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한 테러지원국' 지정한 의도는?

북미 극한 대치로 치닫나? 틸러슨 "여전히 외교 희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이미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제재가 작동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북한에 타격을 주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이어가는 상징적 조치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북한은 전 세계를 위협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국 영토에서의 암살 등을 포함해 국제적인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행동을 해왔다"며 "오래전에 (테러지원국 지정을) 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북한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를 통해 불이익을 줄 것이고, 살인 정권을 고립화시키려는 우리의 '최대의 압박' 작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일 재무부는 북한에 대해 매우 거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며 "2주에 걸쳐 제재가 마련될 것이고 2주가 지나면 제재는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오늘 우리는 멋진 젊은이였던 오토 웜비어와 북한의 탄압에 의해 잔인한 일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서 지난 6월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이후 사망한 오토 웜비어 사건과 지난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제인 김정남 암살 사건 등이 이번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로 북한은 9년 만에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 북한은 대한항공 항공기 폭파 사건 직후인 1988년 1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가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 검증에 합의한 뒤 2008년 10월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됐다.

▲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면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테러지원국 지정, 북한 군사 행동 빌미될까?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되면서 한때 대화 가능성을 탐색했던 북미 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될 경우 국제사회에 이른바 '불량 국가'로 낙인찍힐 뿐만 아니라 실제 미국과 외교 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서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또 그렇지 않아도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에 반발하고 있는 북한이 이번 조치를 구실로 추가적인 군사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북한의 군사 행동이 현실화될 경우 북미 양국은 다시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국제사회로부터 사실상 고립된 북한 입장에서 이번 조치가 실질적인 압력이 되기는 어렵다는 측면을 고려했을 때,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북한을 최대한 압박해 대화로 나오게 하기 위한 외교적‧상징적인 카드 중 하나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교를 희망한다"고 밝힌 것 역시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21일 재무부가 발표할 예정인 조치에 대해서도 "매우 상징적인 조치이며 실질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면서 "이 조치는 김정은 정권이 대화로 걸어 나와 대화가 준비될 때까지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본인 트위터 계정을 통해 중국이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것은 "큰 움직임"이라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밝혔다. 이에 중국의 대북 특사에 기대감을 가졌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높이는 것만이 북한을 굴복시키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길로 나오게 하는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이번 조치를 취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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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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