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동안 북한 관련 뉴스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들이다. 일상 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단어들이다. 관련 뉴스를 하루라도 접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북한을 다룬 뉴스는 넘쳐난다.
북한 주민들은 어찌 살고 있을까?
그런데 정작 북한에 사는 주민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을 다룬 뉴스들은 쉼 없이 보도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다룬 뉴스는 드물다. 예를 들면, 고층 빌딩들이 밝게 빛나는 평양 여명거리의 야경을 다룬 뉴스는 접할 수 있지만, 평양 주민들의 모습은 알 길이 없다. 작년 여름 두만강 하류에서 처참한 수해가 발생한 것은 알지만, 함경북도 주민들의 모습은 잘 알지 못한다.
흔히 북한이라 부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라는 국가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폐쇄적인 국가이다. 거의 모든 정보는 국가에 의해서 생산되고, 유통되고, 통제된다. 외부인에게 허용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정보는 분야에 상관 없이 극도로 제한된다.
문제는 이러한 북한 사회의 폐쇄성이 인도적 지원이나 상호 교류마저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북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불가능하기에 일방적인 지원이나 교류를 추진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그러한 사업의 경우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추진되었던 상당수 사업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중단된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외부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 지속적인 지원이나 교류를 위해서는 북한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북한 의학학술지에 대안 치료 연구 논문이 많은 이유
보건의료 분야 대표적 대북 지원 단체 중 하나인 '어린이 의약품 지원 본부'가 지난 10월 중순에 개최한 심포지엄은 이와 같은 노력의 하나이다. '북측 보건의료 학술지를 통해 본 북측 보건의료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심포지엄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의학 학술지를 통해서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평가하였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향후 대북 제재 국면이 풀리고 인도적 지원과 상호 교류가 재개 되었을 때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해야 할지도 논의했다.
의학 학술지는 의사들이 의학적 정보를 주고받을 목적으로 발간되는 출판물이다. 특정 국가를 대표하는 의학 학술지는 해당 국가의 의학적 관심사를 반영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학회지(The Journal of the American Association, JAMA)에는 한동안 국가 주도 의료보험에 대한 논문이 활발하게 투고 되었고,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오바마 케어에 대한 글을 투고하기도 하였다. 지난 2015년 우리나라 대한의학회지(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JKMS)에 갑상선암 조기 검진에 대한 논문이 많이 투고되었던 사실도 유사한 맥락이다.
북한 역시 의학 학술지가 30년 넘게 출판되고 있다. <조선의학>이라는 의학 학술지인데, 1년에 4회 출판되고, 진료 관련 임상의학부터 생물학이나 의공학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의학 모두를 다룬다. 어린이 의약품 지원 본부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조선의학>에 실린 논문들이 다루었던 연구 주제의 변화를 분석했다. 즉, 북한의 의학적 관심사의 변화에 대한 연구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조선의학'이 갖는 대표적 특성 중 하나가 '대안적 치료(Alternative Therapy)'에 대한 논문이 많다는 점이다. 'B라는 새로운 치료법의 효과가 기존에 알려진 A라는 치료법의 효과와 차이가 없다.'라는 연구 가설을 검증하는 논문이다. 이와 같은 연구 설계는 보편적인 의학 학술지에서는 흔하지 않은 형태로, 널리 사용되던 의약품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대체 의약품을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북한 의료진의 의도가 반영된 연구로 판단된다.
전체 논문 중 대안적 치료 관련 논문이 차지하는 비율을 연도별로 살펴보자. 이 비율은 1990년 4.5%에서 1992년 소련 및 동구권 붕괴 후 의약품의 공급이 끊기면서 1995년에는 27.6%까지 급격하게 상승하였고,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알려진 시기를 거쳐 2000년에도 27.4%로 여전히 높다.
반면 햇볕 정책에 따른 인도적 지원과 상호 교류가 증가한 2005년에는 대안적 치료에 관련 논문 비율이 소련 및 동구권 붕괴 이전 수준에 근접한 6.7%까지 감소하였다. 이후 집권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제재 결과 다시 상승하여 2010년에는 14.5%, 2015년에는 24.4%까지 상승하였다. 더욱이 2015년의 경우 필수 의약품이라고 할 수 있는 항생제 및 진통제 관련 논문의 비율마저 급격하게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북한 주민을 위한 의약품 지원 재개돼야
지난 주 북한은 '제재 피해 조사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서 유엔의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을 국제 사회를 향해서 펼쳤다. 이를 두고 국내 일부 언론들은 북한 정부가 제재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거짓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여러 현지 소식통을 인용하며, 현재의 제재는 북한 고위층을 대상으로 삼으므로 일반 주민에게는 별 다른 피해가 없거나 혹은 수출이 막히면서 생필품이 풍성해지고 물가가 하락하여 북한 주민들은 오히려 반기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연구 논문의 비율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북한 역사상 가장 힘들었다는 1990년대 후반만큼이나 각종 의약품이 부족하여 대체 의약품의 사용을 고려해야 하고, 항생제나 진통제 같은 필수 의약품마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삶에는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대북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는 자명하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굳어있더라도 의약품 지원을 포함한 인도적 교류는 재개돼야 한다.
(김대희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은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남북보건의료협력센터 연구원이자,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임상조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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