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예정일인 3월 26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 전체가 개헌 의제가 발휘하는 인력에 끌려가고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베트남·중동 순방 와중에도 개헌안 발의 준비에 여념이 없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개선 발의 스케줄에 변함이 없다", "불가피하다"며 26일 개헌안 발의 일정에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이 이날 중 개헌안을 최종 검토하고 재가하면 26일 오전 10시 이낙연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다시 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최종 서명을 하게 된다.
문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야4당은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대해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범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차치하고, 여당과 함께 범진보로 묶이는 민주평화당, 정의당도 대통령 주도 개헌에는 부정적이다. (☞관련 기사 : 정의당도 "대통령 개헌안 발의, 오히려 개헌 좌초 우려")
따라서 야권 4당 가운데 의석 수로 보나, 정치적 구도로 보나 한국당이 개헌 전선에서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으로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개헌안 발의 D-1인 이날 기자 간담회를 열어 "독불장군 문재인 정권의 개헌 폭거"라고 비난하며 "'관제 개헌안'이 국회로 넘어오는 것을 손가락 빨며 지켜볼 수 없다.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이 한국당과 함께 합동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 차원의 대응방안을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야4당 공동대응 구도 속 '홍준표 입' 변수 돌출
그러나 이날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이 "사회주의 개헌"이라는 다소 무리한 주장을 하고 나섰다.
홍 대표는 "지금 문(재인)정권이 추구하고 있는 헌법개정 쇼는 사회주의로 체제 변경을 시도하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중국·북한은 이미 세습 왕조 시대로 되돌아가 있고, 이제 자유 대한민국마저 세계적으로 실패한 사회주의 체제로 변경된다면 이 나라는 몰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지방선거용 관제 개헌 음모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사회주의 개헌 음모 분쇄 투쟁에 전 국민과 함께 장외로 갈 것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천명한다"고 장외 투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홍 대표는 물론 이 글에서 "헌법은 제(諸)정치세력 간 타협의 산물"이라며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개헌은 독재정권으로의 회귀"라는 좀더 일반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으나 상대적으로 '사회주의 개헌'이라는 색깔론적 공격이나 장외 투쟁까지 시사한 투쟁적 언사에 밀려 이 부분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실제로 개헌안을 발의할 경우, 정치적 입장차가 큰 야4당 간의 공조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이는 상황이었으나 홍 대표의 돌출 발언은 오히려 야4당 공조 가능성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평화당, 정의당 등 범진보진영 야당은 물론,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바른미래당 역시 문재인 정부 개헌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을 내놓지 않고 있고, '형식'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고 있었다.
국회가 아닌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입법부로서의 국회의 권능이나 제헌국회의 사례에 비춰볼 때 부적절하며, 개헌안은 국회에서 여야 정당 간 타협의 결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바른미래·평화·정의당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예를 들어, 중도 보수 지향인 바른미래당은 최근 한 달새 문재인 정부 개헌안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바른미래당 창업주인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개헌안을 국회 합의 없이 대통령이 발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는 오히려 통과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아니냐"며 "그렇게되면 소중한 개헌 동력이 완전히 꺼져버려서 20대 국회에서는 다시 개헌을 하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이날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국회가 합의한 개헌안이라면 6.13에 (투표)해도 좋지만, 대통령이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군사작전하듯 무조건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것은) 오만하고 독선적"이라고 했다. 박주선 공동대표는 23일 "각 정당이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개헌안 발의는 '발의를 위한 발의'에 불과하다.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야당 가운데에는 오직 한국당만이 개헌안의 '내용' 가운데 토지공개념이나 경제민주화 강화, 수도 법정주의 등을 '좌파적'이라거나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해온 셈이다. 홍지만 대변인은 21일 "토지공개념, 경제민주화 같은 개념이 얼마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인지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잘 안다. 수도 조항이나 지방분권 같은 것도 하나같이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며 "겉은 오렌지색이면서 속은 빨간 '자몽 헌법'이다. 겉은 아닌 척 포장했지만 속은 아주 벌겋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홍준표 대표는 지방분권 개헌을 북한식 연방제 통일방안을 위한 것이라는 상식 밖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범보수진영 내에서조차, 바른미래당은 토지공개념, 경제민주화, 사회적 경제, 수도 이전 등 한국당이 '좌파', '사회주의'라고 몰아붙이는 개념에 대해 다른 태도를 취할 확률이 높다.
개헌안에서 논란이 되는 개념 중 하나인 '토지공개념' 부분을 보면, 바른미래당 대선주자들은 정확히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취지에서 나온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았었다. 유승민 대표는 대선 때는 물론 대선 후인 작년 8월에도 "부동산 보유세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안철수 위원장 역시 2012년 대선 때부터 "비거주용 토지 보유세 강화"를 공약하면서 "재벌 대기업이 상가·빌딩의 보유가 아니라 생산적 투자를 통해 이윤을 얻고자 노력하게 될 것"이란 점을 그 기대 효과로 꼽았다.
또 문재인 정부 개헌안의 '경제민주화' 조항은 경제 주체 간 조화와 상생을 강조했는데,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은 물론 안철수·심상정 후보 역시 대-중소기업 간 이익공유제를 공약했고, 유승민 후보는 이익공유제 대신 상생일자리기금 공약을 내놨지만 큰 틀의 취지는 비슷했다. 이같은 취지의 정책공약을 내놓지 않았던 것은 홍준표 후보 뿐이었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개념과 관련해서는 19대·20대 국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발의됐는데, 대표 발의자가 바로 유승민 대표였다.
다시 말해 한국당이 개헌 정국에서 주도력을 발휘하려면, 다른 야당들과 공조할 수 있는 '대통령 발의 개헌'이라는 형식적 부분에 공세를 집중하는 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홍 대표의 '사회주의 개헌' 공세는 오히려 합리적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하고, 바른미래당 등 다른 야당들을 연합 전선에서 이탈하게 하는 요인에 가깝다.
'개헌 구심력'에 지방선거 관심은 시들?
한편 정치권에서는 6.13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각 정당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정성호 공천관리위원장 명의로 총 47명의 예비후보자가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고 발표했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예상대로 박원순 시장과 박영선·우상호 후보의 3파전이었고, 인천·부산·울산·대구·대전·경기·경남 등도 3명의 후보가 공천을 신청했다. 광주는 무려 7명이 도전장을 낸 반면, 강원지사 선거에는 최문순 현 지사 1명이, 전남지사 선거에는 신정훈 전 의원 1명만이 공천을 신청해 1: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박영선 의원과 우상호 의원은 25일 각각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시장에 대한 협공에 나섰다. 이들 두 의원은 공통적으로 △박 시장의 경우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를 하는 데 집중하느라 서울시장을 통해 문재인 정부 성공을 제대로 뒷받침할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는 결선투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은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이 연일 인재 영입 성과를 발표하고 있지만 이른바 '대어(大魚)'급은 없는 실정이다. 안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서진웅 전 삼양홀딩스 상무(서울 성북구의원), 정수경 변호사(서울시의원), 조용술 '꿈꾸는 골목' 대표 겸 사단법인 '청년365' 대표(마포구의원 출마), 용성욱 한국IT융합기술협회 부회장(미정) 등 지방의원 출마자 4명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