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美 본토 위협 시간문제 …'쌍중단' 준비해야"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한과 대화채널 복원해야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새벽,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미사일이 ICBM으로 완전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북한과 대화를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시험대에 오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시험 발사를 두고 미국과 직접 협상을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대미용인 ICBM을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이라는 날짜를 택해 시험 발사한 것은 미국 사람들을 세게 자극한 것"이라며 "북한은 과거 미국을 세게 자극했을 때 오히려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왔던 성공의 추억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 전 장관은 미국이 '북한 핵‧미사일 실험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축소'라는 핵 문제 해결 입구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이번에 시험 발사한 ICBM은 정상 각도로 발사할 경우 사거리 5500km를 넘게 된다. 이렇게 되면 6000, 7000km로 사거리가 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수준까지 가지 않기 위해 미국은 중국이 주장하는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미국 외교협회(CFR)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면서 초기 단계에서 북한의 핵 능력 동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고,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 역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의 모두 발언에서 북한 핵 동결을 이야기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이 그동안 정책 방향을 틀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면서 "'코리아 패싱'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변화 가능성에 준비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정 전 장관은 한반도 안보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판문점 채널 복원 등 남북 간 대화 통로를 여는 노력은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핵 문제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는 한편 남북관계가 반 발짝 앞서가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소위 말하는 '디딤돌'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가려면 판문점 채널 복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이 없는 상황에서는 우회하는 방식으로라도 북핵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며 "북한이 미사일 발사하는데 무슨 판문점 채널 복원이냐며 비난 여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남북관계 돌파구를 여는 것도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닷새 만에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북한의 응답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정세현 : 북한 나름의 응답입니다. 북한은 아마 "도발을 하면 제재하지만 대화의 문은 열려있어? 기존 유엔 제재를 더 강화해? 그래 어디 해봐"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륙간 탄도 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한 겁니다. 이건 미국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시험 발사를 공개한 날짜가 하필이면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새벽입니다.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최대한 자극해보겠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북한은 과거 자극을 세게 하니까 미국이 오히려 협상장에 적극적으로 나오더라 하는 이른바 '성공의 추억'이 있습니다. 어설프게 도발하면 미국이 "그래 너희들(북한) 그렇게 해봐, 어디까지 하나 보자" 이렇게 나오지만 세게 도발하면 협상장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북한식 '벼랑 끝 전술'이라고 볼 수 있죠.

미국 재무부가 지난 6월 29일(현지 시각) 중국 단둥은행을 제재하면서 북한 정권의 자금줄에 대한 강한 압박을 펼친 것도 주요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지난 2005년 미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제재했을 때 북한은 핵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 북한은 핵이 있다고 간주되고 있고 미사일도 고도화됐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상대로 ICBM 발사라는 전술적 선택을 한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미국과 한국 모두 정책적 공백기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 공백기를 북한이 절묘하게 낚아챈 것인데요.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은 대북정책을 다룰 책임자도 인선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트럼프가 험악한 단어만 쏟아냈지, 실제 일을 해야 할 실무자들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지금 드러난 상태로 보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는데 그동안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걸 보여준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지금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선언할 수 있는 시간을 준 정부는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북한 핵 능력이 커졌다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실제로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는 2008년 이후였습니다. 즉 오바마-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6자회담이 중단됐던 시기에 북한은 핵 능력을 키운 겁니다.

그동안 한미 정부는 북한이 군사적인 도발을 하면 더 강력한 제재를 할 것이라고 반복했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실제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간판을 걸고 실제로는 북핵 능력의 고도화 내지는 북핵 능력의 강화를 중국을 압박하는데 역이용했죠. 이를 통해 한국이라는 무기시장을 유지하고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패권도 유지했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의 주장대로 ICBM 시험 발사에 성공한 것이라면 여기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핵 탄두를 소형화‧경량화하겠다면서 추가적인 핵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일단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 소집해서 더 강한 결의안을 만들지 않을까요?

정세현 : 당연한 수순 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밀어 붙이느냐에 달려있는데 중국이 이걸 받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안보리 결의와 함께 사드 배치가 당연한 수순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한미일 3각 동맹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상황입니다.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이 첨예해지는 신(新) 냉전시대가 다시 도래하게 되는 것이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고착화하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결국 한미일 3각 동맹을 위한 기반 조성 아닙니까? 북한의 ICBM 시험 발사가 협정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증대시켜주는 결과를 만든 셈이죠.

다만 미국이 다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이야기했던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을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책으로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이번에 시험 발사한 ICBM은 정상 각도로 발사할 경우 사거리 5500km를 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6000, 7000km로 사거리가 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미국은 본토에 위협이 되는 수준까지 가지 않기 위해 쌍중단 해법을 생각할 겁니다.

실제 지난해 9월 미국 외교협회(CFR)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면서 초기 단계에서 북한의 핵 능력 동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 역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의 모두 발언에서 북한 핵 동결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이 그동안은 쌍중단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책을 급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런 가능성에 맞춰서 우리도 편승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 4일 시험 발사되는 화성 14형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래도 북한과 대화 채널은 열어야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15일 6.15남북정상선언 17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ICBM 시험 발사라는 대형 도발을 감행했는데요. 대북 정책에 변화가 올까요?

정세현 : 지금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판문점 채널 정도는 열어 놓아야 합니다. 또 조명균 신임 통일부 장관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이러한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남북 간 채널은 고정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물론 북핵 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북핵 문제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남북관계가 반 발짝 앞서가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디딤돌을 놓겠다는 자세로 나가기 위해 물밑접촉이라든지 판문점 채널 복원이라든지 이런 조치는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가 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이 없는 상황에서는 우회하는 방식으로라도 북핵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하는데 무슨 판문점 채널 복원이냐며 비난 여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남북관계 돌파구를 여는 것도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작업입니다.

물론 남북 간에 판문점 채널을 연다고 해서 이게 북핵 문제 해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채널을 열고 이산가족 상봉 등을 진행하면 인도적 교류가 일어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좀 더 공식적인 회담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이 인도적 지원이나 스포츠 등의 교류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당장 장웅 북한 IOC 위원은 체육으로 남북관계를 푼다는 것은 '천진난만'한 생각이라며, 평창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정세현 : 사실 장웅 위원의 언급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지난 1984년 LA 올림픽이 열리기 전 남북은 단일팀 구성을 위한 협의를 가졌습니다. 세 번의 회담을 했지만 결국 단일팀 구성에는 실패했습니다.

당시 대통령과 대한체육회장 등은 단일팀을 만들려고 했지만 선수들이 반대했습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대표로 나가려고 얼마나 땀을 흘렸겠습니까? 이들은 그런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2007년 10.4 정상회담 때도 대한체육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 이야기를 꺼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실무자들이 안된다고 한다면서 단칼에 잘랐습니다. 이런 과거 사례를 좀 알고 대통령에게 정책적 건의를 해야 하는데 지금 문 대통령 참모들이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공부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풀어보려는 아이디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일팀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어땠는지 제대로 연구해서 실행 가능성을 따져봤어야 합니다. 그런 것 없이 대통령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직접 만나면서 의지를 표명하고, 이후 북한에 사실상 공개적으로 거절당하는 망신을 당한 겁니다.

지금 청와대 안보실에는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외교안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외교관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비서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참모진 중에 남북관계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국이 주도권 잡았지만…

프레시안 : 북한이 이렇게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부터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받았다는 부분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습니다.

정세현 :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국제정치에서 우리가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위상을 확립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의 개선을 어떻게 연결 짓느냐는 문제로 한미 양국의 입장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이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우리가 반대했던 때도 있었고, 우리가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면 미국이 견제하던 시절도 있었죠.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현지 시각)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러한 시대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북한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누가 보더라도 문재인 대통령과 대북관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러한 간극을 완화시켰습니다. 게다가 남북관계를 중심 축으로 놓고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평소 문 대통령의 주장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보증받은 측면도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경우로 보면 남북관계가 반 발짝 앞서가면서 북한을 설득하고, 이걸 가지고 다시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서 북미 간에 접점을 만들어주는 것을 미국이 용인해준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한미 FTA 문제와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거론됐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을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한미 FTA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사항입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군대가 외국에 가서 그 나라를 지켜주는데 왜 미국이 돈을 더 내야 하느냐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들은 충분히 예견됐던 사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따라서 이걸 두고 미국에 약속 어음 써주고 온 것 아니냐고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는 문제입니다.

프레시안 : 한미 관계가 큰 파탄이 나지 않고 무난하게 회담이 마무리됐다는 점에서는 성과라고 볼 수 있지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말했던 북핵 동결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축소에 대해서 문 대통령이 대놓고 불가능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한 점은 우리의 운신폭을 스스로 좁힌 것 아닌가요? 비핵화와 평화협정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구요.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사실은 미국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고 우리가 '주도적'이라는 단어만 얻어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세현 :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그동안 한국이 처해있던 상황을 고려해보면 문 대통령이 미국 정상과 첫 만남에서 핵 동결, 평화협정 등의 이야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세계적으로 중국의 경제적인 부상과 군사적인 지위가 올라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진행됐던 흐름을 볼 때, 그동안 동맹에 너무 의존했던 한국 입장에서는 어떤 사안이든 미국에 허락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이건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더 이상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즉 자주국방을 이루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미국에 완전히 할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남북대화를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북한의 태도 변화가 필요한데 그동안 압박으로만 일관하다가 그게 안되니까 대화로 풀어봐야 한다는 방향만 설정하고 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획기적인 전환 조치에 합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구체적 실마리가 잡힐 수 있을 거냐는 의문이 있었는데요. 일부에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이어 이번이 북핵 해결을 위한 세 번째 시도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와는 달리 북핵이 상당히 고도화됐기 때문에 그 때의 해법이 지금도 통할지는 의문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1994년 때 북한의 몸값과 2005년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2005년 이후 북한은 5번의 핵 실험을 감행했고 지금 ICBM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 지원으로 비핵화를 이루려고 해도 액수가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비핵화의 진전을 봐가면서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거는 식으로는 북핵 문제 해결의 입구로도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결국 북핵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규모 축소 또는 중단이라는 입구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북한의 핵을 검증해가면서 비핵화가 상당한 정도로 진전되면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고, 최종적으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맞바꾸면서 핵을 없애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우리가 먼저 했다가 미국이 받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또 국민 여론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북핵 문제가 우리로서는 참 다급한 문제인데, 문제를 푸는 열쇠는 미국이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협조가 없으면 한 발짝도 나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미국보다 앞서 나가면 국민들이 불안해하죠. 그 틈새를 북한이 파고 들고 이러한 행동을 벌이는 측면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은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한 방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북한은 이번 ICBM 시험 발사처럼 계속 도발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은데요.

정세현 : 남북관계를 개선하면서 북한이 사고를 덜 치도록 유도하고, 북미 간에 접점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남한이 이런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너무 지난 상황에서 한국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처럼 선뜻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 북한의 몸값이 너무 높아졌거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북 정상회담 전에 북한에 특사를 보냈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특사를 보낸 뒤에 그 결과를 들고 북한에 가서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북한의 이같은 행태를 방지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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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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