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박근혜 출당' 결정...헌정사 최초 기록 추가

'보수 대통합' 동력 될까…朴측 "이해할 수 없다" 반발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자진 탈당을 권유하기로 결정했다. 탈당 권유는 징계의 한 종류다. 박 전 대통령과의 결별로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 바른정당과의 보수 대통합을 성사시키려는 홍준표 지도부의 의사가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국당 윤리위원회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회의를 열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징계를 의결했다"며 징계 종류는 "탈당 권유"라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뿐 아니라 친박계 핵심 중진인 서청원·최경환 의원도 마찬가지로 탈당 권유 처분을 받았다.

홍준표 대표 등 한국당 지도부는 지난 9월 13일 당 혁신위원회(위원장 류석춘 연세대 교수)가 박 전 대통령 등 3인에 대한 탈당 권유를 권고한 데 대해 한 달여 동안 결정을 미뤄 왔다. (☞관련 기사 : '박근혜 탈당 권유' 직후 친박-비박 티격태격)

'탈당 권유'는 한국당 당규 12호 '윤리위원회 규정'에서 정한 4종의 당원 징계처분 가운데 하나다. 이 처분은 제명보다는 수위가 낮고, 당원권 정지나 경고 처분보다는 높다. 당규에 따르면 탈당 권유 처분의 대상이 된 당원은 10일 이내에 탈당해야 하며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윤리위 의결을 거치지 않고 지체 없이 제명 처분"(윤리위 규정 21조 3항)된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오는 30일까지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창당한 당에서 제명된다. 사실상 '출당'에 가까운 것으로, 전직 대통령이 당의 조치에 앞서 자진 탈당을 하는 것이 아닌 '출당'에 준하는 조치를 강요당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앞서 한국당 측에서 자진 탈당하라는 의사를 전달한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거부 의사를 보였다고 이날 <국민일보>가 친박계 의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

단 현역 의원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경우는 당규에 의해 의원총회 결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당은 당규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제명은 (윤리)위원회의 의결 후 의원총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확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한국당 자체 당규뿐 아니라 '정당법' 33조도 "정당이 그 소속 국회의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당헌이 정하는 절차를 거치는 외에 그 소속 국회의원 전원의 2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나 서·최 의원이 당 윤리위에 재심을 청구하는 것도 당규상으로는 가능한 방법이지만, 실제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3명은 모두 윤리위의 징계 심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소명을 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주택 한국당 윤리위원장은 "소명이 잘 안 된 것으로 안다"며 "(두 의원의 경우) 본인들이 외국에 나가 있기도 했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윤리위 결정이 만장일치가 아닌 표결에 의해 이뤄졌다고 밝히며, 결정 배경은 "정치적 측면, 보수진영의 결집과 보강하려면 이런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 의원들에 대한 '인적 청산'은 한국당과 바른정당 간의 '보수 통합'에서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 자강파에서는 '이제 와서 박 전 대통령이나 의원 2명을 출당시킨다고 뭐가 달라지나'라는 입장이지만,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통합파에서는 박 전 대통령 한 명만 출당시켜도 한국당을 통합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혁신 조건은 갖췄다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한국당 윤리위의 결정이 국민의당-바른정당 간의 이른바 '중도 통합' 논의에 밀려 주춤한 양상을 보이고 있던 '보수 통합'에 새로운 동력을 공급할지 주목된다. 한국당-바른정당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보수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는 이날 아침 회의를 열고 보수 통합의 정당성에 대해 역설했다.

바른정당 황영철 의원은 이 자리에서 "보수 대통합이라는 큰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하나로 모여야 될 때"라며 "한국당 내에서 새로운 쇄신의 길에 모두가 동참하고 (이를) 동력으로 보수 대통합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 바른정당 내에서 한국당의 쇄신 결과를 지켜보고 함께할지 고민하는 많은 의원들이 한 길로 갈 수 있도록 결과물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인적 쇄신을 간접 압박했다.

홍문표 한국당 사무총장은 이에 "나라가 거덜날 지경"이라며 "약간의 걸림돌 때문에 큰 것을 놓친다면 내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라고 조건 없는 통합을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날 윤리위가 박 전 대통령 등 3명에 대한 탈당 권고안을 결국 내놓으면서, 이 정도의 방안이 황 의원 등 바른정당 통합파가 바라던 '쇄신 결과물'로 합격점을 받게 될지 주목된다.

또 박 전 대통령은 탈당 혹은 제명되더라도, 서·최 의원에 대한 제명 처리가 불발될 경우 이 역시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의원의 거취를 결정할 의원총회에서 변수로 꼽히는 것은 당내 구 친박계의 반발이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개인 성명을 내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징계를 서둘러 처리하는 것에 반대한다. 절차와 과정이 잘못됐고, 너무 성급하게 처리하려 하고 있다"며 "서·최 의원의 징계에 반대한다. 지난 1월 당원권 정지 3년의 징계를 받았고 지난 5월초 당 대선 후보로 당의 전권을 위임받았던 홍준표 후보가 징계 해제를 해 줬는데, 징계를 풀어 준 당사자가 5개월이 지나 다시 징계를 받도록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일사부재리 원칙 위배"라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특히 "제가 반대하고 우려하는 방향으로 윤리위가 결정할 경우 저는 당 최고위원으로서 최고위원회의에서 강력히 반대할 것"이라며 "만일 오늘 징계안을 서둘러 처리하는 것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의식해 하는 것이라면 더 더욱 잘못된 것이다. 보수 통합을 위해서는 네 탓 내 탓을 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조건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 당내 의견 대립을 예고했다.

이장우 의원도 전날 "당 지도부가 옥중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을 강제 출당시키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어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다"며 "1심 재판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멋대로 전직 대통령을 내쫓겠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했다. 이 의원은 특히 홍 대표를 겨냥해 "엊그제까지만 해도 '시체에 칼질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분이 '잘못이 있으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지도자'라며 180도 돌변한 모습을 보면서 원칙은 없고 일관성도 없는 당 지도자의 처신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김진태, 박대출 의원도 18~19일 성명을 내어 비슷한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때문에 이날 윤리위 결정을 놓고 의원총회장에서나 그 이전의 당내 논의 과정에서 격렬한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자강파가 다수인 바른정당 지도부에서는 이번 결정에 대해 "요란하기는 하지만 애초부터 소문난 잔치"라며 "현재로서는 가시적으로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특히 두 의원에 대한 처리와 관련해 "당원권 정지에서 복당, 다시 정지까지 그 현란한 변신술에 진심을 알 수가 없어 딱히 언급할 게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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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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