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중심으로 의료계가 지난 26일부터 2차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의과대학 재학생과 전공의들은 국가고시와 수업거부, 무기한 진료거부에 나섰고, 정부는 파업철회와 진료개시 행정명령 및 면허정지라는 강수로 대응하고 있다.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집단행동에 나서는 핵심 이유는 정부의 의료 인원 확충안 때문이다. 정부는 의료인 부족, 수도권과 비 수도권의 의료격차 등을 이유로 의대정원 확대를 이야기하지만, 의사들은 정반대로 의사수가 부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료접근성도 높다며 정원 확대를 반대하고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이런 가운데 일선 의사들로 구성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가 '팩트체크 : 의사협회 진료거부 사태에서 제기된 주장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을 뿐더러 의료접근성도 높은 편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한국 의사수 부족하다?
한국의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2017년 기준 2.34명, OECD 국가 평균은 3.42명이었다. 즉, 한국의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OECD 국가 평균의 58% 수준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한국의 의사수가 OECD 평균에 비해 적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의협은 "한국의 의사 증가율이 OECD 평균의 3배이기 때문에 2038년이면 한국의 인구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도 "한국의 의사 증가율은 2.4%로 OECD 국가 중 1위"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인의협은 "의사단체 집행부는 과거의 의사 증가율을 제시하고 있다"며 "한국의 의사 증가율은 점점 감소해 최근 OECD 평균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반박했다.
OECD 통계를 보면, 2005~2009년 4.2%이던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증가율은 2013~2017년 2%까지 떨어졌다. OECD 국가 평균은 2005~2009년 0.4%에서 2013~2017년 1.6%로 올랐다. 의협의 주장과는 크게 동떨어진 수치다.
인의협은 또 "2000년 이래 호주 2.7배, 아일랜드 2.2배, 네덜란드 1.9배 등 OECD 국가들이 의대 졸업자 수를 늘린 반면, 한국은 2006년 의대 정원 10%를 감축한 뒤 이를 동결하고 있다"며 "한국과 OECD 국가 간 의대 졸업자 수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OECD 통계를 보면, 2007년 한국의 인구 10만 명 당 의과대학 졸업자수는 9명, OECD 평균은 9.9명이었다. 2017년 한국의 인구 10만 명 당 의과대학 졸업자수는 7.6명, OECD 평균은 13.1명이다.
인의협은 "단순화하면 2017년 기준 OECD 국가들은 10만 명 당 350명의 의사가 활동하고 연간 13.1명씩 의사를 배출하고 있고 한국은 10만 명 당 230명의 의사가 활동하고 매년 7.6명의 의사가 배출된다"며 "의협의 주장대로 2038년에 한국의 인구 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의료접근성 떨어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의사들의 주장은 어떨까. 의협은 한국 환자의 1인당 연간 외래진료 건수가 많고, 건당 평균 입원일수가 길다는 것을 토대로 한국의 의료접근성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한다.
OECD 통계를 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환자 1인당 연간 외래진료 건수는 16.6회로 OECD 평균 6.8회를 크게 웃돈다. 같은 해 한국의 평균 입원일수도 18.5일로 OECD 평균 7.7일의 2배 이상이다.
인의협은 이에 대해 "OECD는 통계를 발표하며, 한국과 일본의 진료 건수가 많은 이유는 행위별 수가제(의료인이 제공한 의료행위별로 가격을 책정해 진료비를 지불하는 제도) 때문에 의료 공급자들이 과잉의료로 경제적 인센티브를 창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며 "긴 입원기간에 대해서도 OECD는 민간의료중심 체계의 경쟁적 의료공급시장과 지불제도가 일으키는 과잉 의료공급으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외려 인의협은 "한국은 의료에 대한 경제적 접근성과 지리적 접근성이 낮은 나라"라고 주장했다. 2017년 기준 한국의 공공 의료비 보장 수준은 59%로 OECD 평균 73%에 미치지 못해 의료비 부담이 크고, 서울의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3.1명인데 반해 경북은 1.4명에 그치는 등 지역별 의료 불균형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의사 증원 반대가 아닌 올바른 의사증원안"
인의협은 의협과 대전협을 향해 "의사 증원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의사 증원 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의협이 '올바른 의사 증원안'을 이야기한 것은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 정책에도 부족한 점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의협은 △ 공공의대 설립 계획은 있지만 공공의료기관 확충 계획은 없는 점 △ 공공의대 정원이 49명으로 적은 점 △ '지역의사'의 지역 복무 기간이 10년에 불과해 대부분이 수련의 7년 과정만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점 등을 정부 정책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요컨대, '의사 증원을 전제로 더 강력하고 내실 있는 공공의료 강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인의협의 입장인 셈이다.
인의협의 주장은 진료 거부 참여 의사 일부의 주장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일례로 삼성서울병원전공의협의회는 '파업의 변'이라는 글에서 "공공의대 설립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공공의료에 관한 재정 지원이나 공공의료기관 설립 확충 계획 없는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 이들도 "한국의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보는 데서는 의협이나 대전협과 의견을 같이 한다.
2차 집단 진료거부 개원의 참여율 높지 않아...정부는 강온 양면 대응
한편, 2차 집단 진료거부에 대한 개원의들의 참여율은 높지 않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 3만 2782개 중 26일 2097개(6.4%), 27일 1905개(5.8%), 28일 1508개(4.6%)가 휴진신고를 했다. 반면, 중앙대병원에서 전공의 174명 전원이 사직서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전공의 일부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집단 진료거부에 대해 강온 양면책을 쓰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7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범정부 대책회의에서 수도권 전공의와 전임의에게 업무 개시 명령을 발동하며 "무단으로 현장을 떠난 전공의 등에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제재조치를 신속히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전날 "정부는 계속 의협, 대전협과 대화를 시도 중"이라며 "이 문제를 (의료계) 집단 휴진이나 (정부의) 처벌로 푸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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