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예술인이 지원받게되자 아예 사업 자체를 폐지

문체부는 이렇게 '블랙리스트 대상자'를 배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시를 받은 출판진흥원이 심사결과표와 심사위원회 회의록까지 조작하면서 블랙리스트를 실행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지시를 받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공모사업을 폐지하면서까지 블랙리스트 극단 지원을 배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체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20일 이와 같은 내용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보면 문체부는 출판진흥원이 진행하는 '초록-샘플 번역지원사업'에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책이 선정되자 이를 배제하기 위해 특정도서 배제 지침을 내렸고, 이에 따라 심사결과표를 조작하면서까지 지원대상에서 배제했다는 점이다.

'초록-샘플 번역지원사업'은 저작권 수출을 위해 도서 관련 간단한 소개를 하는 초록을 번역하고, 책 일부를 샘플로 번역하는 비용을 지원, 저작권 수출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말한다.

심사결과 임의 조작으로 '블랙리스트 대상자' 배제

진상조사위는 "조사 결과, 출판진흥원은 상기 사업과 관련해 문체부의 특정도서 배제 지침이 내려오자, 심사표에 기재된 내용을 '적격→부적격'으로 바꾸는 등 문서를 임의 조작하는 방식으로 지원을 배제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 개별 조사를 통해 2016년 초록·샘플 번역지원사업 심사결과표를 확보, 대조한 결과, 출판진흥원에서 보고한 심사결과가 임의로 조작됐음을 확인했다는 것.

재12차 초록·샘플 번역지원사업의 경우, 심사일자 2016년 7월28일로 기재된 원본 심사표에는 <차남들의 세계사>(이기호 지음, 민음사 펴냄), <삽살개가 독에 감춘 것>(정지형 지음, 도서출판창조의뿔 펴냄), <텔레비전 나라의 푸푸>(정지형 지음, 도서출판창조의뿔 펴냄) 등 3권의 도서가 지원사업 '적격'으로 기재됐으며, A심사위원은 자신이 작성한 이 심사결과표를 출판진흥원에 전달하였다.

A심사위원은 심사결과표에 "<차남들의 세계사>는 번역원에서 2015년 말 영어 기획번역으로 저자 및 출판사의 동의하에 진행하고 번역 중 작품임. 번역원에서는 초록을 제작하지 않았고 중국어 초록 신청이 함께 들어온 건이므로 완료 후 영어 초록의 경우에는 번역원과 공유해주면 좋을 것 같음"이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후 위조된 심사표에서 이 도서들에 대한 심사 결과가 모두 '부적격'으로 바뀌었으며 긍정적 평가가 삭제된 자리에 "수출 경쟁력이 낮아 샘플 번역 지원이 부적절함"이라는 문구가 붙여졌다.

진상조사위는 "이 같은 일은 문체부 출판인쇄과 김OO 과장이 문서가 위조되기 하루 전인 7월 27일 출판진흥원 글로벌사업팀 사업담당자에게 '제외 : 차남들의 세계사, 삽살개가 독에 감춘 것, 텔레비전 나라의 푸푸'라는 메일을 보낸 직후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문체부의 지시가 있었음을 밝혔다.

13차 심사결과표 역시 조작된 된 것으로 확인됐다. 2016년 8월 12일 A 심사위원이 출판진흥원에 보낸 심사결과표에는 도서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조형근·김종배 지음, 반비 펴냄)이 '적격'이라고 표시됐으나 3일 뒤인 8월 16일 이 도서의 심사결과표에는 '부격적'으로 바뀌어 기재됐다. 또한 '도서 소재 특성상 중화권 수출 경쟁력이 낮음'이라고 기록돼 있다.

▲ 문체부 출판인쇄과 김OO과장이 출판진흥원 글로벌사업팀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2016.8.16.

심사위원 회의록을 허위로 수정하기도

진상조사위는 출판진흥원의 ‘찾아가는 중국 도서전’ 사업에서도 심사위원회 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하는 등 특정 도서를 지원 배제한 사실을 확인했다.

'찾아가는 중국 도서전'은 출판사 간 저작권 거래를 목적으로 진행한 사업이다. 중국 현지 출판사를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20~30여개의 출판사 콘텐츠를 직접 보여주고, 거래하는 사업이다. 출판진흥원은 참가가 힘든 출판사들을 위해 사업공모 후, 60종에서 100종 범위의 위탁도서를 선정, 현지에서 저작권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진상조사위는 이 사업을 조사한 결과, 2016년 7월21일 제3회 찾아가는 중국도서전 심사위원회는 애초 위탁도서 60종을 선정했으나, 25일과 28일 문체부는 이중 5권의 제외도서 명단을 출판진흥원에 통보했다.

문체부 출판인쇄과 '문체부 확인 전까지 최종 확정 보류', '위탁도서 목록 중 4, 31, 37, 56, 57번 제외'

그러자 출판진흥원은 21일자 심사위원 회의록을 허위로 수정 작성하는 방식으로 문체부 지시를 반영, 문체부가 지목한 5권의 도서를 제외했다.

이 같은 과정으로 배제된 도서는 <느영나영 제주>(김지욱 지음, 김동성 그림, 나는별 지음 ), <당신의 사막에도 별이 뜨기를>(고도원 지음, 큰나무 펴냄), <마을로 간 신부>(정홍규 지음, 학이사 펴냄), <미학오디세이1~3>(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박시백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이다.

문체부가 지시하며 메일로 송부한 선정목록 검토 자료를 살펴보면, <느영나영 제주>의 경우, 도서명 아래에 붉은 글씨로 '4.3사태, 강정해군기지 내용 포함 확인'이라고 배제 사유를 언급하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출판진흥원 전반 사업, 특히 공모사업은 문체부의 승인이 있어야만 이후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며 "심사위 결과 선정 목록을 문체부로 송부해 다시 검토 받는 과정에서 배제 지시가 이루어졌고, 지시의 이행 방법은 심사위원회 회의록을 사후적으로 작성하는가 하면, 심사결과표를 임의로 조작하면서 문체부의 배제 지시를 따르려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시

내용

2016. 7. 21.

찾아가는 중국 도서전 제3회 심사위원회에서 위탁도서 60종 선정

2016. 7. 22.

출판진흥원, 심사위원회 선정목록을 문체부에 메일로 송부

2016. 7. 25.

문체부, “문체부 확인 전까지 최종 확정 보류지시 메일 발신

2016. 7. 28.

문체부 위탁도서 목록 중 4, 31, 37, 56, 57번 제외지시

2016. 8. 9.

출판진흥원, 5종을 제외한 55종으로 위탁도서 선정 결과 보고 진행

▲ '찾아가는 중국 도서전' 블랙리스트 배제 지시 정황(일자별)


'블랙리스트 대상'이 선정되려 하자 아예 사업 폐지하기도

뿐만 아니라 문체부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극단이 해외문화원 공모사업 관련, 최종선정이 불가피해지자 공모사업 자체를 폐지하면서까지 문화예술단체 지원을 배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문체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는 <극단 마실>이 뉴욕문화원과의 매칭 사업에 최종 선정되자 '다른 사업에서 이미 지원을 받은 (해외)문화원은 중복해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중복지원 불가 원칙을 새로 만들어 사업 자체를 무효화, 지원을 배제했다. 뉴욕문화원이 다른 사업에서 이미 사업지원을 받은 만큼 '문화원-국내 단체 매칭 신규프로그램 개발 지원사업'의 신청 대상이 되지 않는 점을 배제 명분으로 내세웠다.

뉴욕문화원의 우수프로그램 문화원 순회사업 공모는 1차, 2차 심사, 최종심사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1차 심사를 통과해 2차 심사 대상이 된 극단은 <극단 마실>, <극단 하땅세>, <극단 북새통> 등 3곳으로 모두 '블랙리스트 극단'이었다. 최종 선정될 극단이 '블랙리스트 극단'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진상조사위는 이 같은 점이 '사업 폐지를 통한 지원배제' 논의로 연결됐다고 판단했다.

내부 증언도 확보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관계자는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심사위원 2명에게 전화를 드려 이러한 상황(문체부의 지원배제 요청)에 대해 상의를 했지만, 심사위원 2명 모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며 "이후 2차 심사가 진행됐고 그 결과 <극단 마실>이 2차 심사를 통과했다"고 진술했다.

진상조사위는 "문체부는 이같이 블랙리스트 극단 배제가 여의치 않자 '문화원 중복지원 불가' 원칙을 새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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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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