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이 기후위기 운명을 결정한다

[초록發光] 지금이 기후위기 대응의 길을 찾을 때

기후재앙을 야기할, 전 지구 기온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과학자들이 계산한 ‘탄소예산’을 8년 안에 모두 소진해버릴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2018년에 이어 2019년의 전 지구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지 않고 정체되었다는 소식이다. 여기에 더해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불행한 사태로 세계 각국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멈춰 섬으로써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줄어들게 될 전망이다. 이미 세계 1위 온실가스 배출국가인 중국의 배출량 감소가 보고되고 있다. 비유하자면 중환자실 입원으로 인한 강제 다이어트다. 퇴원 후 불어날 몸무게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코로나19 재난을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 재난과 분리할 수 없다. 에볼라, 사스,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같은 인수공통감염증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벌목, 채굴, 댐 등의 각종 개발 사업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그들과 우리 사이에 유지되던 거리가 급격히 줄어들거나 사라진 탓이다. 그 개발 사업이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채굴주의와 성장주의, 자본주의 체계의 요체라는 점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발생한 인수공통감염증이 더 확산하지 않도록 어떻게 봉쇄할지,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백신을 얼마나 빨리 개발할지에만 초점을 맞추면, 코로나19 재난과 기후 재난의 연결점을 놓칠지 모른다.

코로나19 재난에의 대응, 그리고 여파가 기후 재난을 다스릴 길을 열 수도 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전 세계의 온실가스 감축이 비극적인 코로나19 재난을 통해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공장은 멈춰서고 쇼핑몰은 한산하며, 배는 항구에 정박했고 비행기는 뜨지 않음에 따라 가능해졌다. 생산과 소비, 그리고 국제 무역이 감소하면서 화석연료 소비도 같이 줄어들고, 그 결과 온실가스 감축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재난 속 유토피아’가 모순적으로 느껴지지만 어쩌면 희망일지 모르는 것처럼, 재난 속에서 발견하는 탈 성장의 전조일 수 있다.

많은 것들이 되돌아오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의 집에 웅크리고 있는 사이에, 칠레 산티아고의 퓨마를 비롯해서 세계 여러 도시 거리와 해변에 야생동물이 나타나 그 땅이 본래 누구의 것이었는지 인식하게 해주었다. 금세 잊어버릴 동화 같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의 부품과 시민의 필수품 공급이 어려워지자,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값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 곳곳에 흩어놓은 생산 라인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려는 재지역화 움직임도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시장에만 맡겨놓고 물러나 있던 국가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봉쇄령을 내려 사회를 멈춰 세우고, 재난기본소득을 포함하여 엄청난 규모의 재정 투자를 시작했으며, 병원 등 여러 기관들에 대한 국유화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능력이 없어서 기후 재난에 대응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장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며, 심지어 재난이 닥쳐오고 있을 때에도 시장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물론 강한 국가가 권위주의로 타락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기후 재난을 이유로 ‘에코 파시즘’이 대두하면 어쩌느냐는 걱정은 정당하다. 많은 재난은 기존 권력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전시장인 한편, 재난을 핑계로 국가 권력을 집중하고 절대화할 기회이기도 하다(이미 필리핀, 헝가리, 이스라엘에서 그런 시도가 성공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재난의 시기를 이윤을 창출하는 기회로 삼는 ‘재난 자본주의’의 길을 열어놓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막아설 수 없다. 지금은 오히려 지금껏 부족했던 국가의 역할을 촉구해야 할 때이고, 그 국가를 더욱 민주화해야 할 때다.

가장 큰 질문은 따로 있다. 사람들이 코로나19 재난을 경과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용기를 얻을 것인가. 코로나 봉쇄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판로를 찾지 못한 농민, 문을 닫은 영세자영업자들은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또한 코로나가 멈춘 돌봄 서비스 부재로 또 다른 재난을 경험하는 이들도 많다. 이 재난 속에서 국가와 사회가 나서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경험을 갖게 된다면, 또한 재난을 거쳐 마주하게 되는 세계가 여전히 불평등으로 가득 차 있다면, 예고된 재난을 대비하기 위한 절제, 협력과 연대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사회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 공포로 급작스럽게 이뤄낸 사회경제적 활동의 축소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구조화하고 영속화되며, 그 안에서 형평성을 이뤄낼 수는 없을까. 시민에게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는 시장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에서 공급될 수는 없을까. 코로나 뉴딜에서 시작하여 그린 뉴딜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하는 이들의 고민이다.

빠른 재난을 해결하는 동시에 거대하지만 느린 재난인 기후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결국 이는 정치의 몫이다. 재난을 대비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제할 민주적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과 공약은 사라지고 위장정당의 깃발만 나부끼는 이번 총선에서, 기후위기를 넘어설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각 정당이 기후위기 해법을 두고 토론하고 경쟁하며, 코로나 뉴딜을 그린 뉴딜로 연결하는 정치적 창조성을 발휘해낼 것이라 낙관적인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위장정당 열린민주당은 선관위에 10대 정책공약도 제출하지 않았고, 더불어시민당은 날림 공약을 제시했다가 금방 거둬들이는 촌극을 빚었으니 말해 뭐하겠나. 나아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나 언론들이 그런 토론과 경쟁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비례대표 방송토론 주제에 기후위기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기후위기에 대한 각 정당 정책을 비교하려는 언론들의 시도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정당과 지역구 후보자들에게 기후정책을 묻는 질의를 진행 중이고 투표일 전에 공개할 예정이다. “기후국회와 배출제로를 위해서 투표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후보와 정당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 코로나19 위기는 결국 기후위기에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위기대응의 해법 모색도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난 1일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호수공원으로 나온 경기 고양 일산 시민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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