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DJ비자금' 제보 의혹 충격"…안철수 대형 악재

호남계 "충격, 박주원 사과하고 책임져야", 국민-바른 통합론 제동 걸릴듯

국민의당이 또다시 대형 악재에 휘말렸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안철수 대표를 지지하던 박주원 최고위원이 과거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에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비리 의혹을 거짓 제보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다.

8일 <경향신문>은 사정당국 관계자의 증언을 인용, 2008년 10월 주성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제기한 '김대중 비자금' 의혹의 제보자가 박주원 최고위원이라고 보도했다. 주 전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 친박계로 분류됐던 검사 출신 의원이다. 박 최고위원은 검찰 수사관 출신으로, 국민의당에 입당하기 전 2006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안산시장에 당선됐던 인물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00억 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2006년 초 주성영 당시 의원에게 제보한 사람은 박 최고위원"이라며 "박 최고위원은 대검 정보기획관실 정보관으로 일하면서 얻은 정보라며 CD 사본과 모 은행의 발행확인서 등 DJ 비자금 의혹 자료를 주 의원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신문에 따르면 제보 시점은 '2006년 초'이고, 박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안산시장 후보 공천을 받은 것은 그해 6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다.

주 전 의원은 제보를 받은 지 2년여 후인 2008년 국정감사에서 "DJ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100억 원짜리 CD를 입수했다"며 사본을 공개했고, 이 사건은 일대 파장을 낳았다. 결국 검찰은 2009년 2월까지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벌인 끝에 '근거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전 대통령 측은 주 전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주 전 의원은 DJ 서거(2009.8월) 후인 2010년 9월 벌금 300만 원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박주원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주 의원에게 CD 등 자료를 준 적이 없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하며 "주 의원은 검사였고 나는 검찰 수사관이었으니 근무할 때 왕래가 있는 정도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박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중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보도자료를 낼 계획이라고 통화에서 밝혔다.

국민의당 호남계, 민주당 "의혹 밝혀야" 공세

국민의당은 발칵 뒤집혔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을 자임하는 박지원 전 대표는 페이스북 글에서 "2008년 당시 김대중평화센터는 비자금에 대한 '가짜 뉴스'가 많아 검찰에 고발했고, 그때도 박 최고위원의 제보라는 풍문이 있었지만 저는 당시 박 최고위원을 몰랐기 때문에 확인한 바 없고 검찰 수사에 맡겼다"며 "이러한 사실이 사정 당국자에 의해 밝혀졌다는 보도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현재도 이러한 가짜 뉴스로 고인의 명예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 있으며 유족은 물론 측근들에게도 피해가 막심하다"며 "검찰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조사해 밝힐 것을 촉구한다. 더욱이 검찰 내부에서 이러한 내용이 제보되었다면 검찰의 국민적 신뢰를 위해서도 검찰 스스로 밝혀야 한다"고 했다.

생전의 DJ를 마지막까지 보좌했던 전 김대중 정부 청와대 공보비서관 최경환 의원도 입장문을 내어 "박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불법 정치공작에 가담한 경위를 밝히고,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박 최고위원은 어디서 그 정보를 제보받았고, 어떤 의도로 주 전 의원에게 알려줬는지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며 이같이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김현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김 전 대통령의 철학·가치·노선을 계승한다는 국민의당 최고위원이 정치공작에 가담한 일은 경천동지할 일"이라며 "박 최고위원은 주 당시 의원에게 허위 제보하게 된 일체의 과정에 대해 한 점 의혹 없이 국민 앞에 이실직고해야 하고, 국민의당 지도부는 박 최고위원에 대한 응분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주원 국민의당 최고위원이 지난달 2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호루라기를 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박 최고위원 옆은 지난 6일 사퇴한 최명길 전 최고위원. ⓒ연합뉴스

대형 악재 만난 安 "덮어둘 수 없는 일, 정치적 음해 여부 밝혀야"

이번 사건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여러 모로 타격이다. 먼저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안 대표 측은 '당 자체 여론조사를 해 봐도 호남 지역민들 역시 통합에 긍정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구 한나라당에 갈라져 나왔다는 특성상 바른정당에 대한 못미더운 시선이 호남에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DJ 관련 사안은 아직도 호남 민심에 큰 영향이 있다. 특히 비자금 의혹 등의 공세에 자파 최고위원이 가담했다는 의혹은 치명적이다.

시기상으로 봐도, 안 대표는 다음날인 9일부터 주말 내내 호남 방문 일정을 잡고 있었다. 9일은 DJ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 10일은 호남의 심장이라는 광주를 찾을 예정이었다. 또 공교롭게도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적극 주장해 온 최명길 전 최고위원이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해 의원직을 잃은 게 지난 5일이다. 안 대표 입장에서는 사흘 만에 연이어 타격을 입은 셈이다.

국민의당 최고위원회는 원래 안 대표를 비롯, 장진영·박주원·이태우·최명길 최고위원과 당연직 최고위원인 김동철 원내대표가 통합 찬성파였고 반대파는 박주현 최고위원 혼자이다시피 했다. 그런데 최 전 최고위원은 당선무효형 직후 최고위원직에서도 사퇴했고, 박 최고위원 관련 의혹이 이날 터졌다. 김동철 원내대표도 최근 민주당과 예산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우원식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접촉면이 넓어졌다. 장진영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 도중 잠시 회의장 밖으로 나왔다가 기자들과 만나 "내 옆자리가 하나씩 날아가니까 다음은 내 차례인가 싶다"고 하기도 했다.

안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박 최고위원 관련 보도를 언급하며 "사안의 성격이, 공소시효가 지난 얘기지만 덮어둘 수 없는 일이라 본다. 사실관계를 분명히 따져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음해인지 여부를 밝혀야 하고, 반대로 사실임이 확인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만 언급했다.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도 이 사건 관련 논의가 이어졌고, 일부 최고위원들이 불참한 박 최고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관계를 묻기도 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최명길 최고위원 후임인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 관련 논의가 있었냐고 묻자 "지금 그런 논의를 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긴박한 분위기를 전했다.

이행자 국민의당 대변인은 "박 최고위원은 이 사안과는 별개로 본인 사업 때문에 오늘 참석을 못하고 전북 전주에 가 있다"며 "당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 대변인은 "진상조사위 구성 등도 아직 결정된 것이 없고, 주성영 전 의원이나 당 내에서 당시 상황을 알 만한 분들에게 일단 알아보고 있는 단계"라며 "박 최고위원 본인은 '전혀 그렇게 한 바가 없다', '그런 사실 없다'고 얘기를 전화로 했기 때문에 좀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대변인이나 장 최고위원 등 당내 친안(親안철수)파로 분류되는 이들은 이번 사건의 '배경'을 의심하고 있다. 한 당 관계자는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불거졌는지, 이 문제가 왜 이 시점에서 불거졌는지 당황스럽다"고 했다. 안 대표도 최고위 공개 발언에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음해인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 대변인은 안 대표의 이 발언의 의미가 뭐냐는 질문에 "기자들이 추측(해석)하라"고만 했다. 이 대변인은 안 대표의 주말 호남 방문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되느냐는 질문에는 "이것과 관련해서 차질이 있을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안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치적 의도'라는 발언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그냥 원론으로 말씀드린 것"이라며 구체적 답을 피했다. 그는 "당사자가 얘기해야 한다"며 "빨리 사실관계를 밝히고 거기에 따라 대응하겠다. 박 최고위원에게 본인이 직접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사실관계를 밝히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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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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