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님, '게임 체인저'가 되어주십시오

[정욱식 칼럼] 문재인 대통령에게 드리는 편지

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화네트워크라고 하는 조그마한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대통령께서 휴가 중인 걸 알면서도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점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님의 휴가 이후 첫 일정은 아마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대통령께서도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고민이 많으실 줄 압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토론을 해주셨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을 붉히더라도 지금 절박한 것은 토론을 통해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대북정책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두 정상께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며 다른 정책을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무력시위, 대북 제재 강화,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고 비핵화 의사를 밝혀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조건부 대화론'은 두 정상이 실패를 선언한 '전략적 인내'의 정책 도구들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실패한 정책의 되풀이는 북한의 폭주를 막는 데에 역부족이라는 점도 입증되었습니다. 최근 북한의 두 차례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방향은 '끝장 제재'로 가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난을 가중시켜 굴복을 유보해보겠다는 취지로 말입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쉽게 동의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셔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북한이 추가 제재에 6차 핵실험이나 ICBM 시험 발사로 응수하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가능한 많은 문답과 토론을 통해 제재 강화가 결코 문제 해결의 좋은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전화를 끊어버릴 수도 있고,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대안이 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후자가 되면 좋겠지만, 전자가 되어도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인 한미관계의 긴장은 조성될 수 있지만, 한국이 추가적인 제재보다는 다른 경로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발신하면 미국 정부로서도 다른 대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지난 7월 29일 북한의 화성 -14형 발사 이후 NSC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2003년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른바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맞춤형 봉쇄'를 추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제재냐, 대화냐'는 갈림길에서 부시 행정부도 6자회담을 선택한 바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대통령께서 추가 제재를 '반대'하기는 어려우실 것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 양국이 제재 부과를 '유보'하고 조건 없이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대화를 북한에 제의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북한이 대화 제의를 거부하면 그때 가서 추가 제재를 추진해도 늦지 않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도 더 이상 반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강력한 제재의 실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흔히 북한의 ICBM을 '게임 체인저'라고들 합니다. 동의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신뢰를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핵우산이 적대국의 ICBM으로 인해 흔들린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진정한 '게임 체인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님께 드리고 싶은 두 번째 말씀도 바로 이것입니다. '북핵'은 정전체제라는 비정상적인 토양에서 자라난 독버섯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는 곧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라는 정상적인 토양으로 바꿔낼 때, 북핵 해결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평화체제가 가능하다는 지금까지의 게임의 법칙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비핵화'라는 새로운 게임으로 바꿔야 할 시점입니다.

내년으로 정전협정이 65주년이 됩니다. 아마도 이때 즈음에 '코리아 엔드 게임'도 막판으로 치닫지 않을까 합니다. 당연히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해피 엔딩'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님의 담대하고도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내년을 평화협정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다짐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설득하셔야 합니다. 내년 적절한 시점에 남북미중 4자 정상이 만나 한반도 비핵화 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식을 갖는 것을 목표로 긴밀한 한미 공조를 하자고 말입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들은 큰 틀에서 용단을 내리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께서 '지구상에 김정은 위원장의 셈법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 밖에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욕구를 북돋는 것입니다.

흔히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들 합니다. 한미 양국도 "모든 수단"을 동원키로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제재와 무력시위와 같은 한정된 옵션만 사용되어왔습니다. 하여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도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 개시와 북미, 혹은 4자 정상회담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협상을 통한 최대의 압박'에 나서야 합니다.

끝으로 사드 문제 관련해서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의 지시대로 발사대 4기를 성주 롯데 골프장으로 배치하려고 할 경우에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주민과 경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시민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한번 쯤 눈을 감고 생각해보시기를 정중하고도 간곡한 심정으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께서 사드 배치 철회를 전제로 미국에 새로운 제안을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내키지 않지만, 한국이 패트리엇-MSE를 미국으로부터 구매해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겠다는 제안이 이에 해당됩니다. 패트리엇-MSE는 현존 패트리엇보다 2배 가량 사거리가 길고 속도가 빠릅니다. 무기 수출 증대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챙기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해관계와도 부합할 수 있는 접근법이 아닐까 합니다.

미국이 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해도 한국만큼 한반도 문제에 밝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동의와 참여 없이 북핵 해결 진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한국의 밝은 눈과 미국의 역량이 결합할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모쪼록 대통령께서 밝은 눈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 국민을 믿고 말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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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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