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3NO', 박근혜 안보 적폐 청산 신호탄"

[정세현의 정세토크] 관건은 북한…'60일 고비' 넘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문제로 불편했던 중국과 관계를 일단 봉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사일 방어 체계(MD)에 편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이 군사 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3NO'를 두고 중국에 너무 양보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3NO'를 선언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추진했던 이른바 외교‧안보 분야의 '적폐'를 정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이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사드 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을 중단하겠다고 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3NO' 입장 표명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넘어간 것도 상당한 성과"라며 "문재인 정부가 통일외교안보에서 자기 페이스를 찾아가는 첫걸음을 내딛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무기를 들여오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 측에서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보채는 아이 젖병 물린 격'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기 구입'이라는 '젖병'을 물려 놓고 '3NO'에 대한 양해를 받은 것"이라며 "미국 무기를 너무 많이 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외교 입지를 넓히기 위해,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밝힌 대로 이번에 정찰 자산을 들여올 것이라고 하는데, 전작권 환수의 핵심이 바로 정보 수집, 정찰이다"라며 "그동안 우리는 정보 수집 분야에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전작권 환수에 한계가 있었다. 전작권 환수를 위해서는 북한의 군사 정보에 대한 수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찰 자산 구입은 일종의 '선투자'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다른 무기들이 소모성이라면 정찰 자산 도입은 전작권 환수를 위한 준비 차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며 "기왕 미국의 무기를 사야 한다면 정찰 자산을 들여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가 이미 사드 배치를 통해 MD에 일정 부분 편입됐고, 일본과 지난해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맺기도 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핵과 미사일 문제가 악화되면 '3NO' 입장은 바뀔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이와 관련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MD 편입에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끌려들어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가 대화 국면으로 들어가도록 다른 어떤 나라 정부들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면서 북미 간 접촉을 인정했고 결과를 지켜보자고 이야기했다"며 "여건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인터뷰는 13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촉발된 중국과 갈등을 일단 봉합했습니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사일 방어체계(MD)에 편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3NO' 메시지를 중국에 전하면서 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였는데요.

이후 지난 11일(현지 시각) 베트남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관계 개선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등 양 정상의 상대국 방문 일정도 공식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언행 때문에 정상회담이 오히려 한반도 갈등을 고조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비교적 차분하게 정리된 느낌입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도 잘 이뤄졌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한미 양국이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에만 합의했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나 이니셔티브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오히려 '미국 무기를 많이 사서 트럼프의 입을 막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정세현 : 우선 문재인 정부가 '3NO'를 선언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추진했던 이른바 외교‧안보 분야의 '적폐'를 정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중국도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사드 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을 중단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3NO' 입장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넘어간 것도 상당한 성과라고 봅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압박하는데 선봉장에 선 것처럼 보였던 문재인 정부가 그나마 통일외교안보에서 자기 페이스를 찾아가는 첫 걸음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부분과 관련해 미국에서 메시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2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의 '3NO' 입장과 관련, 확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이 주권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밝힌 겁니다.

이 말은 마치 문재인 정부가 중국이 시키는 대로 했고, 이게 곧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건데요. 미국이 시키는대로 하면 한국은 주권을 유지하는 것이고 중국과 어느 정도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을 하면 끌려가는 것입니까? 맥매스터 보좌관 역시 자국 중심적으로 생각한 것이겠지만, 어쨌드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드가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침해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했던 중국은 왜 이정도 수준에서 한국과 갈등을 봉합하려고 했을까요? 시진핑 주석이 취임 초기부터 내놓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실현하려면 한반도의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시 주석은 집권 초기였던 지난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브 대학에서 열린 강연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가 손을 잡고 '실크로드 경제권'을 만들자며 '일대'(一帶)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그해 10월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했던 연설을 통해 '해상 실크로드', 즉 '일로(一路)' 구상을 밝혔습니다.

집권 2기에 접어든 시 주석은 일대일로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겁니다. 시 주석 입장에서는 일대일로의 완성이 결국 중화부흥의 완성과 같은 뜻이기 때문에 이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 주석이 이를 추진하려면 서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은 '동수서점'(東守西漸), 즉 동쪽은 적당히 정리하고 서쪽으로 점점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입장에서 뒷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가 조용해야 합니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사드 문제로 계속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안됩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을 계속 뜯어 말릴 수만은 없습니다. 미국은 한미일 관계를 군사 협력까지 발전시켜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것이 '인도-태평양' 구상입니다. 중국의 일대일로를 견제하려면 인도 및 태평양 국가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미국 입장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한반도에서 중국과 계속 갈등을 벌이면 안됩니다. 역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그래서 일단 한중 간 관계 개선에 협조해주고 대신 그 힘을 인도-태평양 쪽으로 돌리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러한 중국과 미국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문재인 정부가 운이 좋은 측면도 있죠.

▲ 7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여기에 문재인 정부는 이번에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마치 '보채는 아이 젖병 물린 격'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기 구입'이라는 '젖병'을 물려 놓고 '3NO'에 대한 양해를 받은 것이죠.

미국 무기를 너무 많이 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의 외교 입지를 넓히기 위해,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국방예산이 보통 1년에 40조 원 정도 됩니다. 이 중에 통상 10% 정도는 미국의 무기를 사는 데 지출합니다. 이번 회담 이후 정부가 별도로 발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외신을 통해 보면 한국이 대략 7조 정도 어치의 무기를 살 것으로 보입니다. 통상 지출보다 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밝힌 대로 이번에는 정찰 자산을 들여올 것이라고 합니다. 전작권 환수의 핵심이 바로 정보 수집, 정찰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정보 수집 분야에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전작권 환수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전작권 환수를 위해서는 북한의 군사 정보에 대한 수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찰 자산 구입은 일종의 '선투자'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무기들이 소모성이라면 정찰 자산 도입은 전작권 환수를 위한 준비 차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기왕 미국의 무기를 사야 한다면 정찰 자산을 들여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봅니다.

문재인 정부, '3NO' 지키려면

프레시안 : 그런데 한국이 발표한 '3NO'는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요?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겠다는 건 지킬 수 있다고 쳐도, 사드를 배치했기 때문에 사실상 MD에 편입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데요.

정세현 : MD 편입 문제는 지금 튀어나온 사안이 아닙니다.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죠. 김영삼 정부 때부터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모두 MD 편입 문제가 거론됐습니다. 이전 정부들은 MD로 갈 필요가 없고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로 대응하면 충분하다고 논리 전개를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오면서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화되고, 그러면서 MD 편입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게 된 것이죠. 이 문제는 앞으로도 미국과 관계에서 충분히 불거질 수 있는 사안입니다. 물론 MD 체계에 편입돼서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은 없습니다.

프레시안 : 한미일 군사동맹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군사 동맹으로 발전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미 일본과 지난해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맺었습니다. MD도, 한미일 군사동맹도 사실은 이미 한 발을 걸쳐 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인데요. 이러다가 북한에서 핵과 미사일 문제가 악화되면 한 발이 아니라 양발을 모두 들여놓게 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MD 편입뿐만 아니라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끌려들어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가 대화 국면으로 들어가도록 다른 어떤 나라 정부들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여건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면서 북미 간 접촉을 인정했고 결과를 지켜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10일(현지 시각)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서 "미국과 북한은 메시지가 오가는 2~3개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서로가 '그래, 첫 대화를 할 때가 됐다'고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북핵 문제는 대화와 협상 쪽으로 물꼬를 트려는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제반 여건이 사드 봉합과 '3NO'와 같은 입장 표명으로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뒤이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한국의 외교 행태를 봤을 때 미국으로부터의 양해가 없었다면 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미국이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균형외교와 관련된 질문에 "외교 지향을 넓히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번에 이어진 정상회담을 통해 균형외교의 디딤돌을 놓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가 중요한 변수일 것으로 보입니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중국이 완전히 양해한 것처럼 발표했습니다만, 중국은 시 주석이 문제제기를 강하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3NO' 관련해서도 중국은 이를 '약속'이라고 했고 우리는 약속까지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양쪽이 조금씩 말이 다른 이유는, 중국 입장에서는 사드 문제를 "완전히 해결됐다"라고 이야기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드 문제의 '완전한 해결'보다는 '언제든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로 놔두는 게 중국 입장에서 유리합니다. 그러려면 시 주석이 사드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강력하게 이야기했다고 기록에 남겨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이 사드로 다시 우리 경제에 압박을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문제가 해결됐다고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각자 입장에 따라 다른 표현을 쓴 셈이죠.

▲ 11일(현지 시각)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 계기에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청와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 협정의 유효기간이 1년입니다. 이게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기초공사였는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연장할지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한미일 군사 동맹으로 넘어가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지난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했는데, 여기에 대한 국내 여론이 좋지 않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여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와 연관된 협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 60일 동안 잠잠한 이유는

프레시안 :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가 한반도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변수인데, 북한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사흘만인 11일 외무성 담화를 내놨습니다. 그런데 외무성 담화라는 형식도 그렇고, 내용도 지난 9월 리용호 외무성이 수소탄 시험을 하겠다며 엄포를 놓은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절제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관측됩니다.

정세현 : 북한이 12일에 <노동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라고 표현했던데, 이날 기사도 그렇고 외무성 담화도 그렇고 기록용으로 한마디 하고 지나가는 걸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도 '화염과 분노', '완전한 파괴'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북한에 자극이 됐을지 의문입니다.

북한은 확실한 기술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의 사거리와 대기권 재진입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 함부로 미사일을 쐈다가 실패하면 북한은 '종이호랑이' 되는 겁니다. 올해 말까지 미국을 최대한 압박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일정이기 때문에 마지막 카드를 함부로 쓰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니 미북 간 대화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미국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9일(현지 시각)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0월 30일 미국 외교협회(CFR)에서 했던 강연을 보도했는데요. 기사에 따르면 윤 대표는 '60일 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은 지난 9월 15일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발사한 이후 아직까지 별다른 군사적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곧 60일이 다가옵니다. 여기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도 북미 간 대화를 하고 있음을 인정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했습니다. 따라서 최근 북한의 군사 행동 중단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고 북미 간 상당한 정도의 교감이 있었고, 이에 대한 연장선에서 취해진 조치로 보입니다.

이제 곧 60일이 지나가는데 북한이 얼마나 더 참고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미국의 요청으로 60일 동안 행동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정작 미국 쪽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면 이걸 끌어내기 위해 북한은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외교에서 '자기 중심성' 찾았다

프레시안 : 중국과 사드 문제를 타결했을 때 청와대는 기존 외교적인 측면에서의 일상적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인 타협이 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실제 중국에 문재인 정부와 가까운 정치권 인사가 여러 번 중국을 방문하면서 입장을 조율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외교부에서는 이렇게까지 중국에 양보해야 하느냐는 반발도 나왔다고 하는데요. 정부 입장에서는 평창 동계 올림픽에 시진핑 주석이 오는 것을 고려해서 로드맵을 짜고 발표를 한 것일까요?

정세현 : 청와대가 정말로 외교부의 반발도 무릅쓰고 중국과 관계 개선에 힘을 썼다면 그건 한편으로는 반가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의 통일‧외교‧안보는 삼위일체로 협조해야 하고, 특히 분단국인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관계가 안보의 조건이고 통일의 출발점입니다. 외교와 국방은 이를 풀어나가는 데 양 날개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통일문제와 남북관계는 일종의 방향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안타깝게도 외교부에는 여전히 미국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중국과 관계 개선에도 적잖은 저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돌파했다는 것은 청와대가 외교 분야에서도 확실하게 자기 중심을 잡고 나가려는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한국 정부가 대미 일변도의 외교에서 벗어나서 자기 중심성을 가지려는 징표로 보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직업 외교관들을 너무 홀대해서는 안됩니다. 이번에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대사를 모두 외교관이 아닌 사람들로 임명했는데 이렇게 되면 외교부 관료들의 사보타주(태업)를 벌일 수도 있습니다.

관료의 사보타주는 흔적도 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파업까지 안가더라도 이정도로 얼마든지 정권을 골탕먹일 수 있습니다. 자국 중심성을 가지고 외교를 벌이는 건 좋지만, 인사 문제에서 기존 외교 관료들을 너무 홀대하는 것도 썩 좋은 모양새는 아닙니다.

프레시안 : 시진핑 주석은 평창 올림픽 때 한국에 방문할까요?

정세현 : 그걸 계기로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습니다. 12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가면 시 주석이 상호주의로 답방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평창 동계올림픽을 명분으로 해서 개회식 때 참관하는 등의 모양을 갖추고 나머지 시간에 서울에 와서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시 주석의 참석을 계기로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만들자고 하는 건 외세 의존적인 발상인 것 같습니다. 올림픽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남북이 직접 이야기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데 있어서 꼭 중국의 힘을 빌려야 합니까? 중국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 대화할 틈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남북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접점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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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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