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재인데 한국에 '기증'한다는 일본 주장에…결국 '인도'로 타협점 찾기

[일본은 왜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는가?] 제1부 ⑧ 제6차 한일회담과 문화재 반환 교섭 (2)

제2차 정치회담과 한국 측의 '인도' 제안

한일 양국은 주요 의제들의 교섭이 지지부진해지자 최덕신 외무장관과 고사카 젠타로(⼩坂善太郎) 외무대신 간의 정치회담(1962년 3월 12일~3월 17일)을 개최했다. 하지만 이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제2차 정치회담,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회담'을 개최한다.

▲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 외무대신의 제2차 정치회담.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정부는 제2차 정치회담을 위해 주요 의제들의 방침을 정했다. 문화재 반환 교섭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청구권 문제 중, 현물반환요구에 속하는 것으로 1957년 12월 31일 자로 이루어진 당시의 한국 주일대사와 일본 외무대신 사이의 Oral Statement로서 합의된 바에 따라 일본정부 및 공공단체가 현재 점유하고 있는 한국의 중요문화재와 일본인 개인 소유 한국 중요 문화재만을 한국 측으로 인도함으로서 문제는 용이하게 해결될 것이며, 일본 측도 원칙적으로는 동일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제2차 정치회담 방침 중 문화재 반환 교섭에 관한 방침. ⓒ 한국정부 공개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

한국정부는 회담 중단기 때 합의한 구두전달사항 및 1961년 7월에 작성한 '한일회담에 대한 정부의 기본 방침'의 제2안과 제3안의 '인도', 즉 이 시점에서 반환의 방법을 최종적으로 '인도'로 정했던 것이다. 이에 한국정부는 "문화재는 1957년 12월 31일의 Oral Statement에 의거한 문화재(일본정부 및 공공단체 점유 중으로 문화재에 따라 일부 일본인 개인 소유 한국 중요 문화재)를 한국 측에 인도함으로서 해결토록 할 것"이라는 방침을 주일대표부로 보낸 것으로 한국 외교문서에 기록돼 있다.

제2차 정치회담은 두 번 열리는데, 문화재 반환 문제는 두 번째 회담(11월 12일)에서 논의되었다. 오히라 마사요시(⼤平正芳) 외무대신은 '일본은 문화재 반환의 의무는 없지만, 권리・의무를 떠나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국유 문화재를 어느 정도 증여할 용의가 있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1957년 12월 31일에 합의한 Oral Statement, 즉 구두전달사항을 통해 문화재 반환 문제를 해결하자고 설명했다.

한국 측의 공식적인 '인도' 제안은 제2차 정치회담 때가 처음이었다. 2월 1일 비공식회의에서 '인도'를 제안한 적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인 일이었다. 제2차 정치회담에서 한국 측이 '인도'를 제안한 일은 문화재 반환 교섭의 핵심적인 문제인 '반환'과 '기증' 문제를 해결하고 문화재 반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한국 측의 의지를 공식적으로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측의 '기증' 고수

한국 측은 그 뒤에 열린 예비회담 제20회 본회의(12월 21일)과 예비교섭 제23회 본회의(1963년 1월 23일)에서도 '인도'라는 명목으로 문화재를 반환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일본정부와 대한민국정부 간의 문화상의 협력에 관한 의정서 요강(안)'(12월 26일 제출) 등에서 여전히 '기증'을 고집하고 있었다.

한국 측은 과거사 청산의 일환으로 문화재 반환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의미가 전혀 담기지 않은 '기증'이라는 표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본 또한 '반환'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 측은 양국의 입장을 반영해서 '인도'라는 표현을 제안한 것이었다.

▲ 일본 측이 제안한 '일본정부와 대한민국정부 간의 문화상의 협력에 관한 의정서 요강(안)'. ⓒ 日本政府(일본정부) 공개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

한편 한일 양국은 '문화재관계회의'를 열고 문화재 반환 문제를 논의했다. 1963년 2월 13일에 열린 제1회 문화재관계회의에서 일본 측은 여전히 '기증'을 고수했다. 한국 측은 문화재 반환 문제가 "회담의 타 현안 문제에 비해 좀 특수한 성격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측으로서도 정당한 권리에 의해 요구하고 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정당한 권리'란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반환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한국 측이 반환의 방법을 '인도'로 변경하기는 했지만, 반환의 방법인 '인도'의 이면에는 '반환'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기증'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후 한국 측은 '기증'을 고집하는 일본을 '인도'로 설득해야 했다.

문화재소위원회 재개

제2차 정치회담에서 청구권 문제가 큰 틀에서 합의되는 등 예비회담의이 성과를 올리자 한일 양국은 이를 토대로 5월 초에 한일회담을 타결하기 위해 1964년 3월 12일부터 제6차 한일회담을 재개한다.

재개된 제6차 한일회담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는 문화재소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제1회 문화재소위원회(3월 21일)가 열리자 한국 측은 '반환 청구 한국문화재 목록'에 대한 일본 측의 문화재 목록 제출을 요구했다. 일본 측은 어업 문제 등 다른 의제의 진전이 없을 경우 목록을 제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예비교섭 당시 제출한 의정서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한국 측은 '반환'과 '기증' 문제나 문화협정보다 일본 측이 목록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논의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먼저 문화협정을 통한 해결 방법을 논의하거나 두 가지 함께 논의할 것을 주장했다.

이와 같이 재개된 제6차 한일회담 당시에도 한일 양국은 문화재 반환 교섭의 핵심적인 문제인 '반환'과 '기증' 문제와 문화재 목록 문제에서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문화재보호위원회, 문화재 증여 표명

한편 외무성은 제1회 문화재소위원회가 종료된 후 문화재보호위원회와 만나 문화재 반환 문제를 논의한다. 문화재보호위원회는 한국에 증여할 수 있는 문화재에 관해 다음과 같은 설명했다.

"한국 측이 품목을 지정하고 그 반환을 요구한다는 태도를 취한다고 한다면, 그 청구에는 절대로 응할 수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 이토 공이 지참한 문화재 중에서 선택해 주면 좋겠다는 태도라면 우리 측에서 적당히 골라 증여할 용의가 있다. 문화재보호위원회로서는 관계하고 있는 문화재 중에서 증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체 약 1,000점 중 3분의 1, 그중에 이토 공의 것 중 절반 정도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거의 최대 한도이다."

외무성 또한 아직 '반환'과 '기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반환의 방식으로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를 설명했다. 문화재 반환 교섭과 관련하여 문화재를 한국에 넘기기 어렵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취해오던 문화재소위원회는 한일회담 타결 분위기가 고조되자 '한국 측이 부탁한 문화재 중에 적당한 것을 골라 증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문화재보호위원회도 달갑지는 않지만 문화재를 건네주겠지만 적당한 것들을 몇 개 주고 문화재 반환 교섭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제6차 한일회담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에 관한 한일 양국의 입장 차이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제6차 한일회담 전반기 당시 한국 측이 '반환'에서 '인도'로 그 입장을 변경한 점, 일본 측도 개인 소유 문화재도 한국에 건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한 점, 한국 측의 문화재 목록을 논의한 점을 볼 때 이전에 비해 양국의 입장이 유연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여전히 '기증'의 입장을 고수했고, 문화재 목록 제출도 계속 꺼려했다.

1964년 6월 3일에 일어난 한일회담 반대 시위와 계엄령 선포로 인해 제6차 한일회담은 종료되었고, 결국 문화재 반환 교섭도 위와 같은 입장 차이를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약 13년을 달려온 한일회담도 그리고 문화재 반환 교섭도 마지막 1년을 저만치 바라보고 있었다.

■ 참고문헌

한국정부 및 日本政府 공개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

엄태봉,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한일회담과 '문화재 반환 문제의 구조'>, 경인문화사, 2024.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엄태봉 대진대학교 강의교수

엄태봉 대진대학교 국제학부 강의교수는 정치학자로 문화재 반환 문제, 강제동원문제, 교과서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인식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한일 관계 전문가다. 역사인식문제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 <교과서 문제는 왜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일본 '영토·주권 전시관'의 영토 문제 관련 홍보·전시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