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박성진 구하기' 자유한국당과 공조하나?

"이념 공유한 국정" 강조하던 文대통령, 이제는 "생각의 다양성"?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인사 실패 사례가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파동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저서 <운명>에서 이기준 파동을 최대 인사 실패 사례로 꼽았다.

2005년 1월 4일 지명된 이기준 후보자는 판공비 문제, 사외이사 겸직 문제, 장남 병역기피 의혹, 자녀 국적 거짓말 등으로 지명 사흘 만에 사퇴했다. 이 일로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인사추천위원 전원이 사표를 썼고, 정찬용 인사수석, 박정규 민정수석은 옷을 벗었다.

당시 시민사회수석이던 문 대통령은 저서에서 "그분의 흠결을 검증과정에서 몰랐던 게 아니었다. 다 확인해 놓고도 부적격 사유라고 판단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하필 그 결정을 하는 인사추천회의에 내가 빠졌다.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참석했으면 반대했을 거란 점이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대선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시스템 인사'를 강조했다. 지난 3월 19일 민주당 경선후보 TV토론에서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인사 검증을 담당했던 민정수석 경험을 강조하며 "인사에 대해서 누가 추천했는지 실명제를 해서 인사 잘못됐다면 두고두고 책임지게 하는, 그리고 그 기록을 청와대에 남겨서 후세에 심판받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뒤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 같은 문 대통령의 인사 철학에 따라 인사추천위원회를 통한 '시스템 인사'를 자랑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새 정부 출범 뒤 100일이 채 지나지 못한 시점에 차관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 4명이 낙마했다. 김기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각종 이유로 자진사퇴했다. 인사 분야는 문재인 정부 100일 평가에서 부정률이 가장 높았다.

100일이 지난 뒤에도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1일 자진사퇴한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야당의 이념 공세보다 거액의 수익을 낸 '쪽집게 주식투자'가 문제가 됐다. 청와대는 "불법적인 부분은 없다"고 했지만, 새 정부에 기대하는 국민들 눈높이에는 한참 못 미친 결과다.

5명의 고위 공직자들이 낙마하는 동안 청와대 인사 시스템에 포함된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인사 실명제'가 무색하게 누가 천거했는지도 분명하게 밝혀진 적이 없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역대 정권을 통틀어 최고의 탕평인사'라고 자찬하기도 했다.

이유정 후보자에 이어 박성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가 여섯 번째 낙마자가 될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 기류는 '적극 방어'로 바뀌었다.

박 후보자의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이 제기되자 "(창조과학 신봉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했던 청와대는 이날 아침 현안점검회의 뒤 느닷없이 "생활 보수"라는 용어로 박 후보자를 엄호했다.

나아가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대 출신으로 자기 일에만 전념한 분들이 건국절을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국무위원들도 생각의 다양성이 필요한 것"이라고도 했다.

자기 일에 몰두한 공대 출신들은 기초적인 역사 상식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주장이거나, 유난히 역사 문제에 민감한 문 대통령이 직접 뉴라이트의 건국절 논란을 일축했음에도 이와 다른 역사관을 가진 장관이 내각에 들어와도 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2011년 <참여정부 정책총서>에서 '코드 인사' 비판을 반박하며 "대통령이 공약을 내세워 국민 지지를 받아 당선돼 국정을 수행하면, 국정철학이나 이념을 공유하는 이들로 진용을 짜 국정에 임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나"라고 밝혔던 인사 철학과도 배치된다.

박성진 후보자를 둘러싼 청와대의 혼선과 관련해 중기벤처부장관 직에 적합한 인물을 새로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와 함께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을 저울질 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1948년 건국절을 옹호하는 자유한국당이 박 후보자의 역사관 논란에 침묵하고 있어 국회 의석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는 여당과 제1야당의 공조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 이날 <조선일보>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본 罪(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후보자의 역사관을 두둔했다.

이대로면, 지난 9년 동안 비타협적인 갈등을 겪어온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성진 구하기'를 위해 문재인 정부와 자유한국당이 손을 맞잡는 기묘한 공조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의 인사 파동을 반면교사 삼았던 문재인 정부조차 '시스템' 인사와 거리가 멀어졌다는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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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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