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 김진숙 "공장을 내 발로 걸어나오고 싶다"

연내 매각 목표로 하는 한진重 상대 복직 투쟁 나선다

<소금꽃나무>의 저자이자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희망버스의 주역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복직 투쟁에 나선다. 김 지도위원의 이번 행보는 한진중이 희망퇴직을 받는 등 연내 매각을 앞두고 인력 감축에 나선 것과도 관련 있다는 후문이다. (기사 아래 김진숙 지도위원이 복직 투쟁에 나선 심정을 밝힌 글 전문 게재)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는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오는 23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 김진숙 조합원 본인과 금속노조, 지역 노동자가 모여 한 목소리로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김 지도위원은 1981년 10월 1일 한진중공업(당시 대한조선공사주식회사)에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1986년 2월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김 지도위원은 당시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같은 해 7월 4일 징계해고됐다.

부산양산지부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불법과 부당함 천지였던 김진숙 조합원의 해고는 부당한 해고였다"며 "그래서 시간이 얼마가 지났건 김진숙 조합원의 복직을 회사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한진중공업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보도자료에는 김 지도위원이 복직투쟁에 나선 심정을 밝힌 글도 첨부돼있었다. 김 지도위원은 서두에 "집채만한 철판을 잘라 뚝딱뚝딱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던 아저씨들이 하늘처럼 보였던 스물 한 살. '숙에이~' 부르시던 허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선한데 어느덧 그 아저씨들의 나이를 훌쩍 넘어 6개월 후면 정년"이라고 적었다.

김 지도위원은 "그 아저씨들과 쥐똥 섞인 쉰내 나는 도시락이 아닌 따뜻한 국이 있는 밥을 먹고 싶었고 다치면 치료 받고 싶었고 감전사 압착사 추락사가 아니라 제명대로 살고 싶었다"며 "그 꿈이 불온하고 불순해서 유배된 35년. 내일이라도 (회사가) 부르면 달려와야 하니까 멀리 가지도 못하고 책임있는 자리도 애써 피해왔던 35년"이라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김 지도위원은 "스물 여섯 살. 검은 보자기에 덮어 씌운 채 눈매가 무섭던 낯선 남자들에게 대공분실로 끌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공장을 내 발로 걸어나오고 싶다"며 "감옥에 끌려간 채 시신으로 돌아온 박창수 위원장이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곳,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그토록 내려오고 싶었던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김 지도위원의 복직투쟁은 지난 4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연내 매각을 목표로 한 한진중 경쟁입찰을 발표한 뒤, 회사가 지난 3일부터 희망퇴직을 받는 등 인력 감축 움직임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김 지도위원은 복직 심정을 밝힌 글에서 "아무 죄 없이 또 다시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조합원들 곁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게 돼서 다행"이라며 "회사가 어려우면 경영진이 먼저 책임져야 한다. 그 책임의 순서가 잘못돼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곳이 한진중공업"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다시 또 그 어리석은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복직 투쟁에 나서는 심정을 밝힌 김진숙 지도위원의 글.

집채만한 철판을 잘라 뚝딱뚝딱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던 아저씨들이 하늘처럼 보였던 스물 한 살.

"숙에이~" 부르시던 허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 선한데

어느덧 그 아저씨들의 나이를 훌쩍 넘어 6개월 후면 정년입니다.

철판에 다리가 깔려 입원했을 때 주전자에 죽을 끓여오셨던 아저씨들.

'용두산 에레지'를 구성지게 부르시던 강씨 아저씨.

해고된 후 어용노조 간부들, 관리자들,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짓밟히는 나를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오지도 못하고 눈물이 가득 고였던 아저씨.

그 아저씨들과 쥐똥 섞인 쉰내 나는 도시락이 아닌 따뜻한 국이 있는 밥을 먹고 싶었고 다치면 치료 받고 싶었고 감전사 압착사 추락사가 아니라 제명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 꿈이 불온하고 불순해서 유배된 35년.

내일이라도 부르면 달려와야 하니까 멀리 가지도 못하고 책임있는 자리도 애써 피해왔던 35년.

스물 여섯 살. 검은 보자기에 덮어 씌운 채 눈매가 무섭던 낯선 남자들에게 대공분실로 끌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공장을 내 발로 걸어나오고 싶습니다.

감옥에 끌려간 채 시신으로 돌아온 박창수 위원장이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곳.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그토록 내려오고 싶었던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박창수 위원장도, 김주익 지회장도, 재규 형도, 강서도, 금식 씨도, 상규 형도,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 죄 없이 또 다시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조합원들 곁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게 돼서 다행입니다.

회사가 어려우면 경영진이 먼저 책임져야 합니다.

그 책임의 순서가 잘못돼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곳이 한진중공업입니다.

다시 또 그 어리석은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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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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