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식 보수가 망한 이유 '가치 상실, 반공주의, 박정희'

"제 1상품으로 팔던 안보를 매대에서 내려라"

"2018년 지방선거가 주는 가장 큰 정치적 중요성은 기존 보수 정치를 지탱해온 지역적 이념적 구조의 몰락이다. 보수정당은 단지 세력이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치를 상실했다. 한국 보수 정치의 중요한 특성이었던 반공주의가 약화되었고, 박정희에 대한 신화 역시 깨졌다. 보수정치의 '세력의 몰락과 가치의 붕괴'가 동시에 일어났다. 이번 지방선거의 참패로 보수정치는 큰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이런 잇 패배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가 특별한 것은 보수 정치의 근본적인 가치가 흔들렸기 때문이다."(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

"이번 지방선거가 보수 정치에 보여준 것은 보수정치가 정치시장에 제1 상품으로 판매해오던 안보를, 이제는 매대에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정치는 새로운 상품을 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지방선거는 주로 정부가 심판의 대상이 되는데,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지난 국정농단 세력과 단절하는 데에 실패함으로써 오히려 평가와 심판의 대상이 되어버린 매우 이례적인 선거였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정권이 바뀌었을 때도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센터장)

6.13 지방선거에서 보수 정당의 참패보다 더 큰 문제는 보수 정치의 존재감 부재라는 진단이 나왔다. 27일 리얼미터 후원으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3 지방선거 여론조사 평가와 정계개편 전망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공통의 질문을 던졌다.

발제를 맡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는 보수 정치가 세력과 가치가 동시에 붕괴했다고 지적하며 박정희 패러다임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의 보수 정치는 부패와 특권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제 관리, 국가 운영 능력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함께 그 신화는 사라졌고 믿음은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 27일 '6.13 지방선거 여론조사 평가와 정계개편 전망 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프레시안(박정연)

그는 "무엇보다 한국 보수 정치의 토대를 마련하고 정신적으로 가장 중요한 존재인 박정희 패러다임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적실성이 없다는 깨달음을 갖게 됐다"며 "따라서 이제 과거와 같은 '반공 보수, 대기업 보수, 성장 보수'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창출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강 교수는 야당이 몰락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독주가 과연 좋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먼저 그는 청와대로의 권력 집중을 지적하며 "청와대로 힘이 너무 집중되면 결국 소수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될 수 있고 이는 우리가 과거 여러 대통령에게서 본대로 의사결정의 왜곡과 폐쇄적 결정 그리고 심지어 부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집권당으로서 더불어민주당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상징적 표현에 불과해 보인다"며 "임기 중반 이후 안정적 지지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1인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당과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가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새누리당 의원 "한국당은 해산이 답"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센터장도 "보수정치는 새로운 상품을 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지방선거는 주로 정부가 심판의 대상이 되는데,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이 지난 국정농단세력에 단절하는 데에 실패함으로써 오히려 평가와 심판의 대상이 되어버린 매우 이례적인 선거"였다며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정권이 바뀌었을 때도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윤 센터장은 세대, 지역, 미디어의 변화도 이번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투표가 확대되면서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굉장히 늘어났고 영남 등 보수 우위 지역에서의 균열도 심각해졌다"며 "과거의 종이신문 또는 올드미디어 중심의 보수 우위의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대중의 인식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상일 전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은 해산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당은 해산이 답"이라며 "친박이니 비박이니 해서 계속 싸울 텐데 그게 결국 한국당의 몰락 재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해산하고 모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각자 갈 길을 가면서 무소속으로 있는 상황에서 젊은 인재를 중심으로 새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물론 현실성은 부족한 일이지만 이 정도 정치력 상상력이 없다면 절대로 국민이 원하는 기대만큼 변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의 한국당 해산 주장에 대해 강 교수는 "가능성은 제로"라며 "한국당 내 인사들이 '나를 쳐도 좋으니 우리 당을 살려달라' 라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나 빼고 혁신하자'는 분위기 때문에 지금 구도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보수적 유권자는 여전히 보수로 남아있다"며 "과거에 호소력을 가졌던 반공이란 이름의 기득권이 더는 효과가 없어졌다고 해서 보수적 계층이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선거는 전국 권력을 다투는 게 아니라 보수유권자들이 (보수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보수 정치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강 교수는 "출발점은 2020년부터다"며 "보수 세력이 유지했던 프레임을 버리고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야 재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20년에 현재 있는 의원들이 다 공천되진 않을 것이다. 그럼 젊고 새로운 정치인들이 많이 영입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라며 "자기 혁신을 위한 소리를 낼 줄 알고 야심 가진 젊은 정치인들이 만들어질 때 보수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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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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