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홍준표의 핵무장론? 미국 못믿겠단 말인가?"

"2004년 IAEA 한국 사찰 잊었나?…北은 이란과 달라, 제재론 어렵다"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이나,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등의 강경론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일축했다.

문 교수는 2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1주년 토론회에서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북미 간 우발적 또는 계획된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과거의 전쟁은 재래식 전쟁이었으나, 지금은 북미 간 군사 충돌이 일어난다면 개전 초기에 핵전쟁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방부나 한국 보수세력 일각에서 나오는 '군사적 옵션'이라는 발언에 얼마나 위험한지 짚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 교수는 "국가 안보가 왜 필요하나. 민생경제를 도외시하는 '안보'에는 상당히 동의하기 어렵다"며 "한미동맹이 깨지는 한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 동맹의 이유가 전쟁하지 말자는 것인데, 동맹이 전쟁의 기제가 된다면 찬성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 교수는 "미국이 군사행동을 한다면 그 정치적 목표는 북한 지도부의 궤멸과 북한이 가진 핵 자산, 핵물질·핵무기를 초토화하는 것이겠고, 군사적 목표는 군사 지휘부와 무기체계를 궤멸시키는 것이겠지만, 지상군 투입 없는 군사행동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목표 달성도 어려운 행동을 트럼프 행정부가 한다면, (무익한 인명 손실 규모가 천문학적이라는 점에서) 인류에 대한 죄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맥마스터 보좌관 등 미 정부 일각에서 '대북 군사행동 시나리오' 등의 경고성이 나오는 데 대해 "실질적인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 실제 행동은 어렵다"며 1994년 북핵 위기 때 클린턴 행정부도 북한 영변에 대한 폭격을 검토하다가 100만 명 이상의 인명 피해 우려 때문에 계획을 접었던 사례를 들었다.

이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 요구를 하고, 하지 않으면 자체 핵개발을 해야하는 그런 순간"이라고 하는 등 한국 보수세력 일각에서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문 교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일소에 부쳤다.

그는 "우리가 핵무장을 한다고 하면, 그 의도를 보이는 순간부터 이란이나 북한처럼 된다.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고, 한미 원자력협정은 파기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산하 핵연료공급그룹에서 한국에 대한 공급은 차단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될 가능성이 많다. 우리같이 열린 사회, 무역으로 번영을 일구는 사회에서 이것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는 지난 2004년 9월 노무현 정부 당시 IAEA 사찰단이 대전 원자력연구원을 방문해 사찰을 벌인 일을 언급하며 "(2000년에) 원자력연구원에서 0.2 그램의 우라늄을 농축했다고 사찰관을 200명이나 보냈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겠다고 거론하고 나왔다. 그때 노무현 정부가 미국에 사정사정하고 투명성을 보장해서 겨우 위기를 넘겼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북한 핵 위기가 있다 해도, 핵무장을 들고 나왔을 때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상상을 초월한다"며 그는 "더구나 미국이 확장억지, 핵우산 제공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몰라도,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한다는데 '그건 못 믿겠다'고 하고 (핵개발을) 한다면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국 내 미군기지에 재배치하는 방안이나, 북한에 대한 제재가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등에 대해서는 지난 19일 국회 강연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관련 기사 : 문정인 "북핵 동결 대 한미훈련 축소 교환" 거듭 촉구)하면서, 특히 제재가 비핵화로 이어진 이란의 사례는 북한과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이란 모델을 얘기하지만, 이란은 왕정 때부터 중산층이 크게 형성됐고 이 중산층이 이슬람 혁명을 지원했다가 미국이 (경제) 제재를 하면서부터 중산층(의 이슬람 정권에 대한 지지)이 흔들렸다. 그러니 이란 내에 변화가 생겨서 미국과 핵협상이 될 수 있었다"며 "북한도 시장을 통한 변화, 시민사회·중산층 형성이 없다면 아무리 제재·압박을 해 봐야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리용호의 '선전포고' 발언, 이유는…"


문 교수는 또 청와대 특보가 아니라 학자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것은 현실이니 그 전제로 정책을 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북한이 '핵무장력'을 가지면 남북 간 평화 공조는 물건너간다. 북한이 핵탄두를 100개 이상 가지면 조선노동당 규약대로 '통일전선', '적화통일' 전략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물질' 보유, 핵'폭탄' 개발, 핵폭탄과 운반수단의 결합, 다수 생산 및 실전 배치로 이어지는 과정 가운데, 북한이 마지막 단계인 핵무장화 단계에 접어들기 전에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촉구로 읽힌다.

문 교수는 북한의 핵개발 이유를 "수령 옹위, 제도 옹위, 인민 옹위 3가지가 기본이고, 더 나아가서 김정은의 정통성을 함양하고 국제사회에 북한과 북한의 수령의 '존엄'을 높이는 것"이라며 "핵심 동기는 미국의 핵 위협에 핵 억지력을 갖추겠다는 것으로, 미국의 핵탄두가 7000개인데 10개로 억지가 되겠냐고 하지만 (10여 개로도) 주한미군·주일미군과 미 서부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다면 숫자는 적어도 적의 전략적 핵심에 타격을 가하면서 최소한의 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게 북한의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문 교수는 북핵 분제 해법에 대해서는 지난 19일 강연에서 주장했던 "유연하고 포괄적인 접근법"을 재강조했다. 또 문재인 정부가 처한 정책적 환경에 대해서는 전날 10.4 선언 10주년 기념행사 강연에서처럼 "보수정권 9년의 유산을 받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문정인 "文대통령은 보수정부 9년의 희생양")

그는 최근 리용호 북한 외상이 미국 뉴욕에서 '선전포고'를 운운한 데 대해서는 "재미있는 현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파괴'라고 했을 때는, 이것이야말로 '적대적 표현'의 정점이었는데 별 반응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오래가지 못할 것(won't last long)'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에 대해서는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대비시켰다. 그는 "북한 식으로 표현하면 '최고 존엄'에 대한 공격과 모욕이 '공화국(북한 국가)'에 대한 공격과 모욕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리용호가 그렇게 나온 게 아닌가 추론된다"고 했다.

문 교수가 참석한 이번 토론회를 주관한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고문의 싱크탱크 격인 연구단체다. 손 고문은 이날 토론회 기조 연설에서 "과감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 전력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과 같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해법으로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를 병행하는 방안을 주장하면서 "한반도가 통일될 때 한반도는 중립화되어야 한다"는 과거의 '중립화 통일방안'을 재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에는 국민의당 천정배, 정동영, 김동철, 이찬열, 손금주, 최경환 의원과 임내현, 전정희, 김유정 전 의원 등 국민의당 전현직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고, 민주당에서도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과 우원식 원내대표, 오제세, 강훈식, 김성수 의원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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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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