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씨가 (주)미래엠앤씨라는 작은 회사를 차린 것은 2012년 8월께였다.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면서 (주)CJ헬로비전의 모바일 대리점인 미래엠앤씨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CJ헬로비전은 CJ그룹 계열사로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라고 보면 된다. 초고속 정보통신망 관련사업, 이동통신사업 등이 주사업이다.
박 씨가 차린 미래엠앤씨는 택시에 사용되는 무선카드결제기 사업을 담당했다. 회사를 만든 지 3개월 만에 CJ헬로비전과 모바일 대리점 계약을 완료하고 무선카드결제기 제품 개발 등을 진행했다. 당시 회사를 차릴 때는 이미 CJ헬로비전과 서로 간 업무에 대해 이야기가 돼 있었다. 박 씨는 이전 회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업무를 해왔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CJ헬로비전 측은 이동통신 가입자 20만 명 목표달성을 위해 모뎀 1만여 대를 가개통하자고 박 씨에게 요구했다. 부산택시조합 측과 CJ헬로비전 본사 간 무선카드결제기에 대한 통신서비스 계약을 논의 중이라면서 2013년에는 진행될 일이니 미리 박 씨 회사 명의로 가개통을 먼저 하자고 제안했다.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와서 사기를 쳤다니..."
이때만 해도 CJ헬로비전 가입자는 약 18만 명. 2012년 연말 내에 20만 가입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박 씨를 압박했다. 그래야 곧 있을 KT와의 이동통신망 비용 협상에도 유리한 고지에 있을 수 있고, 사업 첫 해 실적 목표 달성을 해야 그룹차원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CJ헬로비전은 이동통신망 관련, KT와 임대계약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대리점을 개설한지 3개월도 안된 시점에 1만 대가 넘는 모뎀을, 그것도 가개통 한다는 것은 박 씨에게 큰 부담이었다. 자신의 회사 명의로 가개통된 모뎀에서 나가는 한 달 요금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 달 모뎀 한 대당 통신비만 5,000원이었다.
이에 CJ헬로비전 측은 개통에 필요한 모뎀 구매비용과 개통수수료 등으로 모뎀 1대당 15만 원의 보조금을 선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해당 보조금으로 가개통 요금을 납부하고 있다가 가개통이 본개통으로 전환되면 그 때까지 낸 통신비는 정산해서 지급할 것이니 그 때까지 선지급받은 보조금으로 먼저 통신비를 내라고 했다.
당시 CJ헬로비전 측 영업담당 팀장은 앞으로 큰 사업을 많이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박 씨를 압박했다. 박 씨 역시 이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가개통 후 본개통으로 전환된다면 본개통 되는 모뎀 수에 상응하는 수수료 등의 이익이 자기 손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결국, 박 씨 회사 명의로 1만 선이 넘는 모뎀의 가개통을 진행했다. 하지만 당시 회사는 차린 지 몇 달 되지 않는 영세한 회사였다. 자신을 포함해 총 5명의 직원만이 있었다. 실무를 할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자 CJ헬로비전 측에서는 헬로비전의 개통업무를 담당하던 대성네트웍스라는 회사를 가개통 업무에 지원하도록 배려했다. 또한 1만 대를 개통한다면 보통은 회선 증설을 위해 요구했을 손해담보나 보증보험증권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12년 12월까지 1만 대가 넘는 모뎀에 대한 가개통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부산택시조합과의 카드결제기 협상이 결렬됐다. 그러면서 가개통에 사용된 1만여 대 모뎀은 박 씨의 사무실을 가득 메운 채 남게 됐다. 매달 500만 원의 보관료를 지급할 테니 모뎀을 보관해 달라던 CJ헬로비전은 이후 800여만 원만 지급한 후 현재까지 수거해가지도 않고 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결과가 결렬됐기에 본사와 정산하는 게 필요했다. CJ헬로비전이 지급한 15만 원에서 개통 수수료, 관리 수수료, 통신료 등을 더하고 빼야 하는 복잡한 셈법이 필요했다. CJ헬로비전 담당 팀장, 모바일 정책팀장 등과 서로 간 주고받을 금액 관련, 정산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다. 담당팀장이 급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부터였다.
담당팀장의 사망 직후, CJ헬로비전 측은 박 씨와 그리고 사망한 CJ헬로비전 측 담당팀장의 직속 부하직원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부산택시조합과 콜택시전용단말기와 카드결제기에 대한 통신서비스계약을 한 사실이 없음에도 담당팀장의 직속 부하직원과 박 씨가 공모해서 박 씨 회사 명의로 CJ헬로비전과 콜전용단말기와 무선결제기를 개통한 뒤, 그 개통수수료 및 단말기 대금을 편취했다는 이유였다.
한 마디도 박 씨와 사망한 담당팀장의 직속 부하직원이 서로 짜고 계약도 체결하지 않았으면서 계약을 한 것처럼 한 뒤, 개통 수수료와 단말기 대금 등으로 약 16억여 원을 받아갔다는 이야기다.
"을인 대리점에 모두 떠넘기고 폭력적인 형사고소 자행했다"
박 씨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CJ헬로비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자신이 이를 주도하고 공모했다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간 자신과 소통하며 업무를 진행한 CJ헬로비전 담당팀장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다행히 CJ헬로비전 담당팀장이 죽기 전, 박 씨와 나눴던 대화 내용과 정산 협상을 했던 모바일정책팀장과의 대화 내용이 녹음파일로 저장돼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박 씨가 녹음해 둔 파일이었다. 이 녹음파일에는 CJ헬로비전 본사에서 가개통 등 업무 진행 상황을 모두 인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박 씨의 혐의 관련, 무죄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그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CJ헬로비전은 박 씨를 형사고발하면서 박 씨 회사의 통장뿐만 아니라 박 씨 집, 개인 통장 등에도 가압류를 걸었다. 그 결과, 심각한 자금난으로 회사는 도산 직전에 처하게 됐다.
한 때, 임직원만 20명이 넘던 회사는 그간 송사로 박 씨 혼자 남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 씨는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 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못할 지경이다.
주목할 점은 CJ헬로비전은 박 씨에게 지급해야 하는 미지급금도 아직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금계산서상으로만 약 3억4000만 원. 박 씨는 CJ헬로비전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었고, 재판부는 박 씨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박 씨가 제기한 3억4000만 원 모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CJ헬로비전 측은 이에 불복, 지급해야 하는 3억4000만 원의 금액을 법원에 공탁하면서까지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했다. 동시에 이번 판결 관련, 항소도 제기했다. 항소심은 오는 15일 진행된다.
박 씨는 "대기업인 CJ헬로비전은 공탁금 정도의 손실이 발생해도 별 다른 어려움이 없어 담당자들이 급여를 받고 생활해 나가는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퇴사한 직원들 퇴직금과 대출 상환 등을 걱정하며 현금 서비스 등으로 겨우 버텨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본인들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외면하여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약자인 대리점에 모두 떠넘기고 이를 숨기기 위하여 폭력적인 형사고소 등을 자행하는 게 지금의 CJ헬로비전"이라며 "더구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음에도 CJ헬로비전은 가압류 취소 및 수수료 정산 협상 등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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