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특례시' 남발, 과연 지역 균형 발전의 '희망'인가?

인구 50만 이상이면 특례시?...오히려 50만 이하 지방 소멸 가속화

정부가 인구 50만 명 이상 도시에 '특례시'라는 특별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원래 '특례시' 제정 필요성을 주장했던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취지는 낙후된 도시에 자치권과 재정 여력을 부여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때문에 광역자치시가 없는 전라북도, 강원도, 충청북도 등 일부 지역의 도청 소재지에 거점 기능을 강화하자는 의미가 컸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특례시 지정 기준이 모호함에 따라 '인구 50만 이상 도시'를 기준으로 잡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엉뚱하게도 경기도 등 이미 대도시가 형성된 지역에 우후죽순처럼 특례시가 생겨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특례시가 아닌 '비특례시'의 소멸을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제출해,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심의하고 있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와 인구 50만 이상으로서 행정안전부장관이 지정하는 대도시를 '특례시'로 명하는 내용은 담고 있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175조는 서울특별시, 광역시 및 특별자치시를 제외한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에 행정, 재정운영 및 국가의 지도, 감독에 대해서는 그 특성을 고려해 관계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례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이같은 특례를 더욱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도시계획, 도시개발계획 등의 수립 및 변경, 교부금 확대, 징세, 예산 및 재정 자립권 강화 등의 특례를 부여받게 될 전망이다.

물론 각 지자체나 지역구 의원들 사이에서 특례시 지정 요건, 특례 인정 범위 등에 대한 의견차는 비교적 크다. 그러나 인구 요건을 기준으로 50만 명 이상 도시를 특례시로 일괄 규정해 버리면 지방 균형 발전 등 원래 취지와 동떨어진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를테면 경기도엔 무더기로 특례시가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역으로 경기도 내 '비특례시'의 소멸을 가속화할 수 있다. 또한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강화되면서 강원도, 전라북도, 충청북도 등, 광역 자치시가 없는 도청소재지의 '특례시 지정' 효과도 묻힐 수 있다.

인구 50만 16곳 중 10곳이 경기도...'특례시' 무더기 지정으로 '수도권 공화국' 강화?

현재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는 경기 고양, 수원, 용인시와 경남 창원시다. 50만 명 이상 100만 명 미만의 도시는 성남, 부천, 화성, 남양주, 안산, 안양, 평택, 청주, 전주, 천안, 김해, 포항 등 12곳이다. 인구 50만 명 이상 도시 16곳 중 무려 10곳이 경기도에 몰려 있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 중 3분의 1의 인구가 모인 곳에 특례시 지정이 쏠리게 되면, 나머지 21곳 지자체는 '비특례시'로 전락하게 된다.

기초단체장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전국 226개 기초지방정부를 대표하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안병용 경기도 의정부시장은 지난 15일 정견 발표 자리에서 "특례시 도입은 도와 광역시, 소외된 시군구와의 갈등을 자초했다"고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특례시 도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안 시장은 "처음 제안된 특례시 범위가 당초 인구 100만 기준에서 50만 기준으로 늘려 인구가 많고 재정여건이 좋은 대도시에 대한 특례만 늘리고자 하는 법안으로 전락해 버렸다"며 "안 그래도 열악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비 특례지역 주민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경기도내 중소 기초단체장들은 특례시 지정에 대한 '역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례시 지정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큰 경기도 내 시군과 특례시 지정 요건을 갖춘 지자체 간 갈등이 벌써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경기도와 영남 지역 등 대도시 권이 있는 지역에 '특례'가 쏠리게 되면 강원도나 충청 일부, 호남 지역 등 낙후된 곳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커질 수 있다. 이는 지역 균형 발전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다.

50만 도시는 이미 '자립화'...특례시의 '특례'는 낙후한 곳에 집중돼야

특례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되는 것과 같은 특례시의 무분별한 지정, 특정 지역의 특례시 쏠림 현상 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히 경기도는 광역단체 내 소수 대도시의 지방세 및 GRDP 비중이 도 전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같은 재원을 열악한 곳에 배분해 소외되는 주민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한 일인데, 일부 특례시가 재정 독립성과 도시 계획 등 행정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면 수도권 내에서의 재정 분배 및 조정 역할을 담당하는 경기도의 역할이 형해화되면서 '비특례시'가 될 것이 뻔한 도내 21개 시군의 재정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경기도 관계자는 "재정적 세제 개편 시, 50만 이상 대도시는 더 살기 좋아지고, 반대로 50만 이하 도시는 SOC 투자마저 어려워져 빈익빈 부익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교육 및 복지서비스 등의 수혜를 위해 특례시로의 인구 집중화가 가속화할 수 있고, 이는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등 각종 도시 문제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

수도권 특례시 집중이 코로나19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가 시·도의 경계를 무력화하면서, 감염병 문제에서 광역 대응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이미 확인됐다. 이를테면 수원 거주자가 용인이나 과천 직장에서 감염돼 서울을 방문하는 경우를 가정하면, 개별 기초단체들은 일단 조정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는 감염병 대응에 효율적이지 못하다.

또한 수도권의 무분별한 '특례시' 지정은 '수도권 집중 현상'만 더욱 가속화할 수 있어 다른 지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때문에 '특례'의 개념은 대도시 보다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지역에 적용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의 도시나, 인근 광역자치단체에 인구유출을 겪는 강원도, 전라북도, 충청북도 등 소외된 지역에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도시는 이미 자생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자생 능력이 떨어지는 낙후 지역에 '특례'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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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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