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지 9년이 된 날, 참사 피해자들은 '아직도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정부에 제대로 된 피해 대책 마련과 피해 규모 파악 조사를 촉구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유족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31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1만1518명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판정 신청자 중 8.2%인 949명만 정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고 구제급여를 받고 있다"며 "판정 신청자 10명 중 1명도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은 셈"이라고 밝혔다.
유족과 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직접 만나 위로하고 피해대책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피해의 규모를 파악하는 조사조차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유족과 센터는 "정부는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과 피해대책 그리고 재발방지에 있어 무슨 성과를 냈는지 엄중하게 평가해야 한다"며 "내년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지 10년이 되는 날이 되기 전 정부와 국회가 전력을 다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다"고 촉구했다.
2011년 드러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특별법 제정까지 6년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2011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출산 전후 산모에게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원인미상의 폐 손상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역학조사를 발표하며 처음 알려졌다. 1994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이 최초의 가습기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해 판매를 시작한지 18년만의 일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그해 초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면서였다.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옥시 불매운동 등을 통해 가해기업의 책임을 물었다. 2016년 하반기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국정조사가 추진됐다. 2017년 1월에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이 제정됐다.
같은 해 8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청와대로 초청해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해 가슴 깊이 사과한다"며 "이 문제가 종료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했다.
알려진지 9년인데 피해 추정 67만 명, 피해 인정 949명
이후 2017년 11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돼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기관지염, 비염, 편도염 등 상기도 질환군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으로 새롭게 인정됐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 공식화 9주기인 이 날까지도 피해 신청자 10명 중 9명은 피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가습기살균제가 18년 동안 유통된 탓에 피해 추정 규모가 피해 신청자 수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달 27일 한국사회의 가습기살균제 건강 피해 경험자를 67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렇게 보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겉으로 드러난지 9년이 지난 오늘까지 67만 명의 피해자 중 949명만 피해를 인정받은 것이다.
유족과 센터는 "문재인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문제 대응에는 초라한 낙제 수준의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국회를 향해 앞으로 피해 대책 마련과 피해 규모 파악 조사에 적극 나설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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