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사람들은 왜 싸워? 함께 하는 사람들은 또 왜?

[프레시안books] <여기, 우리, 함께>

을인 누군가가 갑과 싸우기로 마음먹기란 쉽지 않다. 꼭 상대가 갑이라서가 아니다. 애초 사람이 사람과 싸운다는 게 편한 일은 아니다.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안진석 씨는 <여기, 우리, 함께>(희정 지음, 갈마바람 펴냄)에서 '법대로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하며 회사와 싸운 경험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는다.

"사람이 돈을 빌려줬으면 갚으라고 할 권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돈 빌려주고도 돈 달라 소리도 못하고 있구나. 모든 사람이 쟤한테 돈 달라는 소리하면 절대 안 돼! 이러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싸우다 보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곁에 '당신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저 말을 한 안 씨가 속한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은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직접고용 투쟁에 가장 열심히 함께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한국마사회 문중원 기수의 유족은 서울에 올라와 싸울 때 3명의 활동가가 지키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지냈다. 이뿐이 아니다. 싸우는 사람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사람도 있고, 이들과 함께 고민하는 법률가도 있다.

갑질이 존재하기에, 갑에 맞서 싸우겠다는 사람들은 늘 있다. 그들 곁에 뭐라도 하겠다고 모이는 사람들도 있다. 전태일 50주기 공동 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의 일환으로 출간된 <여기, 우리, 함께>는 "나는 '왜'라고 묻는 사람"이라고 자칭한 기록노동자 희정이 오래 싸우는 이들과 그 결을 지키는 이들을 만나며 모은 이야기를 엮은 르포집이다.

'왜'라고 묻는 사람은 싸우는 사람을 어떻게 기록하는가

맛보기로 톨게이트 수납원에 대한 장을 보자.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수납원들은 해고 상태에서 반년이 넘도록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웠다. 듣기만 해도 아찔한 일을 회상하는데 수납원들은 저자에게 자꾸만 씩씩한 말을 건넨다.

"괜히 신나더라고."

"우리가 진 적이 없어."

그들이 왜 그렇게 씩씩한지 궁금했던 저자는 수납원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름의 답을 찾는다.

하루 수만 대의 차가 오가는 톨게이트에서 별의별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수납원의 노동은 애초 만만하지 않다. 미납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며 수납원의 태도를 트집 잡아 영업소 사무장을 부르라고 난리를 치는 운전자들이 있다. 과적 등 문제가 있는 차량을 세우면 반드시 보복성 민원이 따른다.

이런 저런 사람을 상대하며 어떻게든 일이 되게 만들어놓으면 관리자는 미납금 납부, 고객 평가 등을 두고 수납원을 줄 세워 하위 순위자를 혼냈다. 연말이면 도로공사 정규직은 성과급 나온다고 신나 있는데 수납원들은 1년 계약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잘릴 걱정을 해야 했다.

대부분 도로공사 퇴직자로 이뤄진 사장들은 그런 수납원을 등쳐먹었다. 사장들은 도로공사에서 수납원의 임금 말고도 복지비, 회식비 등을 받았다. 수납원들은 그 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 돈이 있다는 걸 다 알면서도 '어디 쓰냐'고 묻지도 못했다. 사장들 사이에서는 "저 바보들한테 못 빼먹으면 니가 바보"라는 소리가 돌았다.

도로공사 퇴직자의 "퇴직 보험", 연말이면 잘려나갈 걱정에 "바보 취급"당해도 아무 말 못하는 계약직. 그렇게 산 세월이 5년을 넘은 사람도 있고 10년을 넘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민주노총에 가입했다"고 하니 그 전까지 "야, 야" 거리며 하대하던 관리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민주노총 사람들은 "노동자에게는 노동3권을 활용해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자꾸만 힘을 줬다. 수납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든 뒤 다 같이 함께하면 "싫은 건 싫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갔다.

수납원들의 직접고용 투쟁은 힘든 노동과 불합리한 대우를 버텨온 단단한 사람들이 '우리'로 뭉쳐 도로공사와 세상을 향해 "모두 함께 직접고용"이라는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외치며 싸운 일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을 회상하는 수납원들이 씩씩할 수밖에.

▲ 작년 11월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하는 오체투지 중 몸을 풀고 있는 톨게이트 수납원들. ⓒ프레시안(최형락)

저자의 기록은 단순히 을들의 연대를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이 즈음에서 자신이 "싸우는 노동자들이 즐겁다고 한 말을 고스란히 믿진 않았던" 사람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수납원들에게 "행복하세요?"라고 묻는다.

저자의 질문에 대한 수납원들의 답은 직접 책을 만날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자.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힘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묻던 저자가 찾은 진짜 답도 책속에 들어 있다.

'세상에 내놓기에 충분한' 이야기들

<여기, 우리, 함께>에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사례 외에도 세종호텔, 파인텍, 시그네틱스, 풍산마이크로텍, 삼성 등에서 오래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싸우는 사람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이들, 콜트콜텍 노동자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함께했던 미술가들, 홍대 궁중족발 사장의 철거 반대 투쟁을 함께했던 음악가들, 노동자와 함께하겠다고 이야기하는 노무사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겼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왜 이들을 기록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썼다. 저자 자신에게 충분한 답은 "싸우고 있으니까"다. 하지만 이 답이 "세상에 내놓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저자는 싸우는 사람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에 충분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듣고 기록하고 다시 고민한 흔적을 책에 드러냈다.

열심히 들은 덕에 한 투쟁현장의 기록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만난다. 눈물짓게 될 때도 있지만 웃게 될 때도 있다. 열심히 고민한 덕에 저자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그들의 사정이 같이 궁금해진다. 종종 등장하는 저자의 솔직한 생각을 적은 대목을 읽는 일도 즐겁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책이라는 말이다.

▲<여기, 우리, 함께>(희정 지음) ⓒ갈마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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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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