내대표가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당장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심 전 대표는 "재계의 소원수리를 위해서 새벽 1시에 (정무위 전체회의를) 소집한 것처럼, 새벽 2시, 3시에 소집하시라"며 "이것이 이번 임시국회 밖으로 내쳐진다면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팻말을 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이제 실천을 요구한다"며 "양당 원내대표가 오늘 중에라도 만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임시국회 내에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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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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