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님의 '관심법', 조국 수석과 통화하면 잡혀간다?

[막걸리법이 살아있다②] '노동자의책' 이진영 대표 구속기소 사건

(☞ ①편에 이어서)

"한 사람의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생애 전반을 살펴야 합니다."

광주민중항쟁 37주년이었던 지난 5월 18일 서울남부지방법원 406호 법정. 검사는 피고인을 향해 '사상 검증'을 예고했다. 배심원들의 사상적 '오염'이 걱정돼 국민참여재판도 할 수 없다던 그 검사였다.

37년 전, 광주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국가보안법은 21세기에도 여전했다. 사회 변혁을 꿈꾸며 전자도서관 '노동자의 책'에 <러시아 혁명>, <자본론> 등 고전 도서들을 올린 피고인 이진영 씨. 그는 검사에 의해 사상 검증대에 올라설 운명에 처했다.

▲'노동자의 책' 사이트에 올라온 대표 고전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자본주의 분쇄하자'는 사상이 위험하니까 문제다"

다시 한 달 뒤인 지난 19일, 전과 같은 장소에서 첫 공판기일이 열렸다. 검사석 주변에는 각종 증거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준비기일에서 예고한 대로 검사는 이메일, 전화 통화 내역 등 이 씨의 사적 기록들을 탈탈 털어왔다.

검사는 "피고인이 노동자의 책에 이적표현물을 올린 목적은 분명하다"며 "여러 발언과 게시글을 통해 피고인이 평소 이적 의지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입증 취지를 설명했다.

"노동자의 책을 운영하고, 스캔하여 올리고 하는 작업의 목적은 공부 자체가 아닙니다. 혁명입니다. 학살, 부패, 사기, 착취, 전쟁 등등의 근본을 뿌리째 뽑아서 인간이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는 세상의 건설! 바로 이것에 일조하고자 함입니다."

"이 '능지처참할 자본주의'를 분쇄할 무기인 계급투쟁으로서 도서를 디지털화하는 것이 활동 동기입니다."

검사는 이 씨가 노동자의 책 후원회원과 도서 구매자들에게 정기후원 요청 차 보낸 메일 내용을 한 구절 한 구절 읊었다.

"피고인은 홈페이지 취지문에 노동자의 책 운영 이유에 대해 '인문사회과학적 교양을 제공하고 교환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밝힌 동기와 달리 진의는 바로 여기 나와 있습니다. 바로 '능지처참할 자본주의를 분쇄하기 위함'입니다. 피고인의 이와 같은 생각은 다수에게 전파됨으로써 놀라운 파급력, 위험성을 갖게 됐습니다."

검사는 '능지처참', '분쇄' 등 단어를 강조했다. 이러한 표현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

철도 노동자였던 이 씨가 철도 파업에 대해 밝힌 글들도 문제 삼았다. 지난 2013년 휴직 중이던 이 씨가 당시 전국적으로 큰 이슈였던 철도 파업에 대해 노동자의 책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파업을 조기 종식시키고 승리하기 위해선 철도가 멈춰야 합니다.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면 시민들은 왜 철도가 저러나 생각할 터이고 민영화 반대라는 점이 부각될 것입니다. 다수가 몰려들어 철도 운행 중단시키는 작업 촉구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전동차 KTX를 막읍시다. 민주노총에도 총파업을 요구합시다. 다른 사업장에도 정치 총파업을 요구해야 합니다."

"평소 피고인이 갖고 있던 무장 폭력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철도 민영화 무력화를 위해 정치적 파업까지 선전‧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연구 목적이라고 밝힌 노동자의 책 게시판에까지 사회를 전면 뒤집는다는 식으로 총파업을 선전하는 글을 올린 것은 피고인이 가진 위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검사는 이러한 글들이 이 씨의 이적 목적을 설명하는 정황 증거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의 책' 첫 화면 갈무리.

변호인들은 "비상식적인 추론"이라며 반발했다. 검사가 법정에 제출한 이러한 간접 증거들은 이 사건의 공소사실, 이적표현물의 반포‧소지 등과 전혀 무관하다고 했다. 또 검사가 피고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피고인의 사상은 이 법정에서 논할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2013년 철도 파업은 전국민적 이슈였습니다. 파업 관련 게시글은 노조가 어떻게 파업을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피고인의 단순 의견 개진에 불과합니다. 이를 문제삼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과도하게 개인의 양심을 검열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또한 '능지처참' 등의 수식어와 '계급투쟁' 등의 용어 사용이 문제라면 그러한 생각이야말로 문제입니다. 이러한 어휘를 쓰는 것은 피고인의 자유입니다. 표현이 다소 생경하고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표현을 하였다는 점만으로 국가 변란을 선동‧선동하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김수행 교수는 자본론 강의를 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2014년 마르크스가 우리를 본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나쁜 사회 체제니까 빨리 붕괴시키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은 강의와 토론 등을 통해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고, 다수 '붕괴'와 같이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상당 부분 용인되는 것입니다."

검사는 이 씨가 과거 공안 전력자와 전화 통화한 사실도 이적 의사를 보여주는 간접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검사의 주장대로라면,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을 가진 사람들과는 전화나 카카오톡도 하지 말아야 하고, 페이스북 등 SNS에서 관계를 맺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냐"며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이인영 의원, 은수미 전 의원 등이 서로 자주 통화하면 북한을 찬양하거나 국가변란을 선동할 목적이 추단된다는 것이라는 논리와 다를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30년 전 금서가 아직도 무섭나"

그렇다면 이 사건의 직접 증거, 즉 검사가 '이적표현물'이라고 규정한 자료들은 어떨까.

변호인들은 2017년 현재 시점에서 볼 때, 개별 도서의 이적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항일무장투쟁사>의 경우 2009년 대법원으로부터 '이적표현물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고, 나머지 표현물도 다수가 1980~1990년대에 금서로 지정된 '역사적 유물'이라는 지적이다.

대표적 예가 <노동해방문학>이다. <노동해방문학>은 1988년 결성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입장과 노선을 대변한 월간 문예지다. 당시 박노해 시인 등 사노맹 핵심 활동가들은 <노동해방문학> 기고를 통해 정치 노선 등을 발표했다.

검사는 <노동해방문학> 5월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무장투쟁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광주 무장봉기를 통해 전술을 배워야 한다. 이제 우리는 선제적 의미를 배워야 한다. 우리 변혁 운동은 광주 무장봉기를 실질적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노동해방문학> 창간호.
변호인은 "당시에는 이적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역사적 자료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30년이 다 된 이야기입니다. 사노맹의 핵심 구성원들이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사면된 이후 조직이 와해됐습니다. 유명한 구성원이 지금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는 조국, 그리고 전 국회의원이었던 은수미 등입니다. 현직 판사도 있습니다. 이미 역사 속에만 있는 조직이 무덤에서 나와서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싸워서 이긴다는 건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5.18이라는 비극적 사건에 대한 평가지, 이 자체로 이적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소된 도서 가운데에는 <1932년>, <대지는 푸르다>, <용해공들>, <압록강> 등 북한 소설 등도 20권가량 포함됐다. 검사는 이 소설들에 대해 "김일성과 공산 집단의 공산주의 활동을 항일 독립운동으로 찬양‧선전하고 있다"며 이적성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1932년>에 대해 "읽으면서 가장 이적성, 찬양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검사가 <1932년> 가운데 문제제기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금성 장군님께서 우리 조국을 해방하고 우리들의 원쑤를 갚아주실 겁니다. (중략) 금성 동지의 혁명노선을 받들어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려는 불같은 충성심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변호인은 "이러한 북한 소설들은 과거 1980년대 남한 내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번지면서 국내 출판사에서 낸 것들"이라며 "피고인 또한 북한 문학에 대해 소개하기 위한 차원에서 올린 것이지 북한을 찬양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김일성 등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가 있는 소설을 골라 올린 게 아니라, 북한 소설에는 필연적으로 김일성 찬양이 맥락과 상관없이 등장한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각 도서의 이적성 여부를 떠나 사회에 미친 영향력에 주목했다고 했다. <강철서신>이 대표적인 경우다. 1980년대 한국 주사파 운동권의 대부였던 김영환이 쓴 이 책은 주체사상을 소개한 책으로, 당시 학생 운동권에 널리 전파된 대표적 '금서'다. 이 씨는 그러나 이 책의 노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책에 올린 이유에 대해선 "제 관점과 무관하게 노동자의 책에는 1980~90년대 우리나라 운동 역사에 영향을 끼친 책들을 주로 올리고 있는 거예요. 〈강철서신〉을 동의하지도 않는데 그걸 내가 왜 올리겠습니까?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올리는 거 아닙니까"라고 지난해 9월 <참세상>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

"이적 의도 위장하려고 4000권 스캔?"

설령 지금도 해당 책들의 이적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노동자의 책에 올라온 전체 자료 가운데 이적표현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책에 올라온 자료는 총 3979개. 이 가운데 검사가 기소한 도서 및 문건은 64개로 1.6%다. 극소수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이 씨가 이적 목적에서 운영했다는 검사의 주장과 반대로, 노동자의 책에는 오히려 북한 체제를 비판하거나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는 책들도 있다. <주체사상비판>이 대표적이다.

변호인들은 이에 비추어 "노동자의 책은 이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단순 자료 제공을 위한 장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검사는 그러나 "위장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설사 피고인이 도서관을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평소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총파업을 해야 한다'고 쓴 글을 보면 내심의 이적 의사가 드러납니다. 이적표현물이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비유를 하자면, 나치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글이 일부 배포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입니다. 평소 피고인의 생각에 비춰보자면, 피고인은 체제 전복과 같은 진정한 의도를 숨기기 위해 다른 책들을 함께 인쇄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결국,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검사가 주목한 것은 '평소 생각'과 '사상'이었다. 검사가 "위장"이라고 말하는 순간, 방청석에서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변호인들은 혀를 찼다.

"지금 검사는 수집된 사실을 통해 주관적 구성요건을 추단하는 것이 아니라, 당초 피고인의 내심의 의사가 무엇인지 함부로 정한 다음 수집된 사실을 꿰맞추고 있습니다. 비상식적 추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책을 PDF 파일로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아십니까. 4000권에 달하는 책들을 일일이 스캔해 전자파일로 만들고,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이적 의도를 위장하기 위해 다른 책도 함께 올렸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증거가 피고인의 목적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무시한 채 피고인의 내심의 목적을 검사가 자의적으로 추단하는 것은 올바른 입증이 아니며, 나아가 피고인에 대한 모욕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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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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