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 만들겠다"

자녀 경영권 승계 포기 등 4개항 발표...시민사회 "형량 줄이기용 아니냐" 의심 여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에서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법적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으며, 자녀에게 절대로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뿌리내리도록 하겠다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삼성을 만들겠다는 등 4가지 사항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기로 한 이유에 대해 "예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 왔다”면서도 “하지만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은데다 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기도 전에 제 이후의 경영권 승계를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한 각종 논란에 대해 "법을 어기는 일도 결코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면서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사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앞으로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 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면서 "노조 문제로 상처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대국민 사과는 지난 3월 11일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총수 일가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 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해 이 부 회장이 대국민 사과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항소심 재판부가 삼성의 환골탈태급 반성을 형량에 반영해주겠다는 제안에 따라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영입해 만든 기구이다.

삼성은 지난해 8월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 선고 직후 "과거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업 본연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사과하고, 지난해 12월에는 노조 와해 혐의 유죄 판결, 올해 2월엔 임직원의 시민단체 후원 무단 열람에 대해 사과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한 것은 지난 2015년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 책임에 대해 사과한 이후 5년만이다.

이번 대국민 사과의 시한은 당초 지난달 10일이었으나 삼성 측이 코로나19 비상 상황에 따른 권고문 답변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등 이유로 시한 연장을 요청해 11일로 늦춰졌다. 준법감시위 측은 이 부회장의 사과문과 관련한 입장을 7일 정례회의에서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사회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사과가 뇌물 수수 혐의로 파기환송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형량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과거의 행태로 볼 때 지속적 실천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은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전문이다.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실망을 안겨드리고 심려를 끼쳐드리기도 했습니다.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데에도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사과드립니다.

저는 오늘 반성하는 마음으로 삼성의 현안에 대해 솔직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많은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해 뇌물혐의로 재판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립니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이상 논란이 안 생기게 하겠습니다.

법을 어기는 일도 결코 하지 않겠습니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 가져온 제 소회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14년에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난 이후 부족하지만 회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래비전과 도전 의지도 갖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며 신사업에도 과감하게 도전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윤택해지게 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분이 혜택을 누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삼성을 둘러싼 환경은 이전과 완전히 다릅니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시장의 룰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항상 우리 옆에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업의 규모로 보나 IT 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갖고 있는 절박한 위기의식입니다.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들을 모셔와야 합니다. 그 인재들이 사명감을 갖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 이끌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입니다. 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삼성은 계속 삼성일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기는 주저해왔습니다. 경영환경도 녹록지 않고 저 자신이 제대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승계를 언급한다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노사문제에 대한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성의 노사문제는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삼권을 확실히 보장하겠습니다.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습니다. 그래서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습니다.

시민사회 소통과 준법 감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와 견제가 그 본연의 역할입니다. 기업 스스로가 볼 수 없는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할 것입니다. 낮은 자세로 먼저 한 걸음 다가서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저부터 준법을 거듭 다짐하겠습니다.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준법감시위는 독립적으로 활동할 것입니다. 그 활동이 중단 없이 이뤄지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의 오늘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불가능해 보였던 미래입니다.

임직원 모두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고 많은 국민의 성원도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최근 2~3개월에 걸친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서 저는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목숨을 걸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나선 의료진 공동체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자원봉사자,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배려를 실천하는 많은 시민, 이들을 보면서 무한한 자긍심을 느꼈습니다.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됐고 제 어깨는 더 무거워졌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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