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을 구속하라", "재벌적폐청산" 구호가 적힌 스티커를 붙인 150여 대의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삼성전자 서초사옥 주변 차도를 빙빙 돌았다. 차를 가져오지 않은 시민도 사옥 주변 인도에 피켓을 들고 섰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강남역 철탑 위 김용희 삼성 해고 노동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 씨는 "꼭 승리해서 삼성에 노조 깃발이 휘날릴 수 있게 만들겠다"며 "이재용을 구속하라. 무노조경영 폐기하고 해고자 문제 해결하라"고 외쳤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김 씨의 강남역 앞 25m CCTV 철탑 농성이 4일로 300일이 됐다. 코로나19로 집회를 열 수 없는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은 이날 삼성전자 서초사옥 주변에서 재벌적폐청산 차량행진을 열었다.
임미리 "김용희 내려오면 민주당도 승리"
차량행진이 끝날 무렵 김 씨가 올라간 철탑 아래에서 약식집회가 열렸다. 사람들이 모이자 김 씨는 철탑 아래 달린 작은 문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이날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김 씨를 만나고 내려온 임미리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최기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 삼성피해자공동투쟁 대표단 등이 김 씨 싸움의 의미를 짚었다.
"지난 여름부터 고공농성장을 찾아 김용희 씨와 가끔 전화하던 사이"라는 임 교수는 "김용희 씨가 '먼저 간 동지도 있는데 저는 아직 살아서 복'이라고 이야기하길래 '이게 무슨 복이냐. 희생하는 노동운동 말고 잘 먹고 잘 사는 노동운동하자'고 했다"고 김 씨와의 대화 내용을 전했다.
임 교수는 "제가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가장 큰 이유는 김용희 씨 제발 살아서 땅으로 내려오라는 것이었다"며 "민주당이 김용희 씨를 땅으로 내려오게 하면 선거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그 칼럼 썼다. 민주당 제발 정신 차려달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제가 수없이 많은 고공농성 진료를 다녀봤지만 김용희 씨가 올라간 철탑이 가장 좁고 가장 열악하다"며 "저 위에서 300일을 버티는 건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자기를 갈아 넣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씨가 올라간 철탑의 너비는 1평이 되지 않는다.
최 위원장은 "김용희 씨를 땅으로 내려오게 해서 건강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삼성과 문재인 정부가 당장 김용희 씨에게 사죄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루빨리 땅을 밟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성애 김용희고공농성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오늘 많은 분이 함께 해주셔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김용희 씨에게도 반드시 땅으로 건강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힘내서 싸우겠다고 약속드리고 내려왔다"고 전했다.
300일 고공농성에도 아무 말 없는 삼성
김 씨는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1991년과 1995년에 두 번에 걸쳐 해고됐다. 이후 20년이 넘게 '삼성의 진정성 있는 사과, 복직, 해고기간에 대한 임금지급'을 요구하며 삼성과 싸워왔다.
회사에 다녔다면 정년퇴직 날짜였을 60살 생일을 한 달 앞둔 작년 6월 10일, 김 씨는 '마지막으로 한 번 제대로 싸워보겠다'며 강남역 앞 CCTV 철탑에 올랐다. 김 씨는 이후 55일 간 단식을 하다 주변의 만류로 중단했다. 지난 달 27일 김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작년 12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전 의장, 강경훈 삼성전자 전 부사장 등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에서의 '노조 파괴'에 대해 1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과거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김 씨의 고공농성에 대해서는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