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와 北 소재 영화의 스테레오타입

[김경욱의 데자뷔] 왜 북한 소재 영화의 캐릭터는 뻔할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7년 한국영화 흥행작 3위는 <공조>, 9위는 <강철비>가 차지했다(영진위 통합전산망 2018년 1월 24일 박스오피스 자료). 북한을 소재로 한 액션영화는 흥행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강철비>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최고 권력자 1호가 죽을 위기에 처하고,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내몰리는 설정을 했다. 이를 통해 총격전이 난무하는 대규모 액션장면뿐만 아니라 ‘강철비’가 쏟아지는 전쟁에 준하는 스펙터클까지 가능했다. 이 영화의 설정은 북한을 다룬 이전 영화와 차별화되기는 하지만, 반복되는 지점도 많다.


먼저 정우성이 북한의 전직 정찰총국 요원 엄철우의 역할을 맡은 점이다. <의형제>에서 강동원이 간첩으로 등장한 이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 <동창생>의 탑, <용의자>의 공유, <공조>의 현빈 등 남성스타가 간첩 또는 북한의 정예요원 역할을 했다. 남성스타가 연기하는 북한남성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주인공만큼이나 뛰어난 무공을 갖추고 있다. 반면 그들과 관련을 맺게 되는 남한의 남성들은 국정원 요원(<의형제>의 이한규)이거나 경찰(<공조>의 강진태)인 경우에도 적과의 대결에서 두드러진 무술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강철비>에서는 엄철우의 상대가 청와대 외교수석 곽철우가 되기 때문에 애초에 싸움을 잘 할 수가 없다. 송강호, 유해진, 곽도원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남한 남성들은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인다. 북한의 남성 캐릭터들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이상적인 가부장의 면모를 보이는 반면, 남한의 남성 캐릭터들은 경제적으로 무능하거나 이혼한 상태다.


이명박 정권 이후, 북한에 대한 적대와 혐오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이하게도 남성스타들이 북한인으로 등장해 긍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가운데, 나머지 북한사람들은 위험한 부류로 이분화 하는 경향은 더욱 강화 되었다. 설정은 매번 비슷하다. 북한의 권력 내부에서 사건이 터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공조>에서는 차기성 일당이 슈퍼노트를 제작할 수 있는 ‘명도전’을 훔쳐 남한에 잠입한다. <강철비>에서는 리태한이 최고 권력자 1호를 제거하고 남한에 핵무기 공격을 하려고 한다. 차기성이나 리태한 같은 인물은 북한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최고 권력자가 수수방관하고 있는데 불만을 품고 일을 벌인다. 차기성은 ‘명도전을 훔친 건 인민의 나라를 만들지 않은 공화국에 대한 복수’라고 말하고, 엄철우는 리철영의 쿠데타에 대해 ‘핵을 권력유지 수단으로 쓰지 공화국을 위해 쓰지 않는 것에 대한 군부의 불만’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에 권좌에 오른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대단히 취약하고, 북한의 권력층 내부는 군부를 중심으로 언제든 균열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어떤 영화에서도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강철비>에서 1호로 불리는 최고 권력자는 등장하자마자 죽을 위기의 부상을 당해 시종일관 누워있을 뿐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한다.


북한의 주인공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남한의 주인공과 연루되게 된다. 그가 대의를 명목으로 악전고투 하는 과정에서 그와 대적하는 북한인들은 모두 악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공조>같은 영화에서는 남한에서 밀수를 하며 살아가는 탈북자 박명호가 차기성에게 협력하는 인물로 설정되면서, 탈북자와 간첩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남한에 기거하는 북한인들이 잠정적인 위험인물처럼 치부된다.


북한의 주인공이 믿을만한 긍정적인 인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려면, 남한의 주인공을 목숨을 걸고 위기에서 구해내는 일을 해야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거의 예외 없이 반복된 설정이다. 그런 다음 <의형제>라는 영화 제목처럼, 또는 <강철비>에서 북한의 엄철우와 남한의 곽철우 같이 이름을 동일하게 설정하면서, 은연중에 남한과 북한은 형제라는 생각을 담아낸다. <의형제> 이후, 남한의 주인공이 계속해서 형으로 설정되면서 북한 주인공에게 쉽게 반말을 하며 가까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여기서 함께 살수는 없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그들은 여기를 떠나거나(<의형제> <용의자> <공조>), 사라지거나 죽음을 맞이한다(<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강철비>). 한국영화에서 북한을 소재로 할 때 적대와 공존을 동시에 다루면서 흔히 모순된 설정과 감정이 뒤섞이게 된다(장면 1과 2).


▲ 장면 1


▲ 장면 2.

따라서 <강철비>의 설정에는 곳곳에 무리수가 잠복해있다. 특히 남한의 의술을 통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 1호를 북으로 송환하는 대신 북한 핵의 절반을 받아내고 그럼으로써 남한이 핵을 보유하게 된다는 설정은 한반도가 처해 있는 국제정세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국제정세와 무관한 듯이 치부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양우석 감독이 미국을 중심으로 얽혀있는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몰랐거나 난처해서 피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좀 더 생각하게 되는 설정은 엄철우의 죽음이다. 그는 한반도의 전쟁을 막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북한 주인공은 남한 주인공을 구해 주어야 하고 더 나아가 희생까지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북한 사람이 된다. 북한 사람에게 뭔가 줄 때는 가난한 이에게 적선하듯 해야 통한다. 곽철우는 엄철우에게 국수를 사주고 가족들 선물 살 돈을 빌려주고 따뜻한 코트를 입혀준다(장면1, 3, 4).


▲ 장면 1.

▲ 장면 3.

▲ 장면 4.


평창올림픽의 북한 선수단 참가와 여자아이스하키선수 남북 단일팀 구성을 놓고 보수진영에서 펼치는 프레임은 이러한 설정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외교는 서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북한과의 관계에서 남한은 한 치의 손해도 보면 절대 안 된다고 전제한 다음, 이번 협상에서 마치 남한이 대폭 양보를 하고 그럼으로써 북한이 대단한 이익을 얻은 것처럼 날조하는 프로파간다를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 악의적으로 왜곡한 프레임과 선전전이 일정 정도 먹히는 바탕에 북한을 소재로 한 흥행 성공작은 관계가 없는 것일까? 흥행영화는 결국 보수적일 가능성이 많지만, 그럼에도 <공동경비구역 JSA>가 2000년에 시도했던 정도만큼이라도 보수적인 프레임을 깨는 영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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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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