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정국이 끝나면서 정치권의 다음 의제는 입법과 정치개혁 이슈가 될 전망이다. 특히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 개혁 문제는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의제다. 7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지도부에서는 일제히 개헌 및 선거제도 개편 언급이 나왔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 지도부 회의에서, 한국당이 민주당-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간의 문자 메시지 소통을 '야합'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반박하며 "터무니없는 소리다. 개헌을 하자, 선거구제 변화를 갖자는 것은 이미 개헌특위, 정개특위를 만들어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우 원내대표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투표를) 하자는 것은 지난 대선 때 모든 후보들이 똑같이 이야기했던 내용"이라며 "그것을 하자는 게 무슨 밀실 야합인가?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라고 했다.
'문자 소통' 당사자인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지난 대선 때 홍준표 당시 한국당 대선후보가 국민들께 '개헌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자신들 공약마저 부정하겠다는 것인지, 이것이 자유한국당 당론인 것인지, 지금의 헌법과 선거제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시대의 변화 흐름에 걸맞는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데 정략적 접근, 정쟁 도구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 수석부대표는 "개헌특위에서는 내년 2월까지 개헌안을 마련하고 3월 중 발의, 5월 28일 국회 본회의 의결이라는 로드맵을 만들었다. 이는 한국당 소속 이주영 개헌특위 위원장과 여기에 참여한 다수 한국당 의원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라고 덧붙였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제 우리 국회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등 각종 개혁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며 "분권과 협치는 시대정신이고, 무엇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 구조로 바꾸는 것은 모순과 적폐를 해소하는 것이고 촛불 민심, 국회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도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울 약속했고 국회의장도 의지를 표명한 만큼, 여야가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다만 정부·여당을 향해 "최근 청와대가 해괴한 '2단계 개헌론'을 제시하면서 정작 개헌의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은 미루고 기본권과 지방분권만 우선 추진하자고 한다"고 지적하며 "국민의당은 개헌을 무력화하고 무산시키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개헌과 선거제도개혁은 20대 국회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라고 경고했다. 그는 "개헌과 함께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구제 개편이 돼야 정치 개혁의 시너지가 날 것"이라며 "현재의 소선거구제는 기득권 양당(구조를) 고착시켰고, 다수 국민을 배제했다. 소선거구제를 하루 속히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이날 국민의당과 함께하는 '국민통합포럼' 세미나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내년 지방선거 전에 개헌이나 선거구제 개편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정기국회나 이후 12월 임시국회 등 국면에서 국민의당과 "입법 공조를 통해 양당 간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같이 언급했다.
정의당에서도 노회찬 원내대표가 당 지도부 회의에서 "2018년 예산안이 처리되고 이제 국회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개헌과 정치 개혁"이라며 "그 핵심은 기본권 확대, 지방분권, 비례성 기반의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노 원내대표는 개헌과 관련해 "노동의 권리를 확보하고 성평등을 비롯한 평등권을 확대하며 주거·의료·교육의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 실질적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도 "소선거구제 중심의 현행 제도는 국민의 지지와 국회 구성이 불일치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국회 개혁 핵심 과제는 국민의 지지가 국회 구성에 정확히 반영되는 선거법 개정"이라고 강조했다.
예산안 통과를 이끈 민주당(121석), 국민의당(39석), 정의당(6석)의 '166석 연대'에, 예산안에는 반대했던 바른정당(11석)까지 가세하는 모양새다. 개헌·선거구 개편 등 정치 개혁 이슈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끈 4당 연대가 되살아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만 동떨어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날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여당(민주당)과 제2야당(국민의당)이 협잡해서 해결될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한국당이 개헌 저지선인 116석을 보유한 상황에서 개헌은 여야 합의 없이 절대 통과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그의 말대로, 개헌 의결에는 국회 재적 3분의 2(20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정용기 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12월 국회가 끝나고 나면 정부·여당은 개헌 이슈를 지방선거에서 이용하고자 하는 전략을 세우고 행동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여당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핵심 문제는 외면하고 고칠 생각이 없이 4년 중임제를 염두에 두고 있고, 기본권과 지방분권 얘기만 하고 있다"고 여권을 비판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특히 "저 사람들(여권)도 이런 식의 개헌이 통과되리라고, 국회 3분의 2 동의를 얻을 거라고 생각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은 개헌을 원하는데 한국당이 반대한다'는 구도로 지방선거에 임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개헌을 하는 것은 개악"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최근 연이어 '내년 6월 개헌 불가'를 외치고 있다. 홍 대표는 지난 5일 관훈토론회에서 "(개헌은) 앞으로 30년 이상을 내다보고 해야 한다"며 "지방선거에 붙인 '곁다리 투표'는 옳지 않다. 문재인 정부 재임 기간 중에 개헌을 하자"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개헌을 서두르는 것은 자신들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는 것"이라며 "개헌 내용은 어차피 여야 합의가 돼야 한다. 기본권, 통일 이후 양원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탄핵 연대' 4당, 정치 개혁 각론에선 차이
실제로 한국당 전체가 반대할 경우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가능한 선거제도 개편은 그렇다 치고, 개헌은 불가능하다. 또 개헌이나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민주·국민·바른·정의 4당 간에도 입장 차이가 없지 않다.
민주당은 개헌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선거제도 개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 4월 12일 국회 개헌특위 회의에서 "차기 대선을 2022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르게 해서, 이 때부터 4년 중임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며 "대선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국회(구성에) 비례성이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 개편을 해야 한다"고 했었다. 다만 선거제도 개편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할 경우 민주당 의석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당 소속 의원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당은 개헌과 관련해서는 이원집정부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 선거제도 개편은 현행 소선거구제만 아니면 중대선거구제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정당명부제 모두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4일 당 대표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저 개인적으로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소선거구제만 바꿀 수 있으면 중대선거구제도 받을 수 있다. 어떤 방법이 돼도 좋으니 현행 소선거구제만은 바꿔야 된다"고 했다. 안 대표는 또 지난 4월 12일 개헌특위에서 "의원내각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고, 내각제 외 2가지, 권한축소형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국회에서 국민 공론화를 거쳐 정해지는대로 따를 생각"이라고 했었다.
바른정당은 개헌은 4년 중임제가 적절하다는 입장이고, 선거제도 개편 관련 입장은 국민의당과 같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지난달 13일 당 대표 당선 직후 간담회에서 "(현행 제도는) 유권자 한 분 한 분의 뜻을 국회에 정확히 반영하는 데 부족한 제도"라며 "그런 문제 인식에 있어서는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든, 국민의당이든 100% 공감한다. (다만) 구체적 대안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냐, 그렇다면 지역구는 몇 석으로 할 것이냐, 지역구는 중선거구제냐 대선거구제냐, 이런 문제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다 열어 놓고 추진하겠다"고 했다. 유 대표는 이 간담회에서 개헌과 관련해서는 "개헌에 대해서는 4년 중임제나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생각이 다 달라서 토론을 해 보겠다"며 "저 개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4년 중임제를 주장해 왔다"고 했다. 유 대표와 안 대표는 지난 10월 10일 '국민통합포럼' 주최 선거제도 개혁 토론회에 나란히 참석해 의견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개헌에서는 이원집정부제, 선거제도 개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합하다는 입장이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선후보는 4월 12일 개헌특위에서 "선거제도 개혁, 특히 비례성을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전제된다면 권력구조 문제에 대해선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며 "이원집정부제를 포함한 다양한 권력구조에 대해 정의당은 열어 놓고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했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