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실태 전문가, 정은경 본부장을 믿는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이태원 클럽 감염 문제, 성소수자 인권의 시험 무대다

한국 사회에서 잠잠해가던 코로나19에 이태원 클럽이 불을 댕겼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발표 직후 이 사태가 터져 논란을 빚고 있다. 첫 감염자가 확인된 뒤 접촉자 추적에서 확진자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우려했던 집단감염이다. 문제는 그 수가 얼마나 더 불어날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태원 클럽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는 성소수자 인권, 코로나19 전국 확산 위험성, 다수의 연락 두절 접촉자와 클럽 방문객, 정부의 밀접 접촉 업소에 대한 관리 소홀 등 우리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킬 여러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언론도 앞으로 이들 문제와 관련해 서로 엇갈리거나 부적절한 보도를 할 가능성이 있어 방역 당국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현상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방향타를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이태원 클럽 관련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0일 현재 54명으로 늘어났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30명, 경기 14명, 인천 6명, 충북 2명, 부산 1명, 제주 1명이다. 감염경로별로 보면 이태원 클럽 직접 방문 관련자가 43명, 가족·지인·동료 등 기타 접촉자가 11명이다.

이태원 게이 클럽 발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가족들에게까지 바이러스를 전파했기 때문에 이태원 클럽 발 지역 사회 전파가 이미 일어난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태원 클럽 사태에서 대구 신천지 교회를 떠올린 까닭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은 여러 면에서 지난 2월 대구 신천지교회 발 확산을 연상케 한다. 당시 신천지 교회 예배에 전국 곳곳의 신도들이 참석해 감염된 뒤 거주 지역으로 돌아가 전파시켰다. 신천지 교인 집단과 동성애 집단은 사회에서 자신들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공통의 특성을 지녔다.

신천지 교회에 대해서는 기존 기독교 교단이 이단 취급을 하고 사회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신천지 교회가 대구 지역 대유행의 허브 구실을 한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보건소, 대구시청 등 사회 곳곳에서 일하던 신천지 교인들은 의심 증상을 느끼거나 확진자로 판정받았음에도 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겨 방역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이는 이태원 클럽 사태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확진자와 동시간대에 클럽을 드나들었는 데도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염려된다. 게이 등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 낙인이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을 포용하지 않는 구성원들이 많다.

대구 신천지 혐오, 이태원 클럽 사태에서 재현되면 안 돼

따라서 대구 신천지 교회 사태 때에도 신천지 교인에 대한 멸시와 혐오가 극성을 부린 것과 같이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사태를 계기로 동성애자에 대한 극혐 발언이나 글, 그리고 공격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외신들도 이에 관심을 보이며 우려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벌써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태원 클럽 사태와 관련해 심한 수위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대구 신천지 사태 때 일부 언론이 신천지 교인과 교회에 대해 혐오와 낙인 보도를 했던 것처럼 반인권 기사나 칼럼 등을 내보낼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에서 이성적이면서도 감염병 보도 준칙을 잘 따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방역 당국과 대구시 등은 대구 신천지 교회 집단 감염 사태 때 신천지 교회의 특성, 즉 집단 생활과 집단 교육, 자신들만의 끼리 문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지 못해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이 집단의 실상을 파악하고 지역사회 전파를 막는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다. 뼈아픈 실책과 실기를 한 것이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발생 현황 및 확진 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은경 본부장 우리나라 동성애자 실태 잘 알아

하지만 게이 집단에 대해서는 질병관리본부가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1980년대부터 국내에서도 유행한 에이즈와 관련해 질병관리본부는 동성애 집단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질본은 동성애 집단을 방역과 인권 차원에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몇 차례 실태조사와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게이 등 동성애 집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정은경 본부장은 질본에서 에이즈·결핵과에서도 일한 바 있다. 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도 질본에서 방역과장을 여러 차례 지냈기 때문에 에이즈와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가 깊다. 따라서 코로나19 방역 최고 책임자들이 동성애 집단을 잘 알고 있어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 전략을 세워 잘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신천지 교인이든, 동성애자든 그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히는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금도 시시때때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동성애=에이즈’란 팻말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는 단체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번에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진 것은 이곳이 게이클럽이어서가 아니다. 클럽이었기 때문이다. 게이클럽이든, 그냥 클럽이든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장시간 접촉하는 환경에서는 감염자나 환자가 한 명이라도 그 공간에 있으면 집단감염 내지 슈퍼전파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태원 클럽 역학조사 때 성(性) 상대 파악 필수

에이즈는 일종의 성병이다. 에이즈 바이러스를 지닌 사람과 지니지 않은 사람이 콘돔 등을 사용하지 않고 안전 무방비 상태에서 성 관계를 가진다 하더라도 쉽게 전파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다르다. 성병은 아니지만 바이러스를 지닌 감염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질 경우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양성애자든 무조건 100% 상대방에게 코로나19를 전파한다.

따라서 방역 당국은 이태원 클럽 관련 역학조사 때 반드시 이들의 동선과 함께 성 상대 등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동선이 되었던 성 상대가 되었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관련 내용이 노출되지 않도록 사생활과 인권 보호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만에 하나 이를 소홀히 했을 때는 관계자에 대한 엄중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이태원 클럽 사태를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우리 사회가 이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품격이 달라질 수 있다. 케이(K)방역으로 세계 방역 선진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이 성소수자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아 인권 후진국으로 추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태원 클럽 사태란 위기를 지역사회 확산 저지 성공과 성소수자 인권 고양이라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언론과 시민들의 협조와 이성적 판단과 언행이 절실하다.

에이즈 보도 준칙 알면 성소수자 보도 방향 보여

이를 위해 2006년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길라잡이-“에이즈, 편견과 차별의 벽을 넘어…”>에 있는 ‘에이즈 관련 취재보도 시 권고기준’을 소개한다. 이태원 클럽에서 벌어진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HIV감염인/AIDS환자’에 ‘성소수자’를 대입시켜 읽어보시기 바란다.

에이즈 관련 취재보도 시 권고 기준(에이즈 보도 7가지 황금 원칙)

①HIV감염인/AIDS환자의 직업, 사회활동,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방해하는 내용이 보도된 경우와 감염인이 활동의 자유를 억압 받았을 경우 이를 적극 알리고 사회적 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②HIV감염인/AIDS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성(性)파트너의 주소와 성명, 직업 등 사생활이 드러나지 않도록 이와 관련한 보도는 물론이고 취재보도를 자제해야 합니다.

③HIV감염인/AIDS환자를 그들의 감염경로(성접촉, 수혈감염, 마약주사 등), 성정체성(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직업, 남녀노소 등을 따져 차별하는 보도를 자제해야 합니다.

④에이즈를 ‘신이 내린 형벌’, ‘천형(天刑)’과 같이 비과학적인 비유나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보도하지 않도록 자제하며, HIV감염인/AIDS환자에게 사회적 차별이나 낙인을 찍거나 이를 부추기는 보도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⑤에이즈 감염 확률이나 에이즈와 관련한 새로운 통계, 이론, 학술적 내용, 에이즈 치료제, 백신 개발, 에이즈 관련 국제뉴스 등을 보도할 때는 최대한 보건당국과 관련 학회가 인정하는 에이즈 전문가의 조언이나 의견을 들은 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⑥언론은 에이즈 또는 HIV감염인/AIDS환자 관련 보도 시 그 보도가 사회나 사회 구성원에게 끼칠 영향을 미리 살핀 뒤 사회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보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⑦언론은 에이즈 보도와 관련해 국민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주거나 과도한 공포감을 주는 보도와 흥미 위주의 보도를 자제하며, HIV감염인/AIDS환자는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들이 겪는 심리적, 정신적, 육체적 교통과 직장 생활 등 사회생활의 어려움, 인권 문제 등을 의제로 만드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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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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