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공안통치의 마지막 그림자, 이진영 구속 사건

[막걸리법이 살아있다③] 그 코미디가 나는 너무 무서웠다

(☞ ②편에 이어서)

"이진영 동지의 생각은 남한을 혁명화해서 북한에 바치자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검사는 혁명을 말하는 것이 이적 행위라고 하더라고요. 남한의 계급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째서 북한 사회로 가자는 얘기와 등식화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을 운영하며 이적표현물을 반포‧소지‧판매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진영 씨. 그의 재판을 지켜본 지인 A 씨는 "무섭다"고 했다.

"다른 방청객들은 검사가 '가소롭다', '코미디다'라고 하던데, 저는 무서웠어요. 검사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일 텐데 미쳤다고 코미디를 하겠어요. 검사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거고, 그런 생각이 이 사회에 아직도 통용된다면 너무 섬뜩한 일이겠죠.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에요."

검사는 집요할 정도로 이 씨에 대해 '사상 검증'을 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며 인격권 침해라는 변호인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검사가 재판 내내 강조한 것은 '남북이 분단돼있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검사가 '이적표현물'로 규정한 도서들. ⓒ노동자의 책 국가보안법 탄압저지 공동행동

"北, 한국 공짜로 가져가라고 해도 안 먹습니다"

재판 첫날인 지난 19일, 검사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한 것은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이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북한은 적화통일을 기본 목표로 삼아 남한 사회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오히려 최근 그러한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등 대량살상무기체계를 갖추려 노력하는 한편, 지난해 9월에는 제5차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최근까지도 유‧무형의 군사적, 비군사적 도발을 지속해오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또한 북한이 인터넷을 남한 내 동조세력 확산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북한은 '인터넷은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된 특별 공간이고 인터넷 게시판은 항일유격대가 다루던 총과 같은 무기'라고 선동하면서 국가 차원에서 '구국전선', '우리민족끼리' 등 대내외 사이트를 개설해 인터넷을 통한 국내의 동조세력 확산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살펴볼 때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적표현물을 반포‧판매한 피고인의 행위는 명백한 위험이며 이적 행위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64년이 지났고, 북한의 상태도 많이 변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탈북해 현재 <동아일보>에서 활동하는 주성하 기자의 말을 근거로 들었다.

"북한이 남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북쪽의) 2400만 명도 겨우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남쪽의) 5000만 명을 어떻게 다스리나요? 정은이한테 한국을 공짜로 가져가라고 해도 절대 안 먹습니다."

"북한의 군사력에 대해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으로 우리 군은 (북한군에 대해) 뻥튀기를 많이 해서 화가 납니다. 핵무기를 떨어뜨려서 조국 통일한다? 핵을 한국에 떨어뜨리면 북한은 살 수 있겠습니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목적이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주장도 반박했다. 현 시점에서 북한의 핵무기는 남한 선제 공격용이 아니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자위적 성격이라는 견해가 다수를 이룬다는 지적이다.

"핵은 분명히 남한을 겨냥한 겁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에서 '우리가 죽게 되면 남한부터 죽이고 죽겠다'고 협박할 최후 카드입니다. 이게 북핵의 실상입니다."(홍순영 전 통일부 장관)

변호인은 "검사와 공안기관의 우국충정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과도한 우국충정으로 시대적 변화에 따른 북한의 현실과 성격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노동자의 책' 사이트 화면 갈무리.

명백하게 위험하다더니 수사는 미적미적

변호인들은 나아가 '국가보안법 폐기'를 주장했다. 재판정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에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띄우고 국가보안법의 역사, 모순점 등을 차례로 설명했다.

국가보안법은 지난 1948년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근간으로 제정됐다. 형법이 제정되기도 전의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인 제정 당시에도 이미 많은 이들이 국가보안법 제정을 반대했다. 공산당 세력뿐 아니라 일반 국민과 애국지사까지 탄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속담에 고양이가 쥐를 못 잡고 씨암탉을 잡는다는 격으로 이 법률을 발표하고 나면 안 걸릴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 놈 시대와 같이 잡아다 물 먹이고 이놈 자식이 그랬지 하면 예예 그랬습니다. 이래서 거기 다 걸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치적 행동하는 사람은 다 걸려 들어갈 수 있는 이런 위험도 있으니까 우리가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약을 꼭 써야 하면 분량을 맞추어서 써야 하는데 이 법안은 분량이 맞지 않습니다."(조헌영 의원)

"우리는 공산당을 탄압하고자 만들자고 했지 막연히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가지고 3천만 민중이 무고한 백성들이 걸리는 이 법을 만들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손만대에 죄를 우리 자신이 짓고 말 것입니다."(조국현 의원)


"사상은 법으로 막을 수 없고 사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변호인은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의 반대 의견은 70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하다"며 "여전히 국가보안법에 대한 인권침해와 불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군사 독재정권 시대는 끝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이 사건에서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남용되고 있습니다. 사상과 양심은 열린 광장에서 토론되어야지, 법정에서 심판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다시금 이 사건을 마주하면서 '개인의 양심과 사상'을 심판대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변호인은 7차 개정에 따라 국가보안법 1조 2항에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이 신설된 점을 강조했다.

"행위자의 행위가 단순히 북한의 주의·주장을 반복·답습하여 북한을 이롭게 하는가가 아니라 그 행위가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는가가 심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책 사이트가 개설된 때는 지난 2002년이다. 15년간 운영돼왔고, 지금도 누구나 사이트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다. 변호인은 "검사의 주장대로라면, 한국 사회는 이미 노동자의 책으로 인해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는 사람들,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수사기관은 이미 2014년 노동자의 책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씨의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2년이 지난 지난해 7월이었다. 이처럼 뒤늦게서야 압수수색을 한 것은 수사기관 스스로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변호인 측의 주장이다.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들. ⓒ노동자의 책 국가보안법 탄압저지 공동행동

"노동자의 책 사건, 한국 지성사 한 페이지 장식할 것"

마지막 재판이 열린 지난 22일,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문과 교수가 변호인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지성사를 전공한 천 교수는 노동자의 책 회원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증인으로 재판정에 서게 된 것도 본인 판단이었다고 했다. 그는 지성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검열과 국가보안법에 대해 평소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노동자의 책에 대해 "과거 지성사, 민중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절판된 과거 책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반가운 곳"이라며 "한국은 아카이빙이 약해 해방 이후부터 어떤 책이 나왔는지 잘 알 수 없는데 한 개인의 노력으로 그런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었던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열과 국가보안법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대한제국 때부터 체제 강화를 위해 검열이 존재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때도 금서 목록이 존재했고 국가보안법 사건을 만들어왔습니다. 이런 검열의 문제는 항상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고 처벌의 방식으로만 작동합니다. 한국은 민주화를 거치면서 지성사에 다양한 일들이 축적됐는데, 이 사건도 나중에 우리 지성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가보안법을 유지해야 하나, 폐기해야 하나. 그리고 학술‧문화적 측면에서 검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노동자의 책 사건 재판장은 피고인 이 씨에 대한 처벌 여부를 가리는 심판정이었고, 나아가 이 사회의 여러 첨예한 이슈에 대한 대립된 의견이 오고 간 논쟁의 장이었다.

▲이진영 대표. ⓒ노동자의 책 국가보안법 탄압저지 공동행동

"제 혁명 주장으로 건물이 폭파됐나요, 사람이 죽었나요?"

"우리나라에서 북한의 김일성 부자는 나치와 마찬가지입니다. 독일과 미국에서는 나치에 대한 찬양과 고무를 금지해놓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자기 일상의 전부를 반국가단체 찬양에 할애하지 않았지만 간헐적으로 찬양하고 체제 전복을 꾀한 점은 용인될 수 없습니다.

개개의 힘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안보기관에 미세한 흠집을 내서 안보 기반을 허물어뜨릴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인 북한과 대적하는 상황에서 안이한 대처, 막연한 평화에 대한 기대감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설 자리가 없도록 이적 활동을 하는 자에 대한 처벌과 문책이 필요합니다."

검사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이 씨에게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구형했다.

이 씨는 피고인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의 무고를 소명했다.

"혁명이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근본적인 혁신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은 이전에 비해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생산관계의 상호관계에는 미증유의 모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을 말합니다. 혁명을 꿈꾸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가장 명명백백한 사실이며 이유입니다.

제가 이메일을 통해 혁명을 주장한다는 것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명백히 위험한 것이고 파괴적인 행위란 말입니까. 제 혁명 주장이 그 주장을 보는 이로 하여금 혁명으로 일어서게 함으로써 건물 폭파, 인명 살상 등이 일어났나요.

이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것 같으면 지배적 사상과는 다른 대척점에 있는 사상도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토론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자유민주주의는 붕괴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노동자의 책은 바로 그 사상의 자유 시장을 형성해가고 있는 과정에서 수사를 당했습니다. 부디 검찰의 허황되고 억지스러운 논리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인단도 재판부에 "무죄를 선고해 '사상의 자유'를 옹호해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지금 이 법정에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가 피고인이 되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만으로 그들을 처벌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지 알 수 있습니다. 18세기 영국도 마르크스를 법정에 세우지 않았습니다.

레닌을 처벌하려던 것은 러시아의 차르체제였습니다. 어쩌면 이 법정은 우리 사회가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영국일 것인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러시아 차르체제일 것인지 선택되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이로써 사흘간의 재판이 모두 끝났다. 2017년 대한민국의 법정이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영국이 될 것인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러시아 짜르 체제가 될 것인가. 이 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7월 20일 열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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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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