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치 치아 웨이. 쉰아홉 살이 된 오늘까지 동성의 동반자와 결혼할 권리를 위해 30년 동안 싸워 왔다. 1986년 대만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던 때부터다. 마치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처럼 혼자 싸웠는데, 대만의 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경부터였다. 스물여덟 살 청년이었던 그가 쉰아홉 살이 된 올해, 마침내 대만의 헌법재판소는 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지난 5월 24일의 일이다. 대만 헌재는 동성 간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만의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연대 단체 회장 웨인 린이 "역사적 전기"라면서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치 치아 웨이는 일찍이 동반자와의 결혼 기록을 당국에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은 뒤, 행정법원과 행정고등법원에 제소했으나 역시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2015년에 헌재에 제소하여 2년 뒤인 지난 5월 마침내 승소하게 되었다. 대만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을 통해 2년 안에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하도록 대만 의회에 민법 수정을 요구했는데, 만약 2년 안에 수정하지 않을 경우 법원 스스로 동성 결혼을 유효로 하는 기록 등재를 담당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분위기는 점점 유리해지고 있었다. 재판관들도 시대 분위기에 민감했으며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게 되었다. 헌재 재판관들은 결정문에서 이 부당성에 관해 특히 강조했다."
치 치아 웨이의 변호사의 말이다. 대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법은 개인의 결혼권과 평등권을 옹호해야 한다"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그럼에도 치 치아 웨이의 일생에 걸친 싸움이 대만의 시민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앞당겼으며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애자 결혼권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 독일 의회 : 동성 결혼권 40분 만에 의결
유럽에서 동성 결혼권을 처음 합법화한 나라는 2001년의 네덜란드였다. 미국에서는 2015년에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동성 결혼권이 인정되었고 독일은 지난 6월 30일 유럽 연합 중에서 동성 결혼권을 합법화한 12번째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독일 의회에서 동성 결혼권 법안이 의결되는 과정은 4년 전 프랑스 의회에서 벌어졌던 상황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찬반양론으로 갈려 100여 일 동안 소란스러웠던 프랑스 의회와 달리 단 40분 만에 판결이 난 것이다. 이 차이는 지난 4년 동안 동성 결혼에 대한 유럽 시민사회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2013년 1월 초, 프랑스 의회에서 동성 결혼 법안 의결을 한 달 앞두고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프랑스인들은 동성 결혼권에는 60퍼센트 찬성, 입양권에 46퍼센트만이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2016년 독일의 '차별 반대 연방국'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독일인들은 83퍼센트 동성 결혼권에 찬성하고 동성 커플의 입양권에도 75퍼센트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독일에서는 의회에 안건이 상정되었을 때 결과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안건은 찬성 393표, 반대 226표로 통과되었다.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이 찬성표를 던졌고, 보수연합인 기민당-기사당은 자유 표결에 따라 304명 중 75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르몽드> 기자는 독일과 프랑스의 이 차이를 4년 시차로 보기보다는 독일의 보수 정치 세력이 프랑스의 보수 정치 세력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설명했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 법안을 주도했던 것에 반해, 독일에서는 보수적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주도했다는 점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독일 헌법의 구문을 들어 반대표를 던졌는데, 법안을 상정하는 데에는 앞장서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는 올해 9월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여 네 번째 총리 연임을 바라는 메르켈 총리가 여론에서 자신의 기민당이 열세로 밀려 있는 동성 결혼권 현안을 본격 선거전에 앞서 마무리 지으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독일은 종교세를 걷는 나라다. 한국에서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종교(소득)세와는 전혀 다르다. 독일의 신앙인들은 소득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낸다. 목회자들은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고 신도들에게서는 십일조 등을 걷지 않는다. 이렇게 종교세를 걷는 독일과 동성 결혼권을 가진 독일, 이 조합이 동성 결혼권을 극구 반대하는 한국의 일부 개신교도에게는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3. 아이를 가질 권리와 대리모
프랑스 파카르디 지방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장노엘과 야니크는 동성(남성) 결혼 관계이다. 아이를 양육할 권리는 갖고 있는 이 남성 커플은 실제로 아이를 무척 갖고 싶었다. 그들은 입양보다는 다른 방법을 택해 캐나다로 갔고 두 아이를 가졌다.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장노엘의 정자로, 다른 아이는 야니크의 정자로 수태된 아이들이다. 난자는 같은 여성의 것이었다. 남성 커플은 아이의 생물학적 아빠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기로 했다. 두 아이의 출생증명서에는 야니크와 장노엘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나는 두 아이를 갖게 된 행운아다. 왜 한 아이만 내 아이로 인정하겠는가."
장노엘의 말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당신의 아이가 되는 것은 생물학적 연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 아이에게 주는 사랑과 가치에 의해서다."
그는 사랑과 가치를 강조한다. 동성애자들이 동거권에 머물지 않고 결혼권을 획득하여 입양권을 갖기까지 '아버지-어머니-자식'의 가족 구성을 통해서만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다는 사회 통념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했다. 학자들의 결론은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 커플, 동성 커플, 한부모 등 가족 구성이 아니라 사랑과 가치를 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장노엘과 야니크가 캐나다로 가야 했던 것은 프랑스에서는 대리모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대리모로 태어난 아이가 프랑스로 입국할 때 이민자로 취급되기도 하고 행정 당국에 따라 다른 처분을 받기도 한다. 야니크와 장노엘의 두 아이에겐 프랑스의 출생증명서가 없다. 신분증명서와 여권은 갖고 있다. 다른 남성 커플인 35살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인 쥘리앙과 마룬은 이 문제 때문에 아예 미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더 좋은 조건에서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대리모 제도가 불법인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사물화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흐름이 강한 나라들에서는 대리모를 유모 서비스와 같은 형식으로 보고 대가나 보상을 전제로 쌍방 간에 자유롭게 계약한 경우 합법으로 인정한다. 영국, 캐나다, 미국의 몇 개 주와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그리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결국 프랑스의 최고법원은 지난 7월 5일 외국에서 대리모로 태어난 아이(1년에 500~1000명으로 추산됨)의 부권을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생물학적인 부의 동반자가 그 아이를 입양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4. 난자를 냉동 보관할 권리를 달라
프랑스 여성 커플은 남성 커플보다는 상대적으로 아이를 갖는 데에 어려움이 적은 편이다. 대리모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정자를 제공받아야 하는데, 이 또한 프랑스에서는 불법이어서 지금까지는 주로 벨기에, 영국, 스페인 등 외국에서 인공 수정을 받아야 했다. 프랑스 의료 보험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고, 지난 6월 27일 프랑스 국가윤리자문위원회는 레즈비언 커플과 독신 여성에게 프랑스에서 (정자를 공급받는 등) '의료 지원 출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적정 나이를 넘기면 아이를 갖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학업과 직장 때문에 서른 살 넘겨 첫 출산을 시도하게 되고, 아이를 갖고 싶어도 때를 놓친 경우가 많다. 이에 대비하여 미리 젊은 시절의 난자를 냉동보관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르몽드> 토론면에 나오는 배경이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동성 커플의 결혼권은 물론 아이를 양육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모색, 실천과 제도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인도인을 아버지로, 아일랜드인을 어머니로 둔 레오 바라드카, 동성애자이면서 38세인 그가 아일랜드 수상에 오르는 시대에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에서 어느 층위에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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