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었다. 작년 7월 13일에 사드 부지로 마을 주산인 성산 포대가 발표되었지만, 군민들이 똘똘 뭉쳐 이를 막아냈다. 그러자 국방부는 9월 30일에 김천에 가까운 성주 롯데 골프장으로 부지를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성주 군민들은 촛불을 내려놓지 않았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드는 안 된다"며 김천 시민 및 원불교 신도들과 연대의 촛불을 계속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지역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것이 가당치 않은 까닭이다.
안타깝고도 마음에 무거워지는 까닭은 성주→김천→소성리로 번져온 촛불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촛불 시민혁명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 자체는 기정사실화하면서 절차적 문제에만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약속했던 "국민적인 공론화"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담지 못했고, "국회 비준 동의"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기실 사드 문제는 수많은 토론 거리를 던져준다. 사드가 과연 휴전선을 맞대고 있고 종심이 짧은 한반도의 지리적 법칙을 극복할 수 있을까? 날씨가 좋지 않거나 북한이 기만탄을 쓰면 사드의 요격율이 떨어진다는데 이게 사실인가?
거꾸로 사드가 방어적 실효성이 있다면 어떤 결과를 잉태하게 될까? 사드가 방어적 실효성이 있다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반대로 "최대의 압박"이 실패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계속 고도화된다면, "실효성이 있다"는 사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옵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사드 배치가 기어코 완료되고 가동되면, 중국의 사드 보복은 어떻게 될까? 중국의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보복을 넘어 군사적 대응까지 가세하면 한중관계와 한국의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드가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 및 한미일 삼각 동맹 추진과 과연 무관한 것일까?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에 맞서 전략적 결속을 강화하겠다는데 이게 과연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일까? 사드를 둘러싼 한미일 대 중러의 갈등이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인가?
사실 이러한 의문들은 우리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한미 간에도 심도 깊게 논의되었어야 할 사안들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과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미국 측 주장에 너무 쉽게 "동의한다"고 말해버렸다. 이렇게 되다보니 사드를 재검토하거나 철회하자고 미국에 제안하기가 힘들어지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가 주한미군 보호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은 결코 사드와 같은 방어용 무기에 있지 않다. '절대 안보를 향한 욕망이 절대 불안을 야기한다'는 사드를 비롯한 MD의 역설은 결코 주한미군을 비껴가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세계 최강의 공격력을 갖춘 미국이 방어용 무기까지 증강하면 그 상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문제를 놓고 미국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정부 내에선 사드를 '기회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는 최소화하고 '한반도 문제 해결에 한국이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이러한 기류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드 배치는 결코 기회비용이 될 수 없다. 기회비용 자체가 너무나 클 뿐만 아니라 사드가 한국이 잡았다는 운전대를 마구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들과 격의 없는 토론을 선보이면서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해주고 있다. 그래서 거듭 호소하고 싶다. 사드도 토론 주제로 삼고, 미국을 토론 상대로 삼는 것도 꺼려하지 않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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