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항의한 값, 60년치 노동자 연봉

파업 도와줬다고 노동자에 20억 원 손배 판결..."상고할 것"

노동자가 회사의 불법에 항의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억 원은 있어야 하는 듯하다. 자그마치 20억 원이다. 노동자 평균 연봉(3387만 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60년 동안 모아야 하는 금액이다. 지난 8월 24일 부산고등법원은 4명의 노동자에게 20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내라고 판결했다. 2010년 현대차비정규직 지회 파업을 지원했다는 이유다.

이들은 이런 판결이 부당하다며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노동법률단체, 손잡고 등은 11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이들에게 재갈을 물린 반인권, 반헌법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프레시안(허환주)

파업 도와줬다고 노동자에 20억 원 손해배상 판결하는 법원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2005년) 최병승 씨 관련,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원심 파기환송을 선고했다. 파견직 노동자, 즉 비정규직에게 정규직 전환의 길이 열린 셈이다.

하지만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사측이 아니었다. 이후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 사측에 특별교섭(정규직화)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지회도 파업으로 맞섰다. 2010년 11월, 25일간 파업을 진행했다.

그러자 현대차 사측은 파업으로 손해가 막심하다며 374억 원의 손해배상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청구했다. 지회도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집단소송을 진행했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길 경우, 근무일수에 맞춰 그에 준하는 정규직 임금을 회사는 소급적용, 지급해야 한다. 그러자 사측은 이 소송을 취하하거나 지회를 탈퇴한 노동자에 한해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했다.

그 결과, 끝까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조합원, 그리고 파업에 연대한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 상급단체(민주노총, 금속노조) 간부와 조합원만 손해배상 대상자로 남게 됐다.

이번 판결로 20억 원의 손해배상액을 내게 된 노동자 4명이 여기에 속한다. 불법파견 대법원 확정판결 당사자인 최병승 씨, 당시 금속노조 단체교섭국장이었던 박점규 씨, 파업 당시 대체인력 저지 등 파업 지원활동을 한 정규직 현장간부 엄길정 씨, 비정규직 해고자 김형기 씨 등.

한마디로 이번 손해배상 청구 대상자는 현대차의 사내하청 활용이 파견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당사자, 그리고 상급단체 간부들, 비정규직 노동자를 도운 정규직 노조 간부들인 셈이다.

"노조활동의 재갈물리기"

비없세 등은 이를 두고 노조활동의 '재갈물리기'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판결을 통해 재벌대기업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에 재갈을 물렸다"며 "또한 법원은 손해배상의 대상을 노조 지도부가 아닌 일반 조합원과 연대자까지 확대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결국, 노동자에게 끝까지 고통을 주겠다는 현대차의 의지가 법원에 인용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노조 조직률 제고와 노동3권 보장을 말하고, 국제노동기구는 10여 차례에 걸쳐 업무방해죄에 대한 폐지나 개선을 요구했다"며 "하지만 재벌과 재판부는 여전히 노동3권을 압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파업에 업무방해를 적용, 처벌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며 "노동후진국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 이번 20억 손배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손해배상 소송 청구 당사자인 최병승 씨는 "불법 고용을 한 정몽구의 책임이 드러났지만 정작 파견법으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며 "반대로 이 법을 이행하라고 요구한 노동자에게 수십 억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됐다"고 지적했다.

최 씨는 "이번 판결로 4명의 노동자에게는 압류조치가 내려질 것"이라며 "20억이라는 거액은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는 규모이다. 상고를 통해 이런 문제를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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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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