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콜, 단독추천, AI...실험실 쥐가 된 배달 라이더들

[전태일 50년, 노동법 밖 20대] ② 배달 라이더

재봉사로 일하던 중 해고된 여공을 돕다 자신도 해고된 일. 점심을 굶는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차비가 없어 걸어서 퇴근한 일.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고 노동자 실태를 조사해 노동청에 개선을 요구한 일. 노동운동 조직 바보회를 결성한 일.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인근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쳤던 23살 청년 재단사 전태일의 삶은 연대와 저항으로 가득하다.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노동관계법 밖에서 일하며 '법 준수'와 같은 당연한 일을 가슴속에 바람으로 품고 연대와 저항으로 자신의 일터를 바꾸려는 20대 청년 노동자가 있다.

<프레시안>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그런 20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위험하고 바쁜, 그리고 점점 더 바빠지고 있는 플랫폼 배달 노동을 하는 27살 라이더다.

"친구들 중에 라이더 일 하겠다는 애들이 있어요. 저는 말려요. 위험하잖아요."

27살 양진혁 씨는 배달 서비스 '배달의민족' 2년차 라이더다. 라이더로써 양 씨의 첫 직장은 배달의민족이 아니었다. 다른 배달 대행업체에서 일했다. '자전거만 탈 줄 알면 된다'는 아는 형의 말을 듣고 배달 일을 시작했다. 그 전에도 양 씨는 식당, 술집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다.

첫 직장에서 여느 때와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을 나르던 어느 날, 헬멧이 뒤로 날아갔다. 깜빡 잊고 턱끈을 채우지 않은 탓이었다. 당황한 양 씨는 도로에서 넘어져 다쳤다. 아파서 쉬자니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걱정은커녕 '다친 건 아는데 왜 안 오냐'고 다그쳤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에 일을 관뒀다. 그때는 산재보험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몸이 나은 뒤 배달의민족에서 다시 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건 특정 배달대행업체의 문제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양 씨의 노동을 지휘 감독하는 건 핸드폰에 깔린 배달앱의 알고리즘이다. 속도를 중시하며 식당과 배달지간 거리를 직선으로 제시하는 배달앱도 배달하는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여전히 양 씨는 도로 위에서 아찔한 순간을 맞는다. 한번은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택시에 치일 뻔 하기도 했다. 다른 라이더의 부상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팔에 깁스를 하고도 오토바이를 타는 라이더를 봤다.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4개월간 쉬었다 복귀한 라이더도 있었다.

양 씨는 라이더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이 일은 너무 위험하다. 하지만 당장의 생계, 그리고 '제빵을 전공한 동생과 빵집을 연다'는 꿈을 이루려면 이 일로 버는 돈이 필요하다.

▲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일을 하는 라이더들. ⓒ프레시안 뉴스타파 공동취재진

도로 위 위험한 노동의 대가는 월 평균 250만 원

라이더들은 도로 위 오토바이에서 수행하는 위험한 노동의 대가로 얼마를 받을까.

라이더의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배달 1건 할 때마다 정해진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의 영향이 크다. 양 씨는 "365일 동안 360일 일했다는 분도 있다"며 "수입이 배달 건수로 정해지면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일하려 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양 씨는 주 5일 하루 8시간을 지켜가며 일하는 편이다.

양 씨는 자신을 비롯해 많은 라이더가 하루 30 ~ 40건의 배달콜을 받을 거라고 말했다. 배달의 민족이 직접 밝힌 작년 평균 수수료 4342원을 기준으로 수입을 계산하면 평균 300만 원 정도다. 지난 4일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조사해 발표한 배달 음식 노동자 평균 수입 295만 1000원과 얼추 들어맞는 수다.

이 돈이 그대로 순 소득이 되는 건 아니다. 계약서상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인 라이더는 일에 필요한 돈을 자비로 감당한다. 양 씨의 경우 보통 한 달 기름 값은 10만 원 정도다. 오토바이 렌트료도 한 달이면 34만 원 정도 된다. 결국 250만 원 정도가 한 달에 평균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순 소득인 셈이다.

점점 빨라지는 라이더의 노동

각각의 배달은 급하게 돌아간다. 30 ~ 40콜을 8시간 동안 수행하려면 시간당 3.75 ~ 5건의 배달을 해야 한다. 한 시간에 이 정도 빈도로 콜을 잡고 식당에 가서 음식을 받은 뒤 오토바이를 타고 건물을 찾아 음식을 나른다는 뜻이다. 그나마 경험이 쌓이면 배달 동선이 겹치는 콜을 동시에 받는 식으로 효율을 높일 수는 있다.

회사는 갈수록 라이더에게 더 빨리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양 씨가 배달의민족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배달앱이 제시한 배달 제한 시간은 콜을 잡고부터 45분이었다. 조리에 20분, 배달에 20분, 돌발상황에 대비한 유예시간 5분을 준 것이었다. 지금 배달 제한 시간은 보통 25분이다. 짧은 거리 배달에는 십몇 분이 뜨기도 한다.

배달 시간제한 단축에 불을 붙인 것은 업체 간 속도 경쟁이었다. 시작은 쿠팡이었다. 쿠팡은 한 번에 한 집만 배달하게 하는 대신 배달 제한 시간을 25분으로 뒀다. 양 씨는 "한 회사가 배달 제한 시간을 단축하니 다른 회사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를 중시한 변화가 또 있다. 예전에는 라이더가 콜을 잡은 뒤 직접 식당에 조리 요청을 했다. 현재 자신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 배달 시작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다. 지금은 콜을 받으면 배달앱이 알아서 5초안에 식당으로 조리 요청을 넣는다.

실험실의 쥐가 된 라이더들

양 씨가 더 서운하게 느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정책을 바꾸며 회사가 라이더의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라이더의 노동을 사실상 지휘감독하는 배달앱의 시스템은 위에 적은 것 말고도 여러 번 일방적으로 바뀌었다.

예전에 라이더들은 콜을 잡는 것이 전투와 같다고 해 '전투콜'이라고 불렀다. 콜이 뜨면 먼저 누르는 라이더가 임자니 좋은 배달을 두고 경쟁이 벌어졌다. 이에 회사는 '단독추천 배차'를 도입했다. 배달앱이 알고리즘에 따라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있는 라이더에게 15초간 콜을 띄운 뒤 해당 라이더가 콜을 잡지 않으면 모두에게 콜을 띄우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초보자에게 15일간 제공된다.

쿠팡이츠가 시작해 배달의민족이 도입한 AI콜도 있다. 라이더가 직접 콜을 잡는 대신 AI가 라이더 위치 등을 고려해 한 건씩 콜을 잡아주면 라이더는 이를 그대로 따라가는 시스템이다. 일정 시간 콜이 뜨지 않는 것을 감수하면 AI콜을 거절할 수도 있다.

단독추천 배차와 AI콜도 라이더와의 논의 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도입했다. 양 씨는 이 두 시스템에 좋은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콜 잡기에 능숙했던 라이더는 손해를 봤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수입이 더 공평하게 분배됐을 가능성이 있다. 콜 잡기 피로도를 던 이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자신의 노동 강도가 회사의 일방적 정책에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건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지금 조금 좋아졌다고 기뻐하기는 어렵다. 다음에 더 크게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 씨는 때로 자신이 실험실의 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배달 서비스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청년들은 배달앱에 대한 정책을 여러 차례 바꿨지만 직선거리에 근거해 배달 시간을 표기하는 것에는 손 대지 않았다. ⓒ프레시안

라이더들이 회사의 배달 정책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양 씨는 지금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민라이더스지회 조합원이다. 얼마 전부터는 간부 일도 맡았다. 라이더들이 회사에 자신의 요구를 갖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조 가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라이더끼리 소통을 늘리고 어려운 점을 나누는데도 노조가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성과가 있었다. 지난 10월 배민라이더스지회는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청년들과 단체협약을 맺었다. 협약서에는 일방적 계약해지 근절, 건강검진 비용 지원, 장기계약자 휴가비 지원 등과 관련한 내용이 담겼다. 기본수수료 배달 1건에 200원 정도로 책정되던 중개 수수료도 폐지됐다. 하루 25건, 연 200일 일하는 라이더 기준 연 10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협약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배달앱 상 배달거리가 실거리가 아닌 직선거리로 산정돼 실제 배달에 필요한 것보다 더 짧은 제한 시간이 뜨는 것이나 AI콜 거절 시 배차 지연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것 등 배달앱에 대한 라이더의 불만과 관련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양 씨는 앞으로 더 많은 라이더가 모여 배달앱 시스템과 같은 회사 정책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회사가 일단 저질러놓고 반응을 본 다음에 정책을 수정하는 일은 그만하면 좋겠다. 라이더가 노동자로 인정받아 근로기준법의 테두리에 들어가고 기본급이 책정되고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라는 일 중 하나다.

가능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정 어렵다면 자신이 꿈을 이뤄 동생과 빵집을 차린 뒤에라도 라이더들이 그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꿈꾸며 양 씨는 오늘도 배달 일과 노조 활동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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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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