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간의 존엄을 묻다

[인권운동사랑방] 1만 원, 단지 임금 액수 문제가 아니다

내년 최저임금액을 결정하게 될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결정 시한을 코앞에 두고 잇달아 열리고 있다. 이맘때면 듣게 되는 뉴스지만, 올해는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아서인지 대폭 인상에 대한 기대감도 상당하다. 사용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매년 주장했던 최저임금 동결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을 내세우며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올 문제들을 홍보하는데 열심이다.

언론보도만 보면 양대 노총은 막무가내로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만 고집하는 집단처럼 보인다. 여기에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서 소득주도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까지. 내년 최저임금액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하겠다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논의가 시장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듯이 임금액만 결정하면 되는 것일까? 애초에 최저임금을 정하고 이를 사회 전반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려고 했던 목적이 있다. 최저임금액은 그 목적에 적절한 액수를 합의하고 결정하는 문제이다.

최저임금과 사회적 합의

헌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 존엄성 보장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임금제도로서 최저임금제 실시를 명시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의 다양한 요인으로 구성되는 수요-공급 관계 하에서 결정되는 임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 존엄성 보장을 위한 적정임금이라는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이때 인간 존엄성 보장을 위한 임금수준은 '인간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러하듯, 과학적-객관적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척도와 합의에 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 동안 최저임금을 시장임금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경제현실을 근거삼아 인간의 존엄과는 거리가 먼 6470원이라는 금액이 결정되고 이를 준수토록 해야 하는 정부는 최저임금 위반을 마치 외상거래인 양 개인 간의 채무문제로 접근하고, 위반 사업주는 지급여력이 없는 영세사업주라며 버젓이 영업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사회적 합의는 사용자위원과 노동자위원 요구안 사이에서 적당히 절충안으로 내오는 임금인상액이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엄한 삶,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계비, 임금수준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를 모아내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위원회가 만들어야 할 사회적 합의다. 그런데 지금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 사용자, 공익 위원 27명이 모여서 몇 가지 통계지표를 참고삼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는 수차례 회의를 통해 이듬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총선이나 대선 못지않은 치열한 토론과 참여과정을 통해 '존엄함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할 판에 회의방청, 언론보도, 공개토론회조차 없는 밀실회의를 하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사용자위원들이 몇 년째 최저임금 동결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반복할 수 있었고, 노동자위원들은 노-사-공익위원이라는 위원회 구성형태로 강요되는 사회적 합의에 반발해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역할

최저임금은 기업규모, 업무, 성별, 학력, 나이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임금의 최소기준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는 커졌지만, 누구도 최저임금 아래로 임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제도적 강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인간다운 삶,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임금이다. 그래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고 중요한 임금정책이자, 인권정책이며, 경제정책이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에 대해서 정부가 임금 주는 것도 아니면서 시장질서 어지럽히는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판이 들린다. 맞다. 정부가 임금을 주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를 고용해 사업을 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임금수준을 정하는 것이며, 시장질서가 작동하는 출발선이자 규칙으로서 최저임금이다. 그래서 개별 기업의 지급능력, 경영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정부만이 책임 있게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게 최저임금이다. 어떤 사회라도 시장과 기업에 대한 사회적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고 불가피하다. 노동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각종 산업 안전/환경 규제, 이윤에 비례해서 일정액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세금처럼, 최저임금은 돈이 있으면 주고 없으면 못주는 게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적 책무이다.

그런데 정부는 유독 최저임금위반에 관대했다. 해마다 2만 개 안팎의 사업장에 대해 최저임금 위반 근로감독을 실시하는데 적발건수가 대폭 줄어들 뿐만 아니라 위반 사업장에 대한 사법처리 비율이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반면 해당 기업 노동자들이 신고하는 위반건수는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그 중 사법처리 비율은 40~50%에 달한다.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위반을 단속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저임금위반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종의 임금 체불로 판단해 적발 시 미지급 임금지급을 지도하는 방식으로 법 집행을 해왔기 때문이다.

임금 체불은 노동자와 사용자 간에 미지급된 임금이 있다는 것을 서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최저임금위반은 이랜드처럼 조직적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거나 파리바게뜨처럼 근무시간을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임금 절도'에 해당한다. 최저임금위반은 민사상의 채권-채무 관계와 달리 절도와 같은 형사상의 범죄인 것이다. 그런데 작년 6월 최저임금법에서 형사처벌 조항을 과태료 부과로 대체하는 고용노동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장 내년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된다 한들 실제 적용과는 동떨어진 최저임금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기본급이 오르는 만큼 상여금이나 성과급을 삭감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 수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장 노동자가 아니고서는 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 그만둘 각오를 해야 임금이나 수당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다른 형사 사건처럼 최저임금 위반에 대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고발조치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최저임금위반은 신체, 거주이전, 양심, 표현의 자유와 같이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로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최저임금 6470원이 만들어온 경제구조

최저임금 1만 원을 반대하는 이들의 가장 큰 논거는 바로 올해 최저임금이 6470원이라는 사실이다.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맞춰주며 작은 업체를 그럭저럭 운영하는 중소 상공인들에게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큰 타격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6470원은 존엄한 삶과는 거리가 먼 임금이지만, 법정 최저임금이 시장임금의 바닥 출발점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맞춰 원하청 제조업, 대기업 프랜차이즈 서비스업 경제 구조가 만들어지고 작동해왔다. 6470원에 맞춰서! 원청에 철저히 종속된 하청 제조업체, 영세 자영업자들은 원청 대기업에 의해 최저임금과 건물임대료 등에 맞춰 납품단가, 영업이익배분율 등이 계산된다. 매년 최저임금 결정시기마다 경총과 전경련이 중소 영세 자영업자들을 내세우면서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했던 이유는 이런 구조에서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결국엔 하청,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쥐어짜며 취해왔던 자신들의 이익이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이들이 주장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70%는 고용원이 없이 가족노동으로 업체를 꾸려가는 사람들이며 30%는 대부분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다. 70% 자영업자는 인건비 부담보다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인한 소비 증진으로 매출증대가 기대되고, 30%는 대기업이 책임지고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는 곳이다. 결국 정부의 확고한 법 집행 의지가 동반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한국 사회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작업과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

6470원이라는 비현실적인 최저임금액은 한국 사회에서 최저임금이라는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왜곡해왔다. 최저임금은 존엄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임금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전제가 6470원이라는 현실 앞에서 공허해지는 것이다. 한 달에 200여만 원을 벌기 위해서 하루에 10~12시간 일해야 하는 현실이 반대로 최저임금을 규정해버렸다. 존엄한 삶의 기준이 6470원에서 얼마까지 인상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 게 되어버렸다. 10%, 15%라는 인상률이 사람들을 겁먹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엄한 삶,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는 것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럴 때 존엄한 삶을 위한 임금으로서, 최저임금은 다단계 하청 수탈 구조, 억압적 노동체제, 경제 성장 지상주의라는 현실의 단단한 매듭을 풀어나갈 실마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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