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깊어지면 기회는 넓어진다

[현안진단] '전략적 인내' 반성하고 새로운 계기 모색해야

멈추지 않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2017년 8월 말과 9월 초, 한반도 정세는 다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이 일본 영공을 통과하는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을 발사한데 이어, 김정은이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한 바로 다음날 6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곧바로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음을 공개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의 아베 수상은 전화통화로 대응방안을 장시간 논의했으며, 중국은 북한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도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처에 합류했으며, 유엔 안보리에서는 의장성명을 채택함과 동시에 추가적인 대북제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 각국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은 물론 일본, 한국의 증시는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심지어 유럽조차도 이젠 북한 핵의 사정권에 들어왔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강력한 제재 예고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실질적으로 효과적인 대응방안을 찾지 못해 부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술핵의 재배치 문제 등을 포함해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폐기하고 핵개발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북 특사를 파견해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는 주장에 파묻혔다. 북한의 김정은은 이렇다 할 대책을 한 줄기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모습을 예상한 듯하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은 북한 핵 문제가 이제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갔음을 과시한 것이다. 1단계는 북한이 핵 개발을 시작해서 본격화하기 전까지의 단계(1950년대~1980년대, 김일성 정권), 2단계는 핵 개발을 놓고 국제사회와 협상하던 단계(1990년대~2000년대, 김정일 정권)라고 할 수 있다. 3단계는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한 단계(2010년대~, 김정은 정권)로서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은 이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2010년대 초반에 그 단계는 달라졌다. 운반수단, 정밀도, 소형화 등을 연이어 확보하면서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ICBM) 실전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김정은은 주변국들의 전략적 이해가 갈리면서 치명적 위험 부담이 없음을 확인하고 있으며,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군사도발을 지속할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 주민들은 풀뿌리만 먹더라도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다짐을 강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핵을 개발하여 보유한 정권이 스스로 포기한 사례는 없다. 북한은 조금만 더 버티면 핵 개발을 마무리하게 되며,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북핵 문제는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선택한 결과 북한에게 핵 개발을 마무리할 수 있는 10년의 시간을 내주었다.

이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이제 전략적 인내는 막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북한 핵과 관련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2단계에서는 핵 개발 중단에 주력했다면, 이제 3단계에서는 관리와 확산방지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현실적 요구로 되고 있다.

▲ 지난 4일 북한 관영매체 <노동신문>은 지난 3일 북한이 실행한 6차 핵실험(수소탄 시험)과 관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행 계획에 직접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예상되는 북한의 향후 행동

북한의 6차 핵실험에서 풍계리의 일부 갱도가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여 방사능 확산의 우려를 낳고 있다. 북한 핵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다. 열악한 환경에서 북한은 핵 개발에만 전념해 왔다.

어찌되었든 북한은 이제 핵탄두를 장착한 ICBM 실사격, EMP탄의 공중폭파 실험, 핵추진 잠수함을 이용한 SLBM 발사, 핵탄두 크기에 맞는 추가적인 핵실험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며, 핵무기의 실전 배치를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막바지 몰아치기를 하고 있다. 직접적인 군사적 행동이 아니더라도 북한의 핵 활동은 이제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김정은은 현재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역학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북한 내부의 각종 군중대회에서 "우리는(북한주민들) 지구를 떠받치고 있을테니 원수님은 지구를 돌리라"는 구호가 나오고 있다.

북한의 괌 타격 발언 이후 <블룸버그> 통신에서는 미국 증시가 4.4% 폭락했고, 일본은 2%대의 증시 하락이 수반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북한 핵 문제가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서방측에서 먼저 언급한 것이며, 북한은 이를 즐길 것이다. 그만큼 북한 김정은의 행동은 제동을 걸기 어려워졌고, 이에 상응할 만큼 지역 안전은 위태로워지고 있다. 북한 핵에 대한 국제 수준의 관리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강력한 제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은 대화를 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추가적으로 미국은 중국의 원유 수출을 중단시키기 위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보다 강력하게 적용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원유 공급 중단 카드다. 하지만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풀뿌리를 먹는 한이 있어도 북한은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고 했고 중국 역시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의 압력에 밀려 일단은 북한을 봉쇄하는데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의 내부 경제 동향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한다. 생활고에 직면한 해외주재원들은 목돈을 꿰어 찰 기회만 엿보고 있다. 제재와 압박이 강화됨에 따라 주민들의 경제활동이 더욱 무질서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 관련 기술이나 장비가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테러집단에 유출될 가능성은 높아지게 된다. 북한 당국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지킨다며 절대 핵 확산은 없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핵 확산방지를 위한 조치 또한 시급하다.

앞으로 북한은 핵 보유를 이용하여 대남 공세를 강화할 전망이다. 김정은은 정권출범 초기부터 '8000만 주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통일된 남북한의 유일한 정치지도자라는 점을 각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남한까지 고려해서 정치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는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를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채 전략 없이 감정에만 얽매여 움직이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남한은 그저 북한만 따라오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남북대화가 진전되지 않는 이유도 지금은 미국과 핵을 놓고 큰 담판을 하고 있어서 남한이 끼어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핵무기 보유에 따른 북한의 자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또 다른 생각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압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국제사회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온도차가 존재한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은 압박과 제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여전히 대화를 통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보내는 두 가지 사인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6.25 전쟁 당시를 회고해보자. 김일성이 남한을 적화통일 시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스탈린을 찾아갔다. 스탈린은 미국과 직접 대결이 예상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미국이 참전할 경우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군대를 한반도에 보낸다'는 확답을 받아오면 전쟁을 용인하겠다는 조건부 승인을 해주었다.

김일성은 곧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을 찾아가 중국의 참전 확답을 받았다. 중국 역시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김일성의 주장, 즉 미국은 애치슨라인을 일본열도로 미루었으니 참전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열악한 수준이기 때문에 속전속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추측과 달리 미국이 참전했고 맥아더 장군은 중국의 참전카드를 예상하지 못한 채 압록강까지 반격해 갔다.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었고 워싱턴도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막기 위해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으로 국한시킨다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휴전이 이뤄졌다. 미군들은 중국의 참전과 관련된 사항을 '실패한 전략'으로 학습해 오고 있다.

최근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전개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키자, 중국의 심양 군부는 중국군을 압록강 지역으로 전진배치 시키고 있다. 중국 공군의 비행 횟수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한국에서는 이에 대해 미국의 군사적 공격이나 압박 강화로 북한이 붕괴할 것을 대비한 중국의 움직임이라고 분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만일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취할 경우, 중국은 북한을 지원하는 중국군대를 한반도에 투입할 것임을 미국에 경고하는 것이다. 러시아 역시 북한과 중국을 간접적으로 지원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정확하게 읽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제재와 압박에 동참하지만 결국 북한을 지원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막무가내 행동이 가능하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국제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 중에 나왔던 "한반도는 원래 중국이었다"는 대화 내용을 트위터에 공개했던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중국은 연간 50만 톤 정도의 원유를 북한에 공급하기 위해 단둥-신의주 간 파이프라인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 원유공급 수준에 비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은 다른 정치적 이유, 즉 "한반도는 원래 중국이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 지난 5일(현지 시각) 중국 하문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안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기회는 위기의 정점에서 나온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은 동북아 정세를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새로운 질서를 활용하기 위한 계산에 분주하다. 변화는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다. 1994년 5월 미국 펜타곤은 영변 핵시설에 대해 외과수술식 타격을 검토한 적이 있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 군속들은 훈련을 명분으로 실제 한반도를 떠나 일본이나 괌으로 비밀리에 이동했다. 일촉즉발의 시간이었다.

그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면담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냄으로써 반전을 이뤘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 간에 제네바 핵합의가 이루어졌던 사례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배제되었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향후 북한은 핵 능력 고도화를 과시하기 위해 강도 높은 도발을 지속할 것이며, 위기는 극에 달할 것이다. 원유공급 중단카드마저 소진한 미국은 결국 군사적 옵션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공언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한반도에서는 절대 전쟁은 없다고 천명했지만, 문제는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외교안보적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 및 부속도서로 명시하고 있다. 헌법적으로는 북한 역시 우리의 영토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지역에서 다른 나라가 전쟁을 야기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대응책이 필요하다.

하나는 북한 핵 도발을 저지하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북한에 특사를 보내든지, 북한을 대화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묘안을 짜내야 한다. 어떻게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운전할 수 있는지를 놓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둘째는 안보와 경제를 분리시키지 말고 안보와 경제를 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이 강화된 시점에 미국은 한미 FTA 철회를 들고 나와 한국의 양보를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한미 간에는 미사일 탄두의 중량 확대와 최첨단 군사장비 구매 문제가 협의될 예정이다.

이제는 한미동맹에서 안보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는다. 안보 진영은 적극적으로 경제 진영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경제 진영은 안보 환경을 활용한 협상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부문의 적극적인 '콜라보레이션'이 필요하다.

당분간 위기 국면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오는 10월 18일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가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참석차 동아시아를 방문해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한반도 문제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위기 이후에 닥쳐올 반전을 우리가 만들어내야 한다. 북한 핵에 대응하여 한미 원자력 협정의 개정, 미사일 사거리 제한 철폐, 전시작전권 환수, 군의 전략 장비 고도화 등 우리가 가진 숙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우리의 운명을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다. 지금의 위기국면을 오히려, 평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부터 바꾸고 우리의 안보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희망은 언제나 절망의 끝자락에서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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