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ICBM은 '게임 체인저'인가?

[정욱식 칼럼] 유일한 대안은 결국 북한과 대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4일 오후 '특별중대보도'의 내용에 따르면, "새로 연구개발한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으며, 비행시간은 39분, 정점고도는 2802km, 비행거리는 933km라는 것이다.

ICBM은 사거리 5500km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일컫는다. 또한 최대 사거리는 최고 정점고도의 3배 가량에 달한다는 점에서 화성-14형 미사일의 사거리는 8000km가 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장대로라면, 북한이 IC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해진다.

북한이 화성-14형을 실전 배치하면, 미국의 알래스카와 태평양 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도 이 미사일의 사거리 안에 들어오게 된다. 다만, 북한으로부터 9500km 가량 떨어진 미국 본토 서부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이 한미 양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ICBM 시험발사를 전격적으로 강행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더더욱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됐다. 당장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응이 나올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ICBM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하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트럼프로서는 자존심이 구겨진 셈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해온 북한이 ICBM 보유 문턱까지 도달한 것은 분명 우려스럽고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이를 '게임 체인저'로 간주하면서 과잉 대응에 나서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될 수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북한의 ICBM을 '게임 체인저'로 간주해왔다. 북한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 위협을 가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는 한반도 공산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불신과 연관되어 있다. 즉, '미국이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나 샌프란시스코의 희생을 감수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하거나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게 제기되어왔다.

▲ 북한이 3일 대륙간 탄도 미사일 화성 14형을 시험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하지만 북한의 ICBM은 그 자체로는 결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다. 'ICBM-전략폭격기-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구성된 미국의 핵 삼중체계는 북한의 능력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신뢰'가 생명인 미국의 핵우산 정책이 북한의 ICBM으로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도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ICBM을 비롯한 "핵 억제력"의 목적은 생존에 있다. 그런데 한미동맹은 북한이 생존을 위해 만든 핵미사일을 쏘는 순간 북한을 끝장낼 수 있는 충분한 군사적 힘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가 분명 우려스러운 상황이지만, 한미동맹의 대북 억제력에 큰 손실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이러한 군사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하루빨리 동결시켜야 할 시급성을 거듭 일깨워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동되고 있는 영변 핵시설을 방치할 경우 북한은 다양한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 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갖게 된다. ICBM 전력화하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추가적인 시험발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북한이 실전 배치에 이르기 전에 미사일 활동을 중단시켜야 할 사유도 분명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취해온 방식은 대화와 협상에 조건을 내걸고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ICBM 시험발사는 이러한 정책의 실효성에 또다시 근본적인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유일한 대안은 한미 양국이 북한과 조속하고도 조건 없는 대화와 협상에 나서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건 결코 유화정책이 아니다. 대화와 협상이야말로 김정은의 전략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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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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