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집권세력 내 분파적 행태, 원심력 제어해야"

지방선거 승리 후 내부 단속…文대통령 "민정수석실 악역 해달라"

청와대가 6.13 지방선거 압승 이후 여권 '내부 단속'에 나섰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참모 회의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이 직접 "집권세력 내 원심력"과 "내부 분파적 행태" 등을 경계해야 한다고 공식 보고했다. 대통령은 민정수석에게 "악역"을 당부하기도 했다.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집권세력 내부 해이를 다잡고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을 높이려는 취지로 해석되지만, 청와대가 민주당과 정부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군기 잡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며, 조국 민정수석이 '문재인 정부 2기 국정운영 위험 요소 및 대응 방향'이라는 주제로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보고 취지는 문재인 정부 2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과거 정부를 타산지석 삼아 과거 정부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고 단결·협력해 국정을 성공시킬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2기'라는 표현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김 대변인은 "개각은 관계 없다"며 이번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기점으로 "잠정적"으로 시기를 구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조국 민정수석은 먼저 "과거 정부 국정상황이 주는 교훈"에 대해 3가지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언급했다고 한다. 조 수석은 "첫째, 집권세력 내부 분열 및 독선이었다. 내부 분파적 행태 및 국민을 대상화하거나 계몽주의적 태도로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 또 이로 인해 긴장감 해이로 측근·친인척 비리가 발생한 경우였다. 둘째, 민생 성과가 미흡하고 소모적 정치 논쟁으로 갈등 국면이 계속되면서 국민들 피로감이 가중됐다. 셋째, 자기 혁신과 정부 혁신 미흡으로 혁신 동력이 떨어지고 관료주의적 국정 운영과 관성적 업무 태도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잃게 됐다"고 보고했다.

조 수석이 말한 '과거 정부의 교훈'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부의 사례를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집권세력의 내분과 정치적 대립은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의 사례, 이명박 정부 당시 친이계와 친박계 갈등 사례, 박근혜 정부 당시의 '진박' 논란 등 많은 과거사에 들어맞는다. '국민을 대상화하거나 계몽주의적 정책 추진 태도'라는 비판 역시 노무현 정부 당시의 이른바 '4대 개혁'에도, 이명박 정부 당시의 각종 '선진화' 정책이나 박근혜 정부 때의 연말정산 제도 개편 등에 모두 해당된다. 국정 동력 소진으로 인한 관료주의적·관성적 업무 태도는 그야말로 딱히 어느 정부 때의 일이라고 꼬집기조차 힘들다.

김 대변인은 '내부 분파적 행태'나 '분열' 등의 보고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조 수석이 특별히 여기에 대해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며 "여러분(언론)이 해석해 달라"고만 했다.

조 수석은 이어 "문재인 정부 2기의 특징"으로 "정부·여당의 오만한 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을 들며 "오만한 심리는 독선·독주와 긴장 이완을 낳고, 그로 인해 본격적인 내부 권력 투쟁이 발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 수석은 국정 대응 방향에 대한 보고에서도 "분열을 막아야 한다. 집권세력 내부의 원심력이 강화될 수 있는 요인들을 사전에 제어할 필요가 있다"면서 "오만과 아집,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 수석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의 정신을 늘 되새기면서 부정부패를 멀리하고, 문재인 정부의 일원이 된 초심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된다"고 공직자들의 윤리를 강조하는 한편, 과거 정부에서와 마찬가지로 "청와대-부처 및 부처 상호간 긴밀한 소통"과 "정부 혁신"을 통해 정부의 정책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수석은 특히 "지방선거 승리 이후 새로 구성될 지방정부의 부정부패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검·경과 감사원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기구인) '반부패정책협의회'를 통해 토착 비리를 근절하기로 한 바가 있는데, 그 연장선에서 올해 하반기에 지방정부·지방의회를 상대로 감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기대 이상의 압승으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다수가 민주당 일색으로 구성되면서 비리와 부패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이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6.13 선거로 구성될 지방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청와대가 감찰을 경고한 점은 의아하다는 취지의 질문이 나왔다. 김 대변인은 이에 "승리감에 도취돼서 해이해지거나 쉽게 긴장 풀어지는 경우를 사전에 다잡고 경각심을 높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조 수석의 보고를 받고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 민정수석실에서 열심히 감시해 달라"며 "민정수석이 중심이 돼서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서도 악역을 맡아 달라. 지방권력도 해이해지지 않게 해달라"고 보고 내용을 사실상 승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도 "민정수석실에서 악역을 맡아 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과 조 수석의 보고 내용 등을 종합하면, 지방선거 승리 후 여권 내의 '파워 게임'을 경계하고 청와대·정부 등 행정조직 전반에 대한 장악력을 확실히 다지려는 것이 청와대의 의도로 읽힌다. 단순히 부정부패나 비리 관련 사안이 아니라 "원심력", "오만과 독선" 등 정치적 성격을 띄는 부분이 있음에도 보고 주체가 정무수석이나 비서실장이 아닌 민정수석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한편 김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선거 승리의 공을 청와대·내각에 돌리면서 여당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보도가 나온 데 대해 "대통령 말씀의 전제가 '여당의 압승'"이라며 "민주당이 당의 이름으로 후보를 냈고, 그 후보가 당 깃발을 걸고 전면에 나서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당연히 여당이 전제가 된 상태에서 말씀하신 것인데,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고 '여당은 빠졌다'고 평가·해석하지는 말아 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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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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