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의 '문턱' 높이기, 北비핵화 망치겠다는 건가

[정욱식 칼럼]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북한이 발끈한 이유는

'세기의 담판'이라고 불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일 동맹이 문턱을 높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대신에 "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VID)"를 언급했다. "영구적인 비핵화"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초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다.

이에 따라 두 가지 관측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더 강력한 비핵화 원칙을 내세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단순한 표현상의 차이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 협정의 탈퇴 내지 전면 재협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이란 핵 협정보다 더 강력한 북핵 협정을 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모든 핵무기,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와 이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포함한 북한 대량파괴무기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를 달성하자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패싱' 위기에 처한 일본을 달래기 위한 립 서비스 차원에서 나온 것인지, 미일 동맹의 정책 목표를 분명히 한 것인지, '네오콘 중의 네오콘'으로 불리는 볼턴의 개인적 소신인지는 불확실하다. 참고로 볼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때 국무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북한의 생화학무기 위협을 대대적으로 부풀려 "악의 축" 발언의 근거를 제공한 인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강경 발언들이 대북 협상의 문턱을 크게 높이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포함한 향후 전망을 극히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대변인은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행위는 모처럼 마련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려 세우려는 위험한 시도로밖에 달리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미국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화된 이후 처음이다.

이란 핵 협정 대 북핵 협정의 대결?

이러한 북미 간의 신경전을 두고 정상회담에서의 담판을 앞두고 벌어지는 '힘겨루기'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 협정 탈퇴나 전면적인 재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 발표 시점을 5월 8일(미국 시간)로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가 탈퇴를 선언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해도 북핵 협상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도 많지만, 사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만약 트럼프가 이란 핵 협정에서 탈퇴하면 북한과의 협상에서 이란 핵 협정보다 더 강력한 합의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이란 핵 협정 탈퇴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을 무마하고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강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중간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정치적 동기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역사상 최악"이라는 이란 핵 협정을 파기하고 "역사상 최고"의 북핵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과시가 트럼프 행정부에겐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이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발언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지난달 하순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이란 핵 협정문을 세 번이나 읽어봤다"며, "매우 강력한 합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은 '과연 북핵 합의가 이란 핵 협정보다 강력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론을 품고 있다.

북핵 합의가 이란 핵 협정보다 강력하다는 점을 트럼프 행정부가 자랑하려면(?) 두 가지를 관철해야 한다.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는 물론이고 핵발전과 같은 평화적 핵 이용도 불허하는 것이다. 트럼프, 폼페이오, 볼턴 등 이란 핵 협정 파기론자들은 이 합의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늦췄을 뿐 영구적인 폐기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비난해왔다. 이들 세 사람 모두 북핵과 관련해 "영구적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는데, 이는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도 포기시키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또한 이란 핵 협정에는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금지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비난해왔다. 이에 따라 대북 협상에서 이들 무기 프로그램도 포함시키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또 하나의 포인트인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결국 트럼프 행정부에게 대북 협상은 이란 핵 협정과의 싸움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폼페이오와 볼턴이 이란 핵 협정 탈퇴 여부를 결정할 시한과 북미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결코 우연이라고 보긴 힘든 것이다. 앞서 소개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은 이러한 미국의 강경론에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문제도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임인 분명하다. 하지만 협상의 문턱을 계속 높이면 그 문턱에 걸려 넘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를 직접 설득해야 한다.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하자고 말이다.

선택과 집중의 포인트는 트럼프의 입을 통해 나온 바 있다. 그는 4월 하순 '비핵화가 뭐냐'는 질문에 "그건 간단하다.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및 관련 물질과 시설을 폐기하는 것만도 어마어마한 성과이다. 그런데 여기에 평화적 핵 이용도 불허하고 생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도 포기하라고 하면 정작 핵무기 폐기조차도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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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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